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는 최근 내년 시행을 목표로 추진하던 버스 무상화 정책에 대해 ‘재검토’로 선회했다. “정책 시행을 두고 논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고양시의 버스 무상화 정책을 추진한 건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재준 전 시장이었다. 이 전 시장은 지난해 12월 대선후보들에 ‘청소년 교통비 무료화’ 정책을 공약으로 삼아달라고 공개 제안했다.
대선 공약화가 불발되자 이 전 시장은 고양시 단독으로 버스 무상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 지난 1월과 4월 시정포럼을 열고 버스 무상화 정책의 선례와 함께 고양시의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만 7~18세 고양시 청소년에게 하루 두 차례 고양시 시내·마을버스 요금을 전액 지원하는 방안이었다. 월별 이용요금을 계좌에 현금으로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초등생은 1주일에 5일, 중·고생은 1주일에 6일 지원하겠단 계획이었다.
고양시에 차고지를 둔 시내버스 및 마을버스 업체는 총 26개다. 버스 1060대가 고양시내 132개 노선을 운행한다. 정책이 시행되면 청소년 약 2만 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당시 고양시는 추산했다. 고양시민 사이에선 “무상교통을 하면 학생들의 교외 활동 범위가 넓어질 것이다(고교생 학부모 김모씨)”와 “청소년 요금제 등 기존 지원만으로 충분하다”(중3 학부모 전모씨) 등 각양각색의 반응이 나왔다.
고양시는 지난 5월 한국경제조사연구원에 버스 무상화 정책 관련 용역을 의뢰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 이동환 시장이 당선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시청 내에선 “예산 부담이 큰 사업을 지자체가 하는 게 맞느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조사연구원의 ‘고양시 아동·청소년 무상교통 정책 수립용역’ 보고서엔 만 7~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시내·마을버스 요금을 무료화하면 1년에 약 100억원이 소요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고양시 관계자는 “정책 시행이 재검토로 돌아선 건 예산 문제가 가장 크다”라고 말했다.
이동권 보장과 교통난 완화를 목표로 버스 무상화 정책을 검토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2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지자체 20여곳이 무상교통 및 교통지원 유사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건 2013년 전남 신안군이었다. 경기도 화성시는 2020년 수도권 최초로 버스 무상화 정책을 시행했다. 화성 시내에서 충전식 교통카드로 버스비를 내면 다음 달 25일 현금으로 되돌려받는 식이다. 2020년 11월 만 7~18세 이하를 대상으로 시작해 순차적으로 6~23세 청소년과 만 65세 이상 노인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화성 시민의 30% 정도가 혜택을 받고 있다. 화성시 관계자는 “올해 무상 교통 예산으로 80억원 정도 들 것 같다. 추후 전 시민 대상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기 시흥시도 확장 기조다. 시흥시는 지난해 10월부터 만 16~18세를 대상으로 월 30회에 한 해 버스 요금을 지원하고 있다. (환승 추가 요금은 제외) 지난 3월부턴 예산을 10억원으로 늘려 만 7~18세로 혜택 대상을 넓혔다.
상위 지자체와의 혜택 중복으로 정책을 접은 곳도 있다. 충남 당진시는 21억원을 투입해 지난해 3월부터 만 6~18세를 대상으로 하는 ‘아동·청소년 무상교통제’를 시작했다. 지난 4월 충남도가 만 6~18세 청소년들이 교통카드로 버스비를 지불하면 1일 3회 이용 분에 한해 환급해주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중복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당진시는 지난 6월 자체 지원 사업을 폐지했다.
전문가들은 무상교통 정책 시행 여부는 각 지자체 사정에 따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도경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버스 무상화 정책은 국가 차원보다 지자체가 상황에 따라 시행 여부를 정하는 방향이 맞다”며 “준공영제 등 다른 정책과 병행이 가능한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만 65세 이상인 저소득층이 무상교통 지원 대상이 될 경우 지원비가 공전 이전소득으로 산정된다. 무상교통 지원비를 받는다면 수급자 소득 기준 초과로 수급자 자격을 잃거나 복지 급여가 감액될 우려가 있다”며 “이런 문제 등을 해결해야 장기적인 정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