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北, 난데없는 ‘확성기 트집’ 왜…"北이 가장 아파하던 압박 수단"

중앙일보

입력

북한이 24일 난데없이 "(남측의) 최근 확성기 도발"을 주장해 그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 대북 확성기는 모두 철거된 상태인데도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는 것으로 북한이 과거부터 극도로 경계해온 대북 방송이 재개될 가능성에 대비해 사전 차단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해 대북 방송이 재개됐던 당시 경기 중부전선의 대북확성기 모습. 대북 확성기 방송은 2018년 4월 판문점 회담 후속 조치로 다시 중단됐다. 사진공동취재단.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해 대북 방송이 재개됐던 당시 경기 중부전선의 대북확성기 모습. 대북 확성기 방송은 2018년 4월 판문점 회담 후속 조치로 다시 중단됐다. 사진공동취재단.

뜬금 없는 "확성기 도발 경고"

북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대변인 발표에서 "최근에 지상전선에서의 포사격도발과 확성기도발에 이어 해상침범도발까지 감행하고 있는 적들에게 다시 한번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다만 25일 군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5월 4일 총 51대의 확성기를 철거해 현재 비무장지대(DMZ) 내 대북 확성기는 아예 없는 상황"이다. 군 당국은 지난 18일 응급환자 이송 헬기가 민통선(민간인 출입통제선) 이북에 진입하느라 스피커 방송을 한 걸 북한이 트집잡았을 가능성도 살펴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과거 남측의 행보를 과장 또는 왜곡해서 도발의 빌미로 삼는 경우는 많았지만, 이번처럼"아예 없던 일을 꾸며내는 건 이례적"이라고 지적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과거부터 확성기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해왔는데, 자칫 한국이 판문점 선언에까지 명시된 방송 중지 약속을 먼저 깰 수도 있으며 그럴 경우 전적인 책임도 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중대 도발 때마다 '압박 카드'

앞서 정부는 천안함 폭침(2010), 목함지뢰 사건(2015), 4차 핵실험(2016) 등 북한의 중대 도발 시 맞대응으로 대북 확성기를 재설치하거나 방송을 재개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월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재개됐던 확성기 방송은 문재인 정부 당시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 이후 4년 넘게 중단됐다.

전례에 따르면 북한이 2018년 방송 중단 이후 처음으로 7차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방송을 재개할 명분은 충분한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영 북한 공사 출신의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핵보다 더 무서운 게 대북확성기"라며 "북한군과 주민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수단으로, 과거 천안함, 목함지뢰, 핵실험 이후 남측이 확성기 방송 재개 카드를 꺼냈을 때마다 북한은 아주 아파했다"고 말했다.

2015년 8월 북한이 남측 확성기에 포탄까지 쏜 뒤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여했던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관심사는 오로지 확성기 방송 중단으로 다른 문제는 거의 꺼내지도 않은 채 확성기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당시 회담에서 북한이 DMZ 목함지뢰 도발에 유감을 표하는 대가로 한국은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

2018년 5월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 통제구역 내 설치된 고정형 대북 확성기를 서부전선 백마부대 소초 장병들이 철거하는 모습. 뉴스1.

2018년 5월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 통제구역 내 설치된 고정형 대북 확성기를 서부전선 백마부대 소초 장병들이 철거하는 모습. 뉴스1.

"악청 돋구는 개나발" 민감 반응

대북 확성기에 대한 북한의 민감한 반응은 북한 당국과 매체의 언급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25일 태 의원이 통일부로부터 제출받은 지난 10년동안의 ‘북한 공식매체 대북확성기 비난 주요 현황’을 살펴보면 북한 당국과 매체는 "역적패당이 밤낮으로 비방중상 나발을 불어댔다"(2012년 4월), "대북 심리전 방송을 48시간 안에 중지하지 않으면 강력한 군사적 행동"ㆍ"밤낮을 가리지 않고 악청을 돋구어대 우리를 최대로 자극"(2015년 8월) 등 수위 높은 표현을 써왔다.

가장 마지막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됐던 2016년에도 북한은 "반사회주의,반공화국독기를 끈질기게 내뿜어대고있는 대북확성기 방송하루 16시간이상 계속되며,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를 새로운 북침전쟁의 도폭선으로 만들어놓으려는 괴뢰들의 흉심"(2016년 7월), "전연일대에 확성기를 설치하고 개나발을 불어대는 등 온갖 비렬한 책동"(2016년 10월) 등 대북 방송과 군사 충돌 가능성을 연계해 위협하기도 했다.

전단금지법ㆍ판문점 선언 '금지'

다만 정부가 북한의 중대 도발에 대한 대응 카드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꺼내기엔 문재인 정부 당시 마련된 법과 남북 합의에 배치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 12월 통과된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북한에 대한 확성기 방송으로 국민의 생명ㆍ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에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 등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한다"고 명시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