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자전거길 75%는 보행자와 자전거 뒤섞이는 '겸용도로'

중앙일보

입력

서울 청계천의 자전거ㆍ보행자 겸용도로에서 행인과 자전거가 뒤섞여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청계천의 자전거ㆍ보행자 겸용도로에서 행인과 자전거가 뒤섞여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에 설치된 자전거도로 중 75%가 보행자와 자전거가 뒤섞이는 겸용도로인 것으로 확인됐다. 차도·인도와 별도로 분리된 자전거 전용도로는 채 15%가 못 됐다.

 25일 행정안전부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학용 의원(국민의 힘)에게 제출한 '국내 자전거도로 구축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자전거도로는 모두 2만 5249㎞다.

 현행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서는 자전거도로를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자전거와 전동킥보드 등 PM(개인형 이동장치)만 통행할 수 있도록 분리대, 경계석 등으로 차도 및 인도와 구분해서 설치한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다.

 둘째는 자전거와 보행자가 함께 다니도록 돼 있는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이고, 셋째는 도로의 일정 부분을 자전거 등만 다니도록 차선 및 안전표시로 다른 차로와 구분한 '자전거 전용차로'다.

자전거 우선도로는 의미와 활용법이 불명확해 자전거 이용자들이 주행을 꺼린다. 중앙일보

자전거 우선도로는 의미와 활용법이 불명확해 자전거 이용자들이 주행을 꺼린다. 중앙일보

 넷째는 자동차 통행량이 일정 기준보다 적은 도로의 일부 구간 및 차로를 정해 자전거와 다른 차가 상호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도로 노면표시로 설치한 '자전거 우선도로'다.

 이 네 가지 유형 중 자전거가 보행자와 자동차에서 온전히 분리돼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도로는 사실상 전용도로뿐이다. 그런데 이 전용도로는 전체 자전거 도로의 14.6%(3684㎞)에 불과했다.

 반면 인도 위에 자전거도로를 그려놓거나(분리형), 별다른 도로 구분 없이 보행자와 자전거 모두 통행 가능하다는 표지만 해놓은(비분리형) 겸용도로가 1만 8955㎞로 전체의 75.1%를 차지했다. 전용차로와 우선도로는 각각 3.4%(868㎞)와 6.9%(1743㎞)였다.

 도로 가장자리에 설치한 자전거 전용차로는 색깔과 표지로 다른 차로와 구분되어 있을 뿐 경계석 등이 없어 실제 자전거 주행에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우선도로는 표시만 되어 있을 뿐 그 의미와 활용법을 알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자전거도로를 17개 광역시·도별로 보면 전체 연장은 경기도가 5612㎞로 가장 길고, 이어서 경북(2351㎞)·경남(1894㎞)·전북(1831㎞)·강원(1680㎞) 등의 순이다. 서울은 1291㎞로 전체 10위다.

 이 중 전용도로 확보율은 인천이 25.4%로 최고이며 이어 세종(24.4%)과 경남(22.9%), 광주(19.4%), 충북(19.0%) 순으로 높았다. 서울은 14%로 12위, 경기는 11.6%로 13위를 기록했다.

 자전거도로 연장이 1355㎞로 8위인 제주도는 전용도로 설치율은 1.1%에 그쳐 최하위였다. 반면 겸용도로 비율에서는 99.1%(1339㎞)로 가장 높았다. 부산이 90.6%로 뒤를 이었고, 대구(87.4%)·대전(83.9%)·경기(82.8%) 순이었다. 서울은 65.3%였다.

서울 마장동의 상점가에 설치된 자전거ㆍ 보행자 겸용도로. 강갑생 기자

서울 마장동의 상점가에 설치된 자전거ㆍ 보행자 겸용도로. 강갑생 기자

 전용차로는 경기도가 243㎞로 가장 길었고, 우선도로는 경북이 380㎞로 1위였다. 서울은 전용차로가 전체의 5.9%인 75.5㎞였고, 우선도로는 190.5㎞로 14.7%였다.

 전문가들은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 비율이 유독 높은 건 문제라고 지적한다.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선 보행자와 자전거 통행을 가급적 분리하고 있는데 우리는 거꾸로 보행자와 자전거를 뒤엉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정부나 지자체가 자전거도로를 늘리면서 차량소통에 영향을 주는 건 꺼린 탓에 지금처럼 보행로나 도로 가장자리에 겸용도로 또는 전용차로를 우격다짐으로 설치하게 됐다"며 "이는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 모두 불편하고 위험에 빠뜨리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차도, 인도와 안전하게 분리된 자전거 전용도로. 강갑생 기자

차도, 인도와 안전하게 분리된 자전거 전용도로. 강갑생 기자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도 지난 2015년 펴낸 「안전과 편의성을 고려한 자전거·보행자겸용도로 정비방안 연구」에서 겸용도로 정책의 문제점을 인정한 바 있다.

 "지금까지 양산된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는 최소한의 시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자전거도로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보행자에게도 불편을 주고 있다. 특히 전체 자전거사고의 44%가 겸용도로와 관련이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김학용 의원은 "통행량이 적은 지역은 탄력적으로 자전거도로 유형을 선택하더라도 보행자와 자전거가 많은 지역에선 행정편의적인 겸용도로 확충보다는 자전거·보행자 모두 안전하고 편리한 전용도로 확보에 보다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