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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가 삼국통일 출정한 길 개방…'신들의 숲' 호위무사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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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개방 첫날인 지난 15일 오후 2시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 성황림 찾은 탐방객들. 박진호 기자

일반 개방 첫날인 지난 15일 오후 2시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 성황림 찾은 탐방객들. 박진호 기자

성황당 옆 ‘호위무사’ 전나무와 음나무 

‘신이 깃든 숲’, ‘궁예가 삼국통일을 위해 출정할 때 지났던 길’. 천연기념물 제93호이자 신들의 숲이라 불리는 ‘성황림’이 일반에 개방됐다.

개방 첫날인 지난 15일 오후 2시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 성황림 앞. 굳게 잠겨 있던 자물쇠가 풀리고 문이 열리자 울창한 숲으로 가는 길이 펼쳐졌다. 사전 예약을 통해 신의 영역인  성황림에 들어갈 수 있게 된 14명의 탐방객은 차분하게 성황당으로 걸어 들어갔다.

성황당 양옆에는 아름드리 전나무와 음나무 한 그루가 호위무사처럼 버티고 있었다. 수령 300년의 쭉 뻗은 전나무는 높이가 29m, 가슴 높이의 지름이 1.3m에 이른다. 세 사람이 손을 맞잡아야 겨우 안을 수 있다. 음나무의 가슴 높이 지름도 1m에 가깝다. 전나무는 남자를 상징하고 음나무는 여성을 상징한다. 이와 함께 성황당 주변을 10여 그루의 복자기나무가 감싸고 있어 신비스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특히 복자기나무는 단풍이 빨갛게 물들고 있어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일반 개방 첫날인 지난 15일 오후 2시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 성황림 찾은 탐방객들이 손수건 꽃물들이기 체험을 하는 모습. 박진호 기자

일반 개방 첫날인 지난 15일 오후 2시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 성황림 찾은 탐방객들이 손수건 꽃물들이기 체험을 하는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5일 오후 2시 일반에 첫 개방된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 성황림. 박진호 기자

지난 15일 오후 2시 일반에 첫 개방된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 성황림. 박진호 기자

신림면 지명 유일한 귀신 ‘신’자

민억기(60) 이장은 “마을 사람들은 성황당 앞을 가르는 길을 중심으로 서쪽은 신이 사는 영역이라 믿고 신성시해왔다”며 “이런 이유로 성황림이 있는 신림면(神林面)의 지명은 유일하게 귀신 ‘신’자를 쓴다”고 말했다.

이날 성황림을 찾은 탐방객들은 소원지에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등 저마다 소원을 적어 금줄에 걸었다. 이후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좀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경기 성남시에서 온 이유준(42ㆍ여)씨는 “나무들이 크고 굉장히 잘 보존된 것이 인상 깊었다”며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성황당을 본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한기수(45)씨는 “아이와 함께 왔는데 숲과 관련된 역사를 알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가족이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소원지에 적어 금줄에 건 것도 좋았다”고 말했다.

성황당 앞길은 궁예가 삼국통일을 위해 출정할 때 지난 길로 통일신라 말기에는 원주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성황림을 지켜 온 전나무 수령이 300년이 넘는 만큼 이 숲의 역사도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엔 깊고 어두운 숲이어서 산에서 호랑이가 내려와 마을의 개와 돼지를 물어갔다고 한다.

지난 15일 오후 2시 일반에 첫 개방된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 성황림에 있는 성황당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5일 오후 2시 일반에 첫 개방된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 성황림에 있는 성황당 모습. 박진호 기자

일반 개방 첫날인 지난 15일 오후 2시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 성황림 찾은 탐방객들이 소원지에 소원을 적고 있다. 박진호 기자

일반 개방 첫날인 지난 15일 오후 2시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 성황림 찾은 탐방객들이 소원지에 소원을 적고 있다. 박진호 기자

‘호랑이’ 내려와 가축 물어가던 곳

주민들은 매년 음력 4월 8일과 9월 9일 전나무 앞에서 소ㆍ돼지를 제물로 제사를 지내며 치악산 성황신에게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 ‘성황제’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성황림은 일제침략기인 1933년에는 ‘조선보물고적명승 천연기념물’로, 1962년엔 천연기념물 93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한동안은 심하게 훼손됐었다. 전나무 주변에서 취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성황림 주변이 유원지처럼 변했기 때문이다.

이에 원주시는 숲을 보호하기 위해 1989년 보호 철책을 설치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훼손됐던 숲은 사람들의 발길이 사라지자 다시 원시림처럼 되살아났다. 현재 소나무ㆍ귀룽나무ㆍ느릅나무ㆍ참나무ㆍ찰피나무ㆍ말채나무 등 50여종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일반 개방 첫날인 지난 15일 오후 2시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 성황림 찾은 탐방객들이 원시림처럼 잘 보존된 숲을 탐방하는 모습. 박진호 기자

일반 개방 첫날인 지난 15일 오후 2시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 성황림 찾은 탐방객들이 원시림처럼 잘 보존된 숲을 탐방하는 모습. 박진호 기자

‘11월 26일까지’ 매주 토요일 개방

원시림으로 되살아난 숲은 드라마 및 영화 촬영지로도 주목받았다. 영화 신기전을 비롯해 가루지기, 변강쇠 타령, 전설의 고향 등이 성황림에서 촬영됐다.

한편 성황림’은 오는 11월 26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일반에 개방된다. 성황림에 들어가려면 사전에 ‘성황림마을 체험관’에 예약을 해야 한다. 이 기간 성황림에서는 숲속 명상, 소원지 쓰기, 손수건 꽃물들이기 등 힐링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원주시 관계자는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 온 생태자원을 공유하고자 다채로운 체험ㆍ힐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만큼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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