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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침수 4시간 뒤 발송된 재난문자는 "양재천 범람주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8일 밤 서울 동작구 이수역에 빗물이 유입되고 있다. 연합뉴스(독자제공)

지난달 8일 밤 서울 동작구 이수역에 빗물이 유입되고 있다. 연합뉴스(독자제공)

지난달 8일 서울 집중호우 당시 강남역 일대는 오후 8시쯤 본격적인 침수가 시작됐다. 삼성역 일대도 오후 9시쯤 침수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동작구의 이수역이 침수된 것도 그쯤이었다. 재난 발생 시 이를 긴급히 시민에게 알려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돕는 재난문자는 당시 언제 발송이 됐을까.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강남역 서쪽을 관할로 하는 서초구청은 오후 11시 41분에서야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강남역이 침수된 지 4시간 가까이 지나서다. 특히 재난문자엔 침수가 발생한 강남역과 고속버스터미널역의 침수 상황은 언급하지 않은 채 양재천 범람에 주의하라는 내용만 담았다. 양재천은 오후 2시부터 이미 범람하던 상황이었는데 ‘뒷북 안내’였던 셈이다.

강남역 동쪽과 삼성역을 관할하는 강남구청은 더 늦은 다음 날 0시 23분에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역시 이 재난문자에도 강남역과 삼성역 침수 상황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장소의 침수 사실을 알리는 대신 ‘대모산 및 양재천 주변 주민은 기상 상황을 주시하라’는 내용만 있었다. 또 이수역을 담당하는 동작구청은 아예 침수 관련 재난문자를 발송하지 않았다.

지난달 8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대방향이 도로가 침수돼 있다. 2022.8.8/뉴스1

지난달 8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대방향이 도로가 침수돼 있다. 2022.8.8/뉴스1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발간한 ‘도심 집중호우 피해예방 및 대응방안’ 보고서를 통해 “(서울 집중호우 당시) 재난문자는 재난 상황을 미리 예보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주민들이 피해를 이미 겪고 있는 후에서야 뒤늦게 발송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입법조사처는 이런 문제가 발생한 이유를 각 지방자치단체가 재난문자를 발송할 권한이 있지만 언제,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입법조사처는 그러면서 “기상특보의 경우 지진재난문자 발송체계와 마찬가지로 기상청이 1차적인 문자를 발송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2016년 경주 지진 당시 12분 늦게 재난문자가 발송돼 비판이 컸다. 정부는 같은 해 11월 지진종합대책을 손봐 2017년부터는 기상청이 직접 문자를 발송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제주 서귀포시 인근 해역에서 규모 4.9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13초 만에 재난문자가 발송될 정도로 개선됐다. 입법조사처는 집중호우 등 자연재해 발생 정보는 기상청이 우선 발송하고, 각 지자체는 재난 대응방법 등을 발송하는 식으로 역할을 나눠야 한다고 조언했다.

입법조사처는 또 2개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이 동시에 운영되는 문제도 지적했다. 지난달 집중호우 때 정부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대본을 가동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미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한덕수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중대본을 운영하는 상태였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중대본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총리가 중대본부장이 될 수 있도록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개정했는데, 복합 재난이 발생할 경우 중대본이 2개가 되는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지난달 9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집중호우 대처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지난달 9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집중호우 대처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입법조사처는 “(2개의 중대본이 있으면) 국가재난대응체계가 분산돼 복합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며 “동시다발적인 재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하여 국가재난대응지휘체계를 국무총리로 단일화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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