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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재훈의 음식과 약

레스토랑의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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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레스토랑의 기원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사실이 있다. 하나는 레스토랑이 원래 장소가 아닌 음식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18세기 파리에서 레스토랑이란 ‘부용(Bouillon)’ 같은 맑은 고깃국물을 지칭했다. 먹고 나면 원기를 회복할 수 있는 음식이란 뜻에서 그런 고깃국물을 레스토랑이라고 불렀다.

레스토랑은 원래 소식을 하기 위한 곳이었다. 식욕이 떨어진 사람이 적은 양의 음식을 먹고 기력을 되찾을 수 있다며 손님을 끌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의미가 변했다. 국물 음식이 아니라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소가 레스토랑으로 변했다. 미국 인디애나대 사학자 레베카 스팽 교수는 식욕이 돌아왔으니 굴도 먹고 샴페인도 한 잔하고 스테이크도 한 점 맛보라는 식으로 요리 가짓수도 늘어났다고 설명한다.

기네스북에 가장 오래된 식당으로 등록된 스페인 마드리드 보틴 레스토랑의 주방 풍경. 1725년 설립됐다. [중앙포토]

기네스북에 가장 오래된 식당으로 등록된 스페인 마드리드 보틴 레스토랑의 주방 풍경. 1725년 설립됐다. [중앙포토]

이전에도 식당은 있었다. 하지만 식당이라기보다 급식소에 가까운 형태가 주류였다. 기다란 테이블에 생판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과 앉아 주어지는 음식을 먹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레스토랑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때 먹고 싶은 음식을 메뉴판을 보고 골라서 주문할 수 있었다. 게다가 레스토랑에 일하는 요리사들은 과거 귀족의 식탁을 책임졌던 사람들이었다. 신흥 엘리트 계층이 호사스러운 음식을 맛보면서 자신들은 우아하게 소식하는 사람이라고 뽐내기에 레스토랑보다 좋은 곳은 없었다.

출발점부터 레스토랑은 집에 먹을 게 충분해도 친교와 식사를 위해 가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리의 관심은 자신의 지인 또는 가족으로만 한정된다. 초창기 레스토랑의 고객도 보이지 않는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의 복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창문도 없고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공간에서 하루에 14~16시간씩 일하다가 과로에 만성질환으로 단명하는 요리사가 부지기수였다. 조리할 때 나오는 연기를 들이마셔서 호흡기 질환을 앓거나 오래 서 있어서 정맥류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았다. 20세기 초 프랑스 요리의 거장 에스코피에가 주방에서 담당 파트를 나누는 식으로 분업화하고 환기와 위생이 더 주의를 기울이면서야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요리사이자 음식 칼럼니스트인 박찬일은 식당 인테리어와 장비는 기막히게 좋아졌지만 주방 배기시설은 아직도 열악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올해 2월 근로복지공단은 폐암으로 급식조리원이 사망한 것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 그 정도로 배기시설에 문제가 많았단 이야기다. 밥 한 숟가락이든 빵 한 조각이든 음식 뒤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불행히도 우리는 빵 공장 노동자 사망과 같은 비극적 사건이 있고 나서야 이런 사실을 깨닫는다. 주방과 홀 사이에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만 같다. 이제 그 경계를 허물고 음식 너머의 사람과 소통할 때가 됐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