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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NHK 대피방송 때 한국 공영방송은 토크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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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계명 예비역 육군 대령·전 행정안전부 비상대비정책국장

최계명 예비역 육군 대령·전 행정안전부 비상대비정책국장

북한이 최근 들어 이틀에 한 번꼴로 미사일로 도발하고 있다. 핵 선제공격을 법제화했고, 일본 열도를 통과하는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했다. 전투기와 폭격기는 전술조치선에 근접비행했고, 150대가량의 전투기를 동시에 발진시켰다. 급기야 탐지가 쉽지 않은 저수지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쐈다. 예상하지 못한 기이한 방법을 동원하며 한·미 군 당국을 당혹스럽게 했다. 북한의 이런 잇단 도발은 실질적 안보 위협이고, 심각한 국가안보 위기 상황으로 인식해야 맞다. 야당이 ‘친일 타령’으로 초점을 흐릴 때가 아니다.

지난 4일 오전 북한이 일본 열도를 가로지르는 사거리 4500㎞의 IRBM을 발사한 당일 일본 NHK 방송은 홋카이도·아오모리 지역에 긴급 대피방송을 내보냈고, 주민들이 급히 피난하도록 안내했다. 같은 시각 한국의 공영방송들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드라마와 토크쇼를 방송했다. 안보 불감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북한 미사일 쏜 날 한·일 큰 차이
정부도 국민도 안보의식 풀어져
비상기획위·민방공 훈련 복원을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6일 북한의 전투기와 폭격기가 공역상 특별감시선을 넘어 전술조치선에 근접했을 때 한국군은 즉각 F-15K 등을 출격시켜 맞대응했으나 북한의 폭격기가 포함된 위협 비행이었는데도 민간에 대한 안내와 경고는 전혀 하지 않았다. 8일 북한 공군기 150대가 동시에 발진한 초유의 긴급상황에서도 한국군만 자체 대응했을 뿐 국민에겐 알리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의 민방공 비상대비 체제는 느슨해졌다. 정부는 물론이고 일반 국민의 안보의식은 심각한 수준으로 해이해졌다.

우크라이나에서 8개월째 처참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예로부터 전쟁은 군사적 능력과 함께 비군사 분야의 국가역량에 의해 결정되는 국가 총력전 양상을 보인다. 많은 병력과 최신무기를 보유했다고 반드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적의 공격에 대한 주민 대피 및 보호, 주요 생필품 공급, 후방 군수지원 능력, 국민 정신력 등 국가 전체의 응집력에 전쟁의 결과가 좌우된다. 그동안 한국은 한·미 동맹 기반 위에서 강력한 한·미 군사대비 태세를 유지해 군사적 역량은 강화됐다. 반면 정부의 전시대비, 즉 비군사 분야의 역량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

비상대비라고 부르는 정부의 전시대비 업무란 무엇인가. 전쟁발발 시 국가 예비 인력과 물자를 동원해 군사작전을 지원하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행정기능과 기간산업을 유지하며, 국민 의·식·주를 위한 식량·생필품·구호물자가 차질없이 공급되도록 평시에 점검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는 장관급 정부기구인 국가비상기획위원회가 이런 역할과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8년 정부조직을 개편하면서 위원회를 해체했다. 고유 기능과 역할이 유명무실해지면서 범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전쟁대비와 훈련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윤석열 정부가 무엇보다 시급히 해야 할 과제가 분명해진다. 정부 전시대비 업무가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기를 바라며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국가비상기획위원회 조직을 정상적으로 복원해야 한다. 행정안전부에 국 하나로 있는 비상대비와 민방위 조직을 과거 위원회와 같이 청 또는 부 수준으로 조직해야 한다. 최소한 정무직 공무원이 지휘할 수 있는 독립 조직으로 키워야 한다. 그래야 예산과 조직을 활용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둘째, 위원회는 대통령실이나 총리실 산하 조직으로 편성해야 한다. 상급기관으로서 역할과 전문성을 갖춰야 범정부적으로 중앙부처와 지자체를 효과적으로 조정·통제할 수 있다.

셋째, 문재인 정부 들어 중단된 민방공 훈련을 재개해야 한다. 약 300만 명의 민방위 대원의 편성과 교육, 전 국민이 참여하는 민방위 훈련을 활성화해 비상시 국민 보호 능력과 안보의식을 고취해야 한다

‘전투는 군대가 하지만 전쟁은 국민이 한다’는 국가 총력전 개념이 있다. 북한의 전쟁 도발위협이 갈수록 현실화하는 시점이다. 정부는 무엇보다 ‘전시 비군사 분야 대비업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 조직을 속히 재정비해 효율적인 총력전 대비 태세를 확립함으로써 북한의 전쟁 도발을 억제하고 국민의 안전한 삶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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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명 예비역 육군 대령·전 행정안전부 비상대비정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