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적 행정관행을 깨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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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거듭돼선 안 될 안면도서의 시행착오
8일 벌어진 안면도사태의 근본원인은 민주적 과정을 밟아 국민의 합의를 도출하는 데는 등한시한 채 모든 일을 일방적ㆍ독선적으로 결정하고 추진해온 오랜 권위주의적인 행정관행에 있다고 본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통해 앞으로 다른 모든 주요 사업의 추진에 있어서도 사전에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수렴하고 국민의 합의위에서 그것을 결정하는 민주적 행정관행의 확립이 절실함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한다.
정부는 이제 일방적으로 일을 추진하고 국민들은 무조건 그에 따랐던 개발독재 시대의 행정방식은 더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된 시대의 변화를 직시해 모든 부문에 있어서 권위주의 행정관행을 깨는 과감한 의식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그것은 이번 사태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이다.
정부는 안면도 주민의 의사는 전혀 묻지 않고 지난 9월 원자력위원회의 동의만을 얻어 안면도에 방사성폐기물을 저장ㆍ연구할 연구소를 세우기로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사업을 추진해 왔다.
과기처는 이 시설이 방사성폐기물의 영구처리장이 아니라 「안전관리저장방식」에 의한 중간저장소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그 해명 자체가 뒤늦은 것이다.
이미 폐기물처리장 후보지로 거론됐던 경북 영일ㆍ울진ㆍ영덕에서 주민들의 강한 반대로 지질조사도 못했던 경험에 비추어 설사 그것이 안전시설이라고 하더라도 사후가 아닌 사전 설명과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또 그것이 중간저장시설이라고 하더라도 현재의 기술로서는 그 안전성을 1백% 보장할 수 없다는 의구심이 팽배해 있는 현실이라면 인구 밀집지역에 건설한다는 것 자체를 좀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을 일이다.
우리는 이번 사태 자체보다도 이 일로 해서 앞으로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꼭 추진해야 할 많은 사업들이 해당 지역주민들과의 마찰 때문에 번번이 벽에 부닥치게 되리라는 점을 크게 우려한다.
국가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때로는 특정 개인이나 지역의 이해가 침해되는 것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을 것이나 이번 사태는 그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이다.
행정의 권위주의적인 결정과 일방적인 사후추진이 얼마나 큰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오는가를 새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상황으로 보아 방사성폐기물의 처리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백지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 그동안 정부는 원자력에 관한 국민의 이해를 돕고 그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 너무도 소홀했다.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의 필요성 자체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실정인데도 우리의 경우는 국민의 무지 속에서 발전소가 건설되어 왔다.
우리 여건에서 원자력발전이 필요한가 여부에서부터 그 위험의 방지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이 충분한 지식과 정확한 이해를 갖도록 하는 작업이 원자력발전소의 건설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다. 그런 바탕이 있어야 합리적인 국민의 합의도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안면도 주민들의 과격시위에 대해서도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물론 주민의 불안과 불신을 산 당국의 권위주의적 행정방식에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지만 주민들의 행동은 법 이전에 우리 사회의 상식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분명히 넘은 것이다.
요구가 아무리 정당해도 방화와 폭행까지 합리화할 수는 없다. 주민들의 항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 항의의 방식이 법과 상식의 범주를 넘지 않아야 그 주장은 더욱 설득력이 있고 광범위한 공감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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