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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역사의 무게와 삶의 무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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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주현 미술사학자·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이주현 미술사학자·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미술이 기꺼이 사회 변혁을 위한 도구이기를 자임했던 시대가 있었다. 1970년대 학생운동과 결합해 민주화를 견인했던 태국의 ‘예술가연합전선’이 그랬고, 마르코스 독재에 항거했던 필리핀의 ‘카이사한’ 그룹이 그러했으며, 1980년대 우리의 민중미술이 그러했다. 군부 통치와 국가폭력에 맞서 가열찬 활동을 이어가던 민중미술은 1993년 문민정부 출현과 함께 시야에서 점차 사라져 갔지만, 미술계 일각에선 여전히 날 선 문제의식을 버리지 않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그 흐름을 이어가는 작가들이 있다.

그 대표적 예를 우리는 민중미술 작가 이상호(1960~)에게서 찾을 수 있다. 1987년 안기부에 끌려가 당한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최근까지 고통을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일궈낸 ‘6월 항쟁 판화 시리즈’와 시사만평, 정신병원 환우들의 일상을 묘사한 스케치, 92인의 친일 부역자를 선별해 조선시대 초상화 기법으로 한 화면에 그려 낸 대작 ‘일제를 빛낸 사람들(2020년 광주 비엔날레 출품)’ 등 작품 53점이 민족문제연구소가 운영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서울 용산구)의 ‘이상호, 역사를 해부하다’전에서 11월 6일까지 선보이고 있다.

한국현대사 파고든 화가 이상호
분단과 통일에 대한 관심 40여년
세상 변화시키는 미술의 힘 믿어

이상호의 ‘통일염원도’. 274x179㎝, 천 위에 아크릴, 2014. [사진 식민지역사박물관]

이상호의 ‘통일염원도’. 274x179㎝, 천 위에 아크릴, 2014. [사진 식민지역사박물관]

동국대 불교미술학과에 다니던 이상호는 1980년 5월을 서울에서 맞이한다. 서울 삶을 청산하고 고향 광주로 돌아온 그는 1982년 조선대 회화과에 입학하며 5월 광주의 실상을 접하게 된다. 그는 한얼 노동야학에서 판화를 가르치는 한편 미술패 ‘땅끝’과 ‘시각매체연구소’를 중심으로 홍성담·전정호 등과 걸개그림·만장 등을 제작하며 대학 미술운동에 뛰어든다. 당시 제작한 목판화 ‘죽창가(1987)’는 낫으로 죽창의 날을 벼리는 한 동학 농민군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한 작품으로, 화면 구성에서 케테 콜비츠의 ‘농민전쟁 연작’ 중 ‘낫을 갈면서’를 연상시키지만, 투박하면서 생동감 넘치는 선묘는 전통 판화 미학에 기반한 작가의 역량을 잘 보여준다.

6월 민주항쟁이 한창이던 1987년, 이상호는 전정호와 제작한 걸개그림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에서 백두산 천지에 둘려진 진달래가 이적 표현물이란 혐의를 받고 체포된다. 국가보안법을 미술품에 적용한 첫 사례인 이 사건으로 그는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참혹한 폭행을 당하고 정신병이 발병해, 이후 30여년간 20여 차례 나주 정신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게 된다.

1993년 민중미술의 한 축이었던 ‘민족민중미술운동 전국연합’은 ‘현장 중심의 집단활동에서 벗어나 개인적 창작 활동에 역점을 둘 것’을 밝히고 해체된다. 그러나 이상호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에 이르는 입원 치료를 마치고 어김없이 현장으로 복귀했다. 5월 민중항쟁의 책임자처벌 촉구를 위해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1995)’를 제작하는가 하면, 비전향 장기수 63명의 북한송환 기념 대회를 위해 포스터(2000)를 제작했다.

무위사 극락전 관음보살상의 도상을 빌어 그린 이라크 전쟁 반대 탱화(2003), 패트리엇 미사일 배치 반대 궐기 포스터(2004)를 비롯해 2008년에는 수입 소고기 반대 집회를 위해 6m에 달하는 걸개그림 ‘촛불 든 소녀’를 제작해 금남로에 걸기도 했다.

“분단과 통일, 국가보안법 철폐 등 80년대와 90년대 구호로 외치던 민족문제가 나의 관심사”라고 밝히는 작가에게 강대국의 각축 속 한반도의 현실은 여전히 미해결 과제다. 그가 통일의 소망을 담아 제작한 ‘통일염원도(2014, 광주시립미술관 소장)’는 1985년의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만나게 된 남한의 어머니와 북한의 아들을 실제 모델로 삼은 것으로 두 사람을 탯줄로 연결하고,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유래한 연꽃에는 김좌진과 김구, 문익환 목사 등의 얼굴을 묘사했다. 상반부에는 광복군과 독립군을, 하반부에는 제주 4·3항쟁과 4·19혁명, 5·18 민중항쟁 등을 그려 넣어 식민과 분단, 저항과 통일운동으로 이어지는 현대사를 파노라마처럼 조망했다.

작가 이상호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냉소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역사의 현장에서 시대를 기록하고 증언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미술의 힘을 믿고 있다. 이것이 그가 오늘날까지도 1980년 5월 도청에서 산화한 16인의 얼굴을 그려 망각으로부터 이들을 되살려내는 이유이고, 1949년 해체된 반민특위가 못다 한 친일 인사를 발굴해 초상화로 기록하고 이들의 손목에 포승줄을 채우는 이유일 것이다.

이주현 미술사학자·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