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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천문 유산’ 경복궁에서 명품 패션쇼 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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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구찌가 내달 1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구찌 코스모고니 컬렉션 서울’ 을 공개할 예정이다. [사진 문화재청]

구찌가 내달 1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구찌 코스모고니 컬렉션 서울’ 을 공개할 예정이다. [사진 문화재청]

‘조선의 중심’ 경복궁에서 이탈리아의 럭셔리 브랜드 ‘구찌’가 패션쇼를 연다. 서울의 역사적 장소와 글로벌 브랜드의 만남으로 의미가 남다르다.

26일 구찌에 따르면 다음 달 1일 경복궁에서 ‘구찌 코스모고니 컬렉션 서울’이 공개된다. 코스모고니(cosmogonie·우주 생성 이론)는 구찌가 지난 5월 첫선을 보인 컬렉션이다. 통상 패션 브랜드는 봄·여름(SS), 가을·겨울(FW)을 겨냥해 선보이는 정규 컬렉션 사이에 리조트 컬렉션, 크루즈 컬렉션 등 간절기 혹은 여행자를 위한 특별한 테마의 행사를 열고 있다.

이번 서울 컬렉션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첫 서울 패션쇼이기도 하다. 이번 쇼에서 미켈레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새로운 의상들도 선보일 예정이다.

구찌가 서울에서, 그것도 경복궁에서 패션쇼를 개최한다는 소식은 이미 큰 화젯거리다. 구찌는 “서울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간으로 꼽히는 경복궁에서 진행되는 이번 패션쇼는 한국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구찌의 경의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경복궁은 세계 최고의 천문학 공간”

지난 5월 처음 공개된 구찌 코스모고니 컬렉션. 이탈리아 남부 몬테 성에서 개최됐다. [사진 구찌]

지난 5월 처음 공개된 구찌 코스모고니 컬렉션. 이탈리아 남부 몬테 성에서 개최됐다. [사진 구찌]

패션쇼에서 ‘장소’는 행사의 주요 테마를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다. 통상 명품 브랜드의 리조트·크루즈 컬렉션의 경우 정규 컬렉션이 열리는 4대 도시(파리·밀라노·런던·뉴욕) 이외의 도시와 장소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선택하는 장소는 대개 쇼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번에 구찌와 경복궁의 연결 고리는 ‘천문학’이다. 패션쇼를 설명하는데 천문학이라는 단어가 낯설지만, 컬렉션 자체가 ‘우주 생성 이론(코스모고니)’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을 떠올리면 납득이 된다.

지난 5월 처음 선보였던 구찌 코스모고니 컬렉션 역시 이탈리아 남부 아폴리아에 있는 ‘카스텔 델 몬테(몬테성)’에서 공개됐다. 몬테성은 성의 위치와 배치를 수학적·천문학적으로 정확하게 배열해 완벽하게 균형 잡힌 팔각형의 성(城)으로 유명하다. 당시 반짝이는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팔각형의 건물 구조 사이를 가로지르는 장면은 마치 별이 모여 성좌를 이루는 듯한 환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1395년 창건된 조선 왕조의 법궁인 경복궁은 세계적 수준의 천문학 연구가 이뤄졌던 곳이다. 간의대를 포함한 왕실 천문대와 천문기구를 갖추고 1400년대부터 천문학적 업적을 일궈냈다.

조선 건국 초 흑요암에 새겨 만든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 [사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조선 건국 초 흑요암에 새겨 만든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 [사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경복궁에선 태조 4년 제작된 석각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국보 제228호)가 발견됐다. 이는 당시 세계 최고인 조선 시대 천문학의 수준을 상징하는 대표 문화유산이다. 지난 2018년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서 이 지도를 증강현실(AR)로 밤하늘에 새겨 넣기도 했다. 이번 구찌 경복궁 쇼에서도 천상열차분야지도를 활용해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구찌는 쇼를 앞두고 고전 천문학 분야 전문가에게 자문하는 등 역사 고증에도 공을 들였다. 양홍진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 총괄은 “조선의 왕실은 하늘을 중시했으며 한양 천도의 꿈을 담아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돌에 새겨 만들었다”며 “경복궁에서 하늘을 상징한 천문도 제작은 당시 가장 중요한 국책 사업이었다”고 설명했다.

원성규 경복궁 관리소장은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북반구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별을 기록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천문도”라며 “구찌 쇼를 통해 귀중한 유산을 전 세계에 소개할 수 있어 의미가 각별하다”고 말했다.

구찌 측은 “이번 컬렉션을 경복궁에서 소개함으로써 경복궁의 천문학적 우수성을 환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역사적·상징적 장소 택해온 구찌

구찌는 그동안 역사적·상징적 장소에서 패션쇼를 개최해왔다.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사원(2016년), 이탈리아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201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거리(2021년) 등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구찌가 첫 아시아 나들이로 서울을 점찍은 의미도 있다. 구찌는 코로나19로 거리 두기가 한창인 때에도 서울 한남동에 ‘구찌 가옥’ 매장을 내고, 레스토랑 ‘구찌 오스테리아’를 여는 등 국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구찌 가옥은 이름 그대로 한국의 전통주택을 의미하며, 우리 고유의 환대 문화를 담은 매장이란 뜻이다. 구찌 오스테리아는 이탈리아 피렌체, 미국 LA 베벌리힐스, 일본 도쿄에 이어 전 세계 4번째로 문을 연 레스토랑이다. 그만큼 한국에 공을 들인다는 얘기다. 이는 지난 팬데믹 동안 부쩍 확대된 국내 명품 시장의 규모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명품 시장은 지난해 141억 달러(약 20조원) 규모로 세계 7위를 기록했다. 여기에 ‘K컬처’ 등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분위기도 반영됐다.

조정윤 세종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현재 서울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에서 주목하는 아시아의 랜드마크”라며 “유행에 민감하고 소비 수준이 높은 소비자가 있고, ‘K컬처’ ‘K팝 스타’ 등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패션·문화의 발신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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