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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연속 초고속 임협 타결…혁신적 노사문화의 비결은 [SKI 혁신성장 연구]

중앙일보

입력

SK이노베이션 혁신성장 연구

⑨ 6년 연속 초고속 임협 타결…혁신적 노사문화의 비결은

다음 달 창립 60주년을 맞는 SK이노베이션은 1962년 대한석유공사에서 출발했다. 1980년 선경(SK의 전신)에 인수된 이후 석유화학, 종합에너지, 바이오, 배터리와 그린에너지까지 섭렵하면서 지난 60년간 변신과 성장을 거듭해왔다. 오늘날 SK를 재계 2위 대그룹으로 만든 토대가 된 SK이노베이션의 혁신성장 10가지 성공 비결에 관한 학술 심포지엄이 지난달 30일 기업가정신학회 주최로 열렸다. 오늘날에도 유효한 경영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자리였다. 이날 발표된 내용과 연구결과를 정리해 연재한다. 아홉 번째 혁신성장 스토리는 'SK이노베이션의 혁신적 노사관계 구축'. 임이숙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의 분석 발표를 토대로 정리했다.

6년 연속 무분규 달성

첫 만남에 모든 것이 이뤄졌다. 올해 SK이노베이션 노사는 임금교섭 상견례 자리에서 잠정합의안을 곧바로 도출했다. 뒤이은 노동조합원 대상 찬반투표에서도 참여 조합원 87.3%가 찬성표를 던졌다. 이 모든 과정이 일주일 만에 끝났다. SK이노베이션 노사의 초고속 입금교섭 협상 타결은 올해로 6년째 이어지고 있다. 소모적인 분쟁 없는 혁신적 노사관계를 지속해서 만들어온 셈이다.

SK이노베이션의 울산 컴플렉스. 사진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의 울산 컴플렉스. 사진 SK이노베이션

'한솥밥 한 식구' 경영철학

"기업의 구성원은 모두가 한 식구이고 하나의 운명공동체 구성원입니다. 노사는 한솥밥을 먹는 한 식구입니다."

최종현 SK선대회장이 1980년 전경련 강연에서 한 발언이다. 그는 임직원들을 지시의 대상이 아니라 대화와 토론의 상대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인식했다. 인간 위주의 경영 철학을 뿌리내리기 위한 실천도 함께 했다. 1975년 국내 최초로 기업 연수시설을 설립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워커힐 호텔 내에 300평 규모로 설치한 '선경연수원'이다. 당시 대부분의 기업이 사원 교육을 외부 기관에 위탁하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행보였다.

1975년 3월 7일 열린 선경연수원 현판식. 사진 SK이노베이션

1975년 3월 7일 열린 선경연수원 현판식. 사진 SK이노베이션

1979년엔 전 계열사 임직원들과 지속해서 토론해 SK 고유의 경영관리시스템(SKMS)을 정립한다. 핵심 골자는 기업이 커지면서 최고경영자가 임의로 결정을 내리기보다 전체 구성원이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할 수 있는 원칙과 시스템을 만들어야한다는 것이다. 당시 기업들이 총수의 지배력 강화에만 관심을 기울이던 풍토에선 혁신적인 접근이었다.

노사 분규 소용돌이에서 빗겨나다

"노조가 없거나 약한 기업은 외부 세력이 개입할 여지가 많고 노사분규가 한번 발생하면 해결하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노조를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노조의 활동이나 그들의 주장을 존중합니다."

1988년 최 선대회장이 한 좌담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당시는 6월 민주항쟁의 열기가 노동운동으로 이어져 수많은 노사 분규가 벌어지던 때다. 특히 대표적인 공장 지역이던 울산은 노동운동의 중심지가 됐다. 하지만 SK그룹만은 노사분규 없이 생산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구성원의 자발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SKMS 영향으로 노사 간 상호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덕이다.

이는 실질적인 경제적 보상으로 이어졌다. SK는 노사화합을 위한 공정한 보상과 성과 공유의 일환으로 특별 보너스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노조는 파업과 태업을 자제하고 경영진을 동반자로 여기며 회사의 성장에 동참하게 된다.

노사관계의 새로운 국면

2017년 SK이노베이션 임단협 조인식. 사진 SK이노베이션

2017년 SK이노베이션 임단협 조인식. 사진 SK이노베이션

위기가 없을 순 없었다. IMF 경제위기로 국내 모든 기업들이 휘청일 때다. SK이노베이션도 살아남기 위해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구성원들의 정서도 악화했고 강성 노조 집행부가 들어서며 갈등이 심화됐다. 노사는 소모적인 협상 관행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2017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양측은 노사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파격적인 협상안에 합의한다. 임금인상률을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연동하는 방식으로 정한 것이다. 이는 국내 기업 최초였다. 또, 기존 성과급 외에 회사 성과지표(KPI)에 따라 최대 기본급의 200% 수준에 달하는 성과급도 지급하기로 합의한다. 노조도 혁신에 동참한다. 고용세습으로 불리던 조합원 자녀 우선 채용 조항을 자발적으로 폐지한 것이다.

