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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외모에 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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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지난주 어떤 커플의 결혼식에 갔다가 거슬리는 말을 들었다. 하객들이 “여자는 예쁜데 남자는 못생겼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 것이었다.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선 외모에 대한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내 주변에선 체감상 오히려 늘고 있다. 한 어른은 함께 길을 걷다 뚱뚱한 사람이 지나가면 “어휴 답답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어머, 그러시면 안 돼요”라며 놀라서 말려봤지만 “보기만 해도 숨이 안 쉬어지는 걸 어떡해”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한 출판사 대표는 “외모도 실력”이라고 말한 적 있다. 지배 체제의 생각과 합일된 이런 말은 듣는 이에게 상처로 남는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권력을 갖는지도 모르는 채 말하고, 그 말들이 모여 누군가가 조형된다. 말하지 않으면 생각도 그쪽으로 내닫지 않을 텐데 ‘보이는 것’에 즉각 반응함으로써 인간은 시선의 권력을 누린다.

외모 우월성에 대한 오래된 열망
차별 내포하며 타인을 대상화해
인상과 표정, 삶 되돌아볼 기회

외모의 우월성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알다시피 고대까지 거슬러간다. 젊은 시절 소크라테스의 생애를 더 정확하고 세밀히 복원해내려 시도한 아먼드 댕거의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는 서두를 “이 비범하고 독창적인 사상가는 항상 가난하고 늙었으며 못생겼다”는 대중의 통념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저자는 젊은 시절 소크라테스가 실은 매력적인 외모로 동성과 이성에게 두루 로맨틱한 사랑의 대상이 될 만했다고 말한다. 노년에 외모가 좀 흉측해진 건 갑상선항진증을 앓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저자의 추정이다. 소크라테스를 언급한 동시대 작가들의 글은 그의 외양 묘사를 빼놓지 않는데, 특히 당대의 관상학자 조피로스는 소크라테스의 쇄골이 움푹 파이지 않아 ‘바보 같고 머리가 둔하다’고 했다. 반면 소크라테스와 애틋한 관계였던 청년 알키비아데스는 잘생겨서 자신감이 넘친 까닭에 주사위 놀이를 할 때 마차가 다가와도 피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하나의 주제로 인간의 역사를 서술하는 관습은 전통이 깊지만, 외모만큼 끈질기게 인간사를 지배하는 것도 없는 듯하다(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도 외모 때문에 생기는 무례와 경멸을 퇴치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 점은 소설가들이 캐릭터를 창안할 때도 작용한다. 디노 부차티는 『타타르인의 사막』에서 주인공 드로고에 대해 ‘그는 한 번도 잘생겨보지 못했던 사람’이라면서, 군인으로서 변변찮은 이력이 외모와 그로 인한 성격 형성에서 비롯됐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윌리엄 트레버의 『펠리시아의 여정』에서 펠리시아를 병적으로 괴롭히는 남자 주인공은 뚱뚱하고 눈이 단춧구멍만 한 사람이다. 범죄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작가는 캐릭터의 외모와 그로 인해 뒤틀린 심사를 활용한다.

신혼 시절 나는 시댁에서 이런 말을 몇 번 들었다. “발이 정말 크구나!” 29년간 정상이었던 내 발은 다른 공간 속에서 위상이 추락했다. 옛 시대에 큰 발은 하녀들이나 갖는 것이었다. 요즘도 여자 연예인들의 발이 크면 남자들이 놀려 당사자들은 이를 감추려 한다. 중국 여성들은 수백 년간 남성들의 발 페티시즘 때문에 전족을 했고, 그 시절 발은 ‘얼굴’이자 성품의 표지판이었다. 그들은 시집가기 위해 띠로 발을 동여맸지만, 근대에 들어 전족한 여성은 갑자기 경제력 없는 기생충 취급을 받았고, 이에 여성들은 띠를 풀고 고통스러워하면서 뒤뚱뒤뚱 걸었다.

공자도 언젠가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사람의 내면을 더 중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나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거나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성마른 비판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런 도덕적 일갈은 쉽지만 공허하다. 다만 아도르노의 말처럼 “현실 속에 편입된 미는 현 존재의 계산 가능한 요소로 전락”했고, 차별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며, 언제나 타인을 대상화할 위험성이 있다. 그러니 차라리 자기 얼굴을 논하자. 이건 거울 많이 보고 성형수술을 해 관리를 잘하자는 말이 아니다. 철학자 김영민은 “얼굴에 윤리가 개입한다”면서 얼굴을 하나의 ‘깨달음의 장소’로 인식했다. 늘 시선의 바깥에 놓여 자신은 짐작하지 못했던 스스로의 인상과 표정에서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내 가족 한 명은 인상이 좋다는 칭찬을 많이 듣는다. 나는 그 얼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안다. 밥 먹고 얻은 에너지가 주변으로 흘러넘쳐 타인을 세심히 살피는 게 그의 특기일 뿐 아니라 자신도 잘 돌본다. 매일 아침 운동하며 만나는 한 노년의 여성은 직업으로 아기들을 돌보느라 밤잠을 설치지만, 그 얼굴은 아기처럼 부드럽고 귀엽기까지 하다. 잠 덜 깬 내 몸은 운동할 힘을 자주 그녀의 얼굴에서 구한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