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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들어올땐 노저어라? 도망쳐라" 시골살이 '엘리트'의 깨달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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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자본주의자' 에 이어 '도시인의 월든'을 펴낸 저자 박혜윤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숲속의 자본주의자' 에 이어 '도시인의 월든'을 펴낸 저자 박혜윤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니어링 부부의 책 『조화로운 삶』은 정말 딱 떨어져요. 너무 훌륭하고,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없거든요. 그 책을 보고 이런 식으로 살아야겠다 생각을 했던 거죠. 근데 현실이 그게 아닌 걸 깨닫잖아요. 나는 여전히 도시에 살았던 나인데, 환경이 변한다고 해서 내가 변하지 않더라고요. "

'도시인의 월든' 펴낸 박혜윤 #가족과 8년째 미국 시골생활 #'조화로운 삶'과는 다른 경험 #"내 인생의 저자는 나" 발견

 새 책『도시인의 월든』의 출간과 함께 한국을 찾은 저자 박혜윤(47)씨의 말이다. 그는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미국 워싱턴주 시골에서 8년째 살고 있다. 부부 모두 정규직이라고 할만한 직업 없이, 적게 일하고 적게 벌면서 여백을 누리며 살아가는 생활과 그의 남다른 생각은 지난해 나온 『숲속의 자본주의자』를 통해 화제가 됐다.

 서울에서 속칭 명문대를 나와 기자생활을 했던 그가 시골행을 결심한 건, 뒤늦게 미국에 유학해 교육심리학 박사까지 받은 뒤였다. 기러기 생활을 하던 남편도 직장생활에 지쳐 퇴직하면서 네 식구의 미국 시골살이가 시작됐다. 사실『조화로운 삶』에 일찌감치 매료된 박씨는 결혼 초에도 남편에게 시골 가서 살자고 한 적 있단다. "저보다 더 도시적인 사람이라 단칼에 거절하더라고요. 내심 안심이 됐죠."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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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월든』은 그가 대학 시절 처음 읽었을 때는 "누가 봐도 참 이상한 책"이라 여긴 고전이다. 이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예상과는 다른 시골 생활을 경험하면서. 일례로, 농장을 침범해 농작물을 망치는 사슴을 두고 난생처음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단다.

 그는『월든』의 저자 소로에 대해 "요즘 같으면 악플에 시달릴만한 일을 많이 했다"며 책에 이렇게 썼다. "완전한 자급자족과 자연 속 고독을 그토록 예찬하면서 실제로는 친구들을 찾아다니고 빨래는 어머니에게 맡겼다. 인간의 평등을 믿는 것 같지만, 스스로 우월하다 생각하는 엘리트주의자다운 면모도 분명히 있었다. 인생의 정답처럼 찬양했던 호숫가 오두막의 삶도 불과 2년 만에 접었다." 박씨는 소로가 "인생의 정답을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니라 모순이 가득한 그대로 자신을 보여주었던 것"이라고 적었다.

'도시인의 월든' 저자 박혜윤씨,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도시인의 월든' 저자 박혜윤씨,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의 책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이와 통한다. 그는 무소유를 예찬하거나 무욕을 지향하지 않는다. "저는 욕망에 항상 충실하려고 노력하지, 욕망을 억제하는 거는 믿지 않거든요. 욕망을 어떻게든지 누르면 옆에서 튀어나오기 때문에 그 욕망을 생생한 그대로 빨리 충족시키는 게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책에는 그가 욕망을 충족하는 나름의 방식과 구체적 생활의 면면이 흥미롭게 드러난다. 냄비 하나로 조리도구를 통일하고, 아이들도 놀이처럼 집안일을 하게 한다. 그는 책을 좋아하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지 않는다. 책의 내용을 절대화하는 대신 "내 삶의 유일한 저자"는 "나"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물 들어올 때 노저으라'는 말을 비틀어 "반사적으로 노를 마구 젓고 싶어지지만 실은 물이 들어올 때야말로 정신 차리고 재빨리 도망을 가야 한다"고 책에 썼다. "무슨 일이든 하다 보면 무리를 하기 쉽다"는 맥락에서다. 인터뷰 때 물어보니, 소로가 가업인 연필공장을 접은 배경을 예로 들었다. 당시 독일제 연필이 싼값에 들어와 공장을 접은 줄 알았는데, 소로가 죽은 뒤 에머슨이 쓴 글에는 소로가 나름대로 최고의 연필을 개발해 주변에서 이제 사정이 펴려니 기대할 때 공장을 그만둔 거로 나온단다. "뭐가 진실인지 모르죠. 어쩌면 두 얘기 모두 진실일 수도 있고."

 스스로에 대해 그는 "포기를 많이, 굉장히 잘해왔다"고 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 등 구직에 나서지 않은 것을 포함해 그만의 경험과 이유도 책에 담담히 적었다. "100등에서 90등, 70등까지 가는 것과 달리 3등이었을 때 2등, 1등으로 올라서는 건 어렵잖아요. 그 마지막 경쟁을 싫어해서 회피하는 걸까라는 의문도 들어요." 그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한들 그는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글이 공감을 얻는 데 놀란 눈치다. "세상이 조금씩 변한다는 걸 느껴요.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싶어요."

 사족으로, 이 가족에게는 최근 스마트폰이 처음 생겼다. 큰아이가 대학에 진학해 기숙사에 살게 되면서 휴대전화를 마련했는데, 구형 폴더폰은 오히려 비싸고 스마트폰은 공짜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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