이 합의안은 조합원 90% 이상이 참여한 찬반투표에서 73.57% 찬성률로 가결된다. 이후 임금협상 타결은 최단시간 기록을 경신하고 있고, 조합원 찬성률도 높아지는 추세다.

SKMS의 진화, 구성원의 행복 추구

SK이노베이션의 조직문화도 발전을 거듭하며 혁신적인 노사관계를 지탱하고 있다. 선대 회장이 정립했던 SKMS는 최태원 회장 취임 이후 지속가능한 형태로 진화했다. 2004년 SKMS에서 기업 경영의 지향점을 이윤 추구에서 '이해관계자의 행복 추구'로 재정립했다. 기업의 모든 활동 과정이 사람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사람은 기업의 일부이자 전부라는 인식에 기반을 둔다.

임이숙 교수는 "구성원의 행복을 궁극적 목표로 여기는 경영철학은 노사 모두에 공유된 가치로 SK 임직원의 행동방식, 일하는 방식을 결정하고 있고, 노사가 협력자로서 공동운명체 의식을 지속하게 하는 신뢰의 근간으로도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노사가 신뢰 속에 협력하는 모델도 만들어냈다. 노사 간 핵심적인 소통 창구인 '행복협의회'가 대표적이다. 일반적 노사협의회는 법 규정에 의해 의무적으로 설치되는 데 반해, 행복협의회는 구성원이 스스로 참여해 노사 간 문제를 상시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발적인 기구다. 이곳의 구성원 대표는 현황 파악, 과제 탐색, 해결책 제시, 실천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임이숙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인터뷰

임이숙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임이숙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SK이노베이션 창립 60주년 기념 혁신성장 연구에 참여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국내 기업 사례연구를 진행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주로 외국기업을 위주로 공부해 한국에서 활동하는 학자로서 아쉬움이 컸는데, 스스로 많은 배움의 기회가 됐습니다. SK이노베이션을 연구하면서 한 기업의 역사와 혁신의 철학이 국가 경제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연구 주제로 ‘노사관계’를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SK이노베이션의 혁신성장은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져왔습니다. 조직 구조와 문화 연구자로서 SK이노베이션이 2017년에 이룬 혁신적인 노사협상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노사 간에 연봉 몇십만원을 두고 몇달간 협상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협상시작 20~30분 만에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연구해보고 싶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이 혁신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크게 다섯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습니다. 구성원에게 공유된 SKMS라는 문화, 최고경영자의 혁신 드라이브, 노동조합의 전략적 선택, 구성원의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열린 소통의 채널 마련, 노사가 함께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의 실현이 그것인데요. 다섯가지 요인이 모두 중요합니다만, 그중에서 저는 SKMS라는 노사 모두에게 공유된 조직문화가 혁신적 노사관계를 구축할 수 있게 한 ‘심층’에 자리 잡은 요인이고, 나머지 네가지 요인이 ‘표층’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얻은 가장 인상적인 인사이트는 무엇인가요

"SK이노베이션 노사협상의 세 주체인 노사정 담당자를 모두 인터뷰했습니다. 노동조합 구성원과 경영진이 공통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소모적이고 갈등적인 협상의 틀을 깨자는 것이었습니다. 노사 파트너십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각자의 입장만을 고집하기보다 공통의 목표를 지향하는 것인데요, 인터뷰를 하며 이 부분에 있어 양측 모두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사례가 우리나라의 성장발전이나 기업경영에 던지는 의미나 화두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고정된 파이를 양측이 얼마나 나누어 갖느냐는 분배위주의 협상을 넘어서서 갈등의 축을 줄이고, 다른 이해관계자까지 고려하는 노사관계 구축은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입니다. 이를 제조업에 속하는 대기업이 이루었다는 것, 또 그것을 되돌리지 않고 계속 유지하기 위해 노사 양측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기업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SK이노베이션은 60년간 이어온 기업인데요, 이번 연구를 계기로 미래를 전망한다면요.

"앞으로는 변화의 속도와 범위가 더욱 빠르고 클 것으로 예상합니다. 어떻게 민첩하기 대응하는지(Agility)가 관건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기업은 일반적으로 이에 있어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60년 동안 끊임없이 과감한 혁신을 거듭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미래를 쉽게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이런 기조를 유지하고 끊임없이 혁신한다면 앞으로도 글로벌 대기업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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