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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직원들 앞 월급 깠다…공기관 정신질환 산재 5배 급증

중앙일보

입력

#서울 소재 국책연구기관에 다니던 A씨는 지난해 우울증으로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일하던 중 기관장의 비위를 발견한 A씨는 이를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했다. A씨의 고발 사실을 알아낸 해당 기관은 그를 업무에서 배제하며 징계위원회에까지 회부했다. 또 평소에는 열지 않던 월례회의를 열어 A씨의 임금을 공개 석상에서 언급하는 등 모욕감을 주기도 했다. 결국 해당 기관은 A씨에게 아무런 징계도 내리지 못했지만, A씨는 이전에 없던 심한 우울과 무기력 증상을 얻었다.

일터에서 정신질환에 걸려 산재를 인정받는 근로자가 급증하고 있다. 정부는 직장 내 괴롭힘을 법으로 금지하고 성폭력 등을 예방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펴 왔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근무 여건이 안정적이라고 인식되던 공공부문 근로자까지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에 위협받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5일 국회 환경노동위훤회 국민의힘 간사인 임이자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산재 판정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질병으로 산재 승인을 받은 근로자는 515명으로 전년보다 119명 증가했다. 1년 사이 30% 늘어난 숫자다.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건강이 나빠진 근로자는 산재 신청을 통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을 경우 적절한 치료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상사나 동료로부터의 괴롭힘,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업무 중 사고를 목격하고 생긴 불안장애 등이 대표적 사례다.

특히 공공기관에서의 정신질병 산재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5년 전인 2017년 공공기관에서 정신질환 산재를 승인받은 근로자는 5명에 불과했는데, 지난해에는 5배 가까이 늘어난 33명을 기록했다. 공공기관의 정신질환 산재 피해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이미 11명이 정신질병으로 인한 산재를 승인받았다.

일반 사기업을 포함한 전체 근로자를 살펴보면 적응장애와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올 상반기 산재를 인정받은 전체 근로자 중 적응장애 환자가 54.6%로 절반을 넘었다. 우울증이 16.7%,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15.3%로 뒤를 이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공공기관 근로자 중에선 2017년 적응장애로 산재를 받은 사람이 1명 뿐이었는데, 지난해에는 13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우울증으로 인한 공공기관 산재 근로자도 13명이었다. 이밖에 급성 스트레스 장애, 불안장애 등을 겪은 공공기관 근로자도 있었다.

실제 산재 판정서 결과문을 보면, 올해 B공사에서는 중요 고객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일하던 직원이 고객으로부터 집단 구타와 칼로 위협을 받은 뒤 생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산재 인정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 지난해에는 C공공병원에서 환자로부터 강제 추행을 당해 불안장애를 얻은 사건도 발생했다.

더 큰 문제는 정신질병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산재 판정을 받는 근로자도 늘다는 점이다. 지난해 전체 근로자 중 88명이 정신질병 자해행위(자살)로 산재 승인을 받았다. 2019년 47명, 2020년에는 61명으로 2년 연속 증가했다.

임이자 의원은 “민간은 물론 공공기관에서도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근로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어디서나 산재 위험에 노출돼 있는 근로자의 정신건강 지원과 심리상담 등 지속적인 안전보건 관리를 강화하고,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한 실질적인 교육 등 근로자 보호를 위한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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