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한은화의 생활건축

층간소음, 못 잡나 안 잡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부동산팀 기자

한은화 부동산팀 기자

반세기 넘는 국내 아파트 역사상 요즘처럼 층간소음 문제가 뜨거웠던 적이 없다. 도심 주택난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아파트는 빨리 싸게 짓는 것에만 신경 썼다가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가구 수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다 보니 층간소음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한층 더 부각되는 데다가 아파트값도 비싸진 탓이다. 지난 9월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중간값은 9억8000만원(KB부동산 중위가격)에 달한다. 아파트값은 이렇게 비싼데, 왜 층간소음을 못 잡는 걸까.

정부가 나섰다. 지난 8월부터 층간소음 사후확인제를 시행한 데 이어 층간소음 대책도 내놨다. 지난 6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층간소음 문제가 거론되자,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여러 개선방안에 대한 건설사의 태도가 미온적”이라며 “의지가 없는 것이지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닐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서는 정부의 해결 의지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가 폐기한 뱅머신 측정방법. [중앙포토]

정부가 폐기한 뱅머신 측정방법. [중앙포토]

사후확인제는 아파트를 다 짓고 나서 현장에서 검사하는 제도로, 전체 가구 중 2~5%를 뽑아 층간소음 차단 성능을 평가한다. 1~4등급으로 평가하는 소음 기준도 엄격해졌다. ‘발망치’와 같은 중략 충격음의 경우 1등급 차단 성능 기준이 40dB 이하에서 37dB 이하로 강화됐다. 그런데 충격음을 측정하는 방식이 슬쩍 달라졌다. 기존에는 7.3㎏짜리 타이어가 달린 기계가 1m 높이에서 바닥을 내리치는 ‘뱅머신’ 방식을 썼는데 사후확인제에서는 사람이 서서 2.5㎏짜리 고무공을 떨어트리는 ‘임팩트볼’ 방식으로 바뀐다. 결국 바닥에 가해지는 충격음 자체가 약해진 것이다.

정부는 과거 충격음을 측정할 때 뱅머신 방식만을 쓰다가, 2014년 임팩트볼과 뱅머신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끔 제도를 바꿨다. 그리고 1년 만인 2015년 임팩트볼 방식을 폐기했다. 뱅머신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충격음을 보정하기 위해 임팩트볼로 측정한 소음 값에 3dB을 더하기로 했는데, 부정확한 방식이라는 감사원의 지적이 나오면서다. 그런데도 사후확인제를 도입하면서 뱅머신을 폐기하고 임팩트볼 방식을 부활시켰다. 정부는 “생활 소음과의 유사성과 ISO 국제기준을 고려해 개선했다”고 설명하지만, 업계에서는 “결국 건설사 봐주기에 나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슬래브 두께도 논란이다. 정부는 건설사가 바닥 슬래브 두께를 기존 210㎜에서 더 두껍게 할 경우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지만, 콘크리트 두께를 마냥 두껍게 하는 것이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슬래브 위에 단열과 완충 기능을 위해 까는 저가의 스티로폼 대신 더 기능적인 차음재를 깔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 장관의 말대로 의지가 없을 뿐,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부 역시 연구를 토대로 한 정확한 정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