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피아니스트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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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이번 가을에는 풍성한 피아노 음악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하며 최근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임윤찬은 5일 오늘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정명훈 지휘)와, 6일 광주시립교향악단(홍석원 지휘)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를 협연한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로 잘 알려진 조성진은 7일 독주회, 11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사이먼 래틀 지휘)와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협연을 앞두고 있다. 반클라이번 첫 한국인 우승자인 선우예권은 11월 3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다비트 라일란트 지휘)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가히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전성시대라 할 만큼 이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이들뿐 아니라 김선욱·임동혁·임동민·손열음 등 굵직한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청중의 관심도 대단하다. 티켓 예매를 하려 보니, 위 공연 대부분은 이미 매진되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이들의 연주를 인터넷을 통해 감상해 본다. 우리는 왜 이들의 연주에 열광하는가.

임윤찬·조성진·선우예권의 무대
국제적 주목받는 젊은 음악인들
자기만의 얘기 더욱 들려주기를

올 가을 클래식 무대를 장식할 피아니스트 임윤찬. [뉴스1]

올 가을 클래식 무대를 장식할 피아니스트 임윤찬. [뉴스1]

올해 단연 주목받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콩쿠르 당시 리스트의 ‘12개의 초절기교 연습곡’으로 테크닉적 완벽함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피아노 음악의 정전이라 할 수 있는 베토벤 음악으로 깊이 있는 내면적 아름다움과 감동을 선사하였다. ‘군더더기 없는 순수한 피아니즘’과 꽉 찬 음향이 지닌 뿌리 깊은 진중함이 눈과 귀를 사로잡아, 공연 영상을 자꾸 돌려 보게 되었다.

올 가을 클래식 무대를 장식할 피아니스트 조성진. [연합뉴스]

올 가을 클래식 무대를 장식할 피아니스트 조성진. [연합뉴스]

독보적인 쇼팽 해석가로 정평을 얻고 있는 조성진의 연주는 부드러움 속에 내공을 가지고 있다. 2021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피아니스트’로 등극하기도 했던 그의 연주 중 쇼팽식 화려함을 섬세하게 펼쳐 보였던 쇼팽의 ‘영웅 폴로네이즈’ 연주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한국인 최다 콩쿠르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우예권은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에서 치밀한 정확성과 곡 전체의 구성을 인식하여 곡을 이끌어가는 뛰어난 감각을 보여주었고, 최근 들려준 개성적인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연주도 인상적이었다.

이들 피아니스트들이 형성하는 독특한 음악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실상 이들이 연주하는 레퍼토리는 모차르트-베토벤-쇼팽-리스트 등등 대동소이하다. 그럼에도 청중은 각각의 피아니스트 연주에 열광한다. 쇼팽 콩쿠르에서는 쇼팽곡만 연주되지만, 역대 수상자인 아시케나지·폴리니·아르헤리치·지메르만 등이 연주한 쇼팽이 각각 완전히 다른 개성을 보여주는 것처럼 연주자의 독자적인 ‘해석’, 즉 ‘개성’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올 가을 클래식 무대를 장식할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뉴스1]

올 가을 클래식 무대를 장식할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뉴스1]

통상 “임윤찬 음악회 간다”라고 말하지 “베토벤 음악회 간다”라고 말하지 않듯이, 연주자는 작곡가와 청중을 이어주는 매개자의 역할을 넘어서 예술적 창조자로 등극하는 것이 오늘날 피아니스트 문화의 흥미로운 현상이다. 음악 작품은 연주자를 통해서 새롭게 탄생하며, 피아니스트들의 개성은 미적인 흔적을 남기며 사회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주지할 점은 오늘날 젊은 한국의 피아니스트들이 대부분 콩쿠르 우승을 통해 ‘스타’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 콩쿠르의 우승 소식이 전해지면, 우리는 큰 감동으로 한 천재의 탄생을 함께 기뻐한다. 덕분에 음악회 티켓은 매진되고, 음반도 잘 팔린다. 유튜브 연주 조회수, 인터넷 블로그의 기사도 넘쳐난다.

이런 계기로 예술음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니 반가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 시점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적을 상기해 볼 만하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사이드는 예술음악 애호가였고, 좋은 비평을 많이 썼다. 그는 콩쿠르를 ‘비르투오소의 등용문’으로 보면서 ‘음악성의 협소화’를 가져왔으며 “승자독식주의를 장려하는 폐해를 낳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콩쿠르를 겨냥한 비르투오소적 연주 스타일이 자유로운 연주자의 해석을 제한하고 있고, 또 우승자에게만 쏠리는 ‘승리제일주의’가 연주문화 전반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이드는 전설의 피아니스트 폴리니를 예로 들면서, 그가 쇼팽 콩쿠르를 거머쥔 뒤 곧장 ‘탄탄대로’에 올라서는 선택을 하지 않고, 몇 년간 칩거 상태로 배움의 길을 걸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콩쿠르 우승자들의 사멸’이 모두에게 해당하지는 않지만 이를 넘어서는 연주자가 극히 드물다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한국의 피아니스트들은 콩쿠르 우승에만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긴 음악적 여정을 이어나갈 것이라 믿는다. 보다 엄격한 잣대로, 그리고 긴 호흡으로 자신을 연마해 나가며 한국에서 피아니스트의 전성시대를 이어가면 좋겠다.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