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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농업 체험한 소방관, 스트레스 지표 10% 하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화재 현장에서 화마와 싸우고 사무실에서도 언제든 출동대기 하면서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소방관들의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2020년 소방관을 대상으로 한 마음 건강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1%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23.3%는 수면장애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2021년 소방청과 업무협약을 맺은 농촌진흥청이 소방관들의 정신적 안정과 건강 증진을 위해 식물을 이용한 치유프로그램을 체험하게 해 본 결과 치유농업의 효과를 확인했다. 치유농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방관의 뇌파는 안정적으로 개선되었으며, 정신적 안정 지표가 51% 높아지고 휴식 및 정서적 이완과 관련된 감성이 9% 증가했다. 긴장과 스트레스 지표는 10% 감소하였으며, 체내 스트레스 호르몬 함량도 체험 전보다 23% 줄었다.

실내에서 식물재배를 직접 체험하면서 식물의 색이나 향에 의한 감성 변화를 체험한 소방관들은 직접 전북 순창의 치유농장을 방문해 오솔길 걷기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했다. 프로그램을 체험한 소방관들은 “작물을 보면서 크게 위안받았다.”, “웃고 장난치며 활동하다 보니 어린아이 같아진다.”, “작물을 가꾸듯 동료들과도 서로 사랑하고 관심을 기울이겠다” 등의 소감을 밝혔다.

농촌진흥청은 그동안 22종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의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개발해 효과를 분석하고 있다. 일반적인 성인과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부터 소외계층 노인,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노동자, 치매, 암 등 질환자, 학교폭력 가해 청소년, 수형자 등 다양한 대상자별로 개발된 맞춤형 프로그램은 스트레스, 우울증, 공격성, 정서지능, 삶의 질, 인지기능, 생명 존중 의식 등 다양한 지표를 개선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치유농업의 선두 주자인 네덜란드에서는 최근 사회 재통합의 공간으로 치유농장이 주목받고 있다. 급증하는 중퇴 학생 문제의 해결책으로 시도된 청소년 치유농장 프로그램은 2002년 유럽연합의 지원으로 시작된 이래 청소년, 부모, 농가에서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받으며 정착 단계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육부 주관으로 초·중·고 학교 부적응 학생 및 위기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지원하는 서비스로 ‘Wee(We 우리, Education 교육, Emotion 감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10대 아동・청소년의 우울·불안, 주의산만 등 정신 건강 문제가 학교생활 부적응, 학교폭력 등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2021년 여성가족부의 조사 결과는 위기 청소년의 우울감 경험 26.2%, 자해 시도 경험 18.7%, 자살 시도 9.9%로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진흥청은 치유프로그램을 학교 교육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전주시 교육지원청 위(Wee) 센터 대안학교, 농업기술센터와 함께 위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우울감이 개선되고 학교 적응성이 높아지는 등 치유농업이 위기 청소년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확인했다.

적용된 프로그램은 ‘농장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치유농업프로그램’과 ‘목공 활동과 연계한 텃밭 정원 중심의 치유농업 프로그램’ 2가지로 주 1회 2시간씩, 총 12회로 구성되었다. 농장이라는 개방된 자연 공간에서 부모와 함께 식물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청소년이 자신과 식물의 성장을 돌아보면서 자아존중감을 높일 수 있도록 구성된 첫 번째 프로그램은 자녀가 평소에 느끼는 부모의 무시・무관심에 대한 불만감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목공 활동 연계 프로그램은 작물을 직접 재배하고 수확하는 신체적 운동에 따른 에너지 발산의 동적 활동과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면서 미래를 계획하는 정적 활동으로 구성되었다. 체성분의 주요 지표인 골격 근량과 기초대사량 증가와 함께 자기통제, 관계지향 등의 2배 넘게 향상되어 치유농업이 위기 청소년의 학교생활 적응과 사회성 개선에 큰 효과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사회적으로 치매가 문제시되는 상황에서 치유농업이 치매 이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를 가진 노인층 객관적·주관적 인지기능의 향상과 우울감 개선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경도인지장애는 일반적인 치매로 진단하기에는 이르지만, 객관적인 인지기능의 저하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상태를 의미한다.

201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5명 중 1명꼴인 약 167만 명이 경도인지장애 환자로 추정되는데, 전국적으로 256곳의 치매안심센터에서 경도인지장애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농촌진흥청은 보건복지부, 전라북도 광역치매센터와 협력해 농업‧농촌 자원을 활용한 자연의 생명력을 활용한 인식으로 대상자의 인지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경도인지장애 노인 대상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식물을 가꾸고, 활용하는 신체적 활동은 감각기관을 자극해 대상 노인의 인지기능은 19.4% 향상되었다. 특히 기억력과 장소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능력인 지남력은 18, 35% 향상되었으며, 기억장애 문제와 우울감은 각각 40.3, 68.3% 줄면서 정상 범위로 회복되었다.

치유프로그램은 천일홍, 라벤더, 유칼립투스, 바질 등 인지기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유효성분과 기능을 가지는 정원식물을 이용한 차 만들기, 그림 카드놀이, 신체활동 등으로 구성돼, 체험자들이 쉽고 즐겁게 체험할 수 있다. 프로그램 참가자는 “식물로 오감을 자극받고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자주 참여하고 싶다”면서 만족감을 표현했다.

치유농업에 관한 관심이 확대되고 지역별로 치유농장도 늘어나고 있지만, 보행 장애 등 이동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과 바쁜 삶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도시민은 치유농업을 체험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치유농업을 체험할 수 있도록 최근 가상현실을 이용한 치유농장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다.

게임 형태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에서 체험자는 농장경치와 배경음악, 꽃길, 반려동물 등 치유의 요소로 구성된 가상 공간 속 식물 꽃 피우기, 물주기, 수확하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시각과 청각을 중심의 가상 치유농장에서는 체험 종료 후 치유 효과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 이용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스크린 골프장에서 원하는 전국의 골프장을 선택해 게임을 하듯이 앞으로는 치유농장 프로그램도 가상 세계 속에서 다양한 치유농장을 체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프로그램은 10월 말부터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누리집’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대상자 맞춤형 프로그램에서 체험 방법까지 치유농업은 진화하고 있다. 치유농업 프로그램의 개발과 보급을 주도하고 있는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의 정순진 연구관은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스트레스에 지친 모든 국민이 자연과 소통하며 치유 공간에서 정서적 안정감과 자존감을 회복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치유농업 프로그램 개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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