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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6개월 행보에 정치생명 달렸다…벼랑 끝 이준석의 선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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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이준석이 벼랑 끝에 섰다. 지난해 7월 36세의 나이로 국민의힘 대표에 선출되고 이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승할 때만 해도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보였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지난 6일 법원이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을 기각하고, 7일 새벽 당 윤리위원회가 이 전 대표에게 기존 6개월에 더해 당원권 정지 1년을 추가하면서 이 전 대표는 코너에 몰렸다.

윤리위의 ‘총 1년 6개월’ 당원권 정지 처분을 두고 당내에서는 “이 전 대표에겐 가장 수위가 센 제명보다도 난감한 징계”라는 반응이 나온다. 제명 처분은 이 전 대표의 총선 공천 도전 등 각종 권리를 제한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일각에선 “가처분으로 다퉈볼 만한 사안”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보다 수위가 낮은 당원권 정지 처분은 다르다. 율사 출신 여당 의원은 “과거 사례에 비춰보면 당원권 정지 정도를 가지고 법원에서 다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전 대표에게 우호적인 일부 인사들도 징계에 대한 추가 가처분에는 부정적인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9월 28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헌 효력 정지 가처분 심문에 출석한 뒤 법원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9월 28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헌 효력 정지 가처분 심문에 출석한 뒤 법원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또 다른 쟁점은 이 전 대표의 징계가 2024년 4월 10일 열리는 총선을 3개월 앞두고 풀린다는 점이다. 3개월이라는 기간은 이 전 대표의 의지나 당 공천관리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충분히 공천에 도전할 수 있는 기간이다.

이 때문에 윤리위 징계가 이 전 대표의 운신 폭을 크게 좁힐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 전 대표는 그간 20·30대 남성 팬덤을 정치적 자산 삼아 ‘이슈 파이팅’을 하면서 존재감을 부각했다. 가처분 및 징계 국면에서는 SNS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당 친윤계 인사들을 비판하며 장외 여론전을 벌였다. 하지만 당원권 정지 기간에 이 전 대표가 무리하게 대통령과 당을 비난하다간 윤리위가 추가 징계를 통해 총선에서 배제해버릴 가능성이 있다. 이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이양희 윤리위원장의 임기가 6일 부로 1년 더 연장됐다는 점도 이 전 대표에게 큰 부담이다.

여권 관계자는 “팬덤을 등에 업고 과감한 언사로 여론몰이하는 이 전 대표의 정치 스타일과 공천 등 현실적 문제가 충돌하는 딜레마 상태”라고 진단했다. 비대위원인 전주혜 의원은 “출마의 길을 어느 정도 열어주면서도 자중하라는 경고를 한 균형적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이양희 국민의힘 윤리위원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리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윤리위는 7일 새벽 이 전 대표에게 당원권 정지 1년 추가 징계를 내렸다. 뉴스1

이양희 국민의힘 윤리위원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리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윤리위는 7일 새벽 이 전 대표에게 당원권 정지 1년 추가 징계를 내렸다. 뉴스1

이 전 대표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현재로선 많지 않다. 우선 지지층을 독려해 내년 초 열릴 전당대회에서 자신에게 우호적인 당 대표 후보를 측면 지원하는 등 반전을 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원권 정지 상태라 전당대회에 관여하는 데 상당한 제약이 따를 전망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전 대표가 탈당해 신당을 창당하는 등 활로를 모색할 가능성도 거론한다. 다만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 사이에서도 “3당이 살아남기 힘든 국내 정치 구조상 주류 정당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은 위험하다”는 부정적 여론이 적지 않다고 한다. 지지층을 겨냥한 온라인 소통플랫폼 개설도 거론된다.

최근 윤 대통령과 당 지지율의 동반 하락 원인으로 ‘한 자릿수 20대 지지율’이 거론되는 점을 들어 향후 이 전 대표에게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전직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당선 요인인 '보수 지지층+청년층의 세대 결합'이 무너진 상태”라며 “지금이야 껄끄럽더라도 총선을 앞두고 위기론이 커지면 당과 이 전 대표가 갈등을 봉합하고 손을 맞잡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관측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9월 14일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심문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도착, 민사51부 법정으로 이동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9월 14일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심문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도착, 민사51부 법정으로 이동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실제 이날 당 중진들은 차가운 반응보다는 이 전 대표를 다독이는 모습이었다. 정진석 위원장은 “이 전 대표는 우리 당의 자산”이라며 “이번 일을 성찰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권 주자인 김기현 의원은 “이런저런 논란이 있지만, 우리 당이 새 모습으로 활성화하는 데 기여한 공이 있다”며 “이제 좀 멀리 보고 정치하면 어떨까 싶다”고 했다.

반면 이 전 대표를 두둔하며 당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유승민 전 의원은 “대표직을 박탈당한 사람이 법원 판단을 구하는 권리가 핵심 징계 사유라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라며 “막말을 한 윤석열 당원(대통령)은 왜 징계하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3선의 하태경 의원은 “윤리위 징계는 옹졸한 정치보복”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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