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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업 돈 가뭄, 실물경제 위기 확산 막아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07호 30면

회사채 금리 12년 만에 최고, 발행액은 급감

원가 급등에 채산성 악화…기업 자금난 조짐

정부 기존 대책으론 역부족, 비상수단 찾아야

기업들이 돈을 구하는 핵심 창구인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금리는 뛰어오르는데 큰손 투자자들도 등을 돌리면서 회사채를 통한 자금조달에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로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던 2020년 상반기보다도 심각한 수준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우량 등급(AA-) 회사채 금리(3년 만기)는 최근 연 5%대로 올라섰다. 지난달 26일에는 연 5.5%를 넘어서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2010년 이후 1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비우량 등급(BBB-) 회사채 금리는 연 11% 선을 뚫었다. 고물가·고비용·저성장의 악조건 속에서 이 정도의 고금리를 감내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회사채 발행액은 쪼그라들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8월 금융회사를 제외한 일반 회사채 발행액은 전달보다 59% 줄었다. 올해 들어 지난 8월까지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는 29조8000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회사채 발행액은 26조2000억원에 그쳤다. 기업들이 만기를 연장하지 못하고 갚아야 했던 회사채는 3조6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기업들은 회사채 시장에서 비교적 싼 금리로 돈을 구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각국이 경쟁적으로 돈 풀기와 금리 인하에 나선 덕분이었다. 그런데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전보다 훨씬 비싼 이자를 준다고 해도 회사채를 인수할 투자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업들의 영업실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원가 부담은 커졌는데 수출과 내수 시장의 상황이 모두 좋지 않다. 지난 8월 산업생산은 두 달 연속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는 생산과 수출에서 모두 감소세로 돌아섰다.

회사채 시장의 경색은 금융시장 불안이 자칫 실물경제로 옮겨갈 수 있다는, 좋지 않은 신호다. 사람에 비유하면 금융시장은 신체의 혈액 순환을 담당한다. 혈액이 원활하게 돌지 않으면 신체의 각 부위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금융이 실물 부문에 적절히 자금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경제 전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당분간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세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았다. Fed는 올해 말까지 추가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크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이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기업들의 돈 가뭄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인데 정부의 상황 인식에선 긴장감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28일 금융시장 점검회의에선 기존에 발표한 회사채 시장 안정화 대책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민간 회사채와 CP를 사들이는 기간을 내년 3월까지 연장한 게 대책의 골자다. 일부 기업은 다소 시간을 벌었지만, 회사채 시장을 전반적으로 안정시키는 데는 역부족이다.

기업들의 자금난은 투자 위축과 일자리 감소로 이어져 경기 침체를 깊어지게 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심각했던 2년 전에는 한은이 한시적으로 발권력을 동원해 회사채 시장을 안정시킨 전례가 있다. 그때와 비교해 구체적인 사정은 달라졌지만 비상사태에는 비상수단이 필요하다. 특히 건실한 기업까지 흑자 부도를 내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해야 한다. 회사채 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기업들의 자금 사정에 숨통이 트일 때까지는 경각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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