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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창진의 미래를 묻다

세계와 유리된 ‘갈라파고스 우주 탐사’ 경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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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다누리로 본 한국 우주의 미래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고등학교 시절, ‘무한대’ 는 정해진 숫자가 아니지만 얼마나 큰 숫자를 무한대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와 이런 혼란은 정리가 되었다. 개미가 한해살이라 하고, 쉬지않고 움직인다면 그 거리가 약 7㎞ 정도니까 그보다 몇 배 먼 거리는 개미의 관점에서 무한대인 셈이다. 정리하면, 우리의 관심 대상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의 크기를 기준으로, 물리적 변화가 더 이상 예상되지 않는 크기가 무한대이며 상대적 비교를 나타내는 수학적 개념이다. 무한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다음 질문 때문이다.

한국 첫 우주 탐사선, 달로 가는 중
20여개국 앞다퉈 달 탐사 경쟁
2031년 유인 달 우주기지 완공계획
달 착륙 자체보다 목적 고민해야

한국의 첫 달궤도선 다누리가 달 여행 11일째인 지난달 26일 지구에서 124만㎞ 떨어진 곳에서 지구와 달을 동시에 찍은 장면을 재구성했다.

한국의 첫 달궤도선 다누리가 달 여행 11일째인 지난달 26일 지구에서 124만㎞ 떨어진 곳에서 지구와 달을 동시에 찍은 장면을 재구성했다.

달까지 거리 약 38만㎞는 우리가 일상에서 다루는 시간과 공간의 크기와 비교할 때 결코 무한대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난 8월 5일 이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달은 무한대에 있는 존재였다. 왜냐하면 아무리 달에 가고 싶어도 특별한 기술이 없으면 불가능하므로 개념적으로는 무한대의 위치였기 때문이다. 특별한 기술 능력이란 바로 우주발사체와 위성개발 능력, 그리고 지상 시스템 운영 기술을 말한다. 물론 기술이 없어도 경제력이 충분하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다른 나라의 로켓과 탐사선으로 달에 가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선택은 우주 기술의 발전과 국가 발전을 연결하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없애는 것이므로 매우 낭비적인 선택이다. 결국 무한대 거리의 달을 접근 가능한 달로 바꾸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 데, 우주기술 능력과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재정 능력의 두 가지다. 즉, 충분한 우주기술 능력과 경제력이 있다면 달 탐사를 국가 발전의 수단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이 기준을 만족하는 세계 7번째 나라가 된 것이다.

지난 8월 5일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 탐사선 다누리호가 미국에서 발사됐다. 이름도 생소한 BLT (BLT; Ballistic Lunar Transfer) 궤도를 따라 6백만㎞를 날아 달로 향하고 있다. 얼마 전 다누리는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상쇄되는 라그랑주 지점을 통과하면서 달로 향하는 궤도로 방향을 전환하였는데, 이번 탐사여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였다. BLT 궤도는 지구를 중심으로 모양을 하고 있어 다누리가 무한대 영역의 달을 유한한 실체로 바꾸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누리는 몇 가지 과학 임무를 수행하며 BTS의 다이너마이트 뮤직 비디오를 우주인터넷을 통해 지구로 전송할 예정이다. 또한 NASA가 만든 음영 카메라는 음영 지역의 물 분포를 조사하여 아르테미스 계획의 일부인 유인 착륙선 후보지 선정에 사용될 예정이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유인 달 착륙은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었지만, 동시에 소련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미국의 치열한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강력한 우주발사체와 유인 착륙선의 개발, 심우주통신 네트워크 구축 등은 당시의 기술수준에서 볼 때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았지만 달 착륙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미국의 최우선 과제였다. 엄청난 예산의 투입은 당연한 것이고 오직 달 착륙만이 승리의 모든 것이라는 논리에서, 과학 임무는 가장 손쉬운 암석과 먼지를 채집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즉, 인류 최초의 달 탐사는 정치적인 이슈가 주목적이었다. 우주기술은 그 목적을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며 과학 탐사는 우주 과학을 위한 최소한의 방안이었다. 지금도 선진국의 우주탐사는 과학 임무를 목표로 내세우지만 그 내용을 보면 특별히 고안된 우주기술을 개발하거나 기술 검증을 일차적 목표로 하고 있다. 이때 개발한 우주기술들은 달 착륙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스핀오프 기술로 우리 생활을 엄청나게 바꾸는 역할을 했다. 우주탐사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적지않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부분이다.

다누리 궤적

다누리 궤적

최근 미국 연구기관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20여 개 나라들이 대략 100여 개의 달 탐사 계획을 수립했거나, 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우리가 아는 웬만한 선진국들은 모두 달 탐사를 계획하고 있어 2020년대는 그야말로 문 러쉬(Moon Rush)가 전망된다.

비록 두 번의 발사 연기로 관심이 많이 줄었지만, 미국 우주로켓 SLS(Space Launch System)의 발사도 달에 다시 가려는 아르테미스 계획의 첫 부분이다. 아르테미스 계획은 유인 달 착륙과 인간의 거주를 위한 달 기지 건설, 달 궤도 우주정거장의 건설을 포함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야심적인 달 탐사 계획이다. 2027년까지 4차에 걸쳐 초대형 로켓을 완성하여 유인 착륙선을 보내고 달 궤도에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계획의 핵심은 지금까지 우주개발의 대상인 지구 저궤도(LEO) 영역을 민간업체의 사업으로 넘기고 정부는 보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심우주 영역을 대상으로 고난이도 기술 개발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다. 즉, 달에 거주할 수 있도록 의식주와 생명유지 기술은 물론 지구와 달을 연결하는 우주통신, 달에서 사용 가능한 원자력 기술, 달의 자원을 활용하는 기술(ISRU) 등의 개발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기술들은 화성 탐사에도 활용되는 핵심 미래기술이다.

한편 민간이 개발한 착륙선을 이용하는 탑재체 상업서비스(CLPS)도 함께 포함되어 있는데, 다양한 과학 탑재체를 달까지 배달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경제성과 창의성이 강점인 민간업체의 참여를 유인하고 우주산업을 육성해 미국의 우주개발 주도권을 강화하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분명히 내세우고 있다. 유럽과 일본은 아르테미스 계획에서 달 정거장 모듈과 유인 착륙선, 달 표면에서 사용하는 여압로버 개발에 참여하는 핵심적인 협력국들이다. 이들은 아르테미스 계획의 일부를 전담해 실패의 확률도 낮추고 경제적인 부담도 분산시키려는 의도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가 중심인 진영과 형성된 우주개발의 양극화를 대비하고 협력국들 간의 동맹 강화의 효과도 얻으려는 정치적 목적도 보인다.

중국은 창어-4 탐사선을 달의 뒷면에 최초로 착륙시켰고 후속 탐사선(창어 6, 7, 8호)도 계속 보낼 예정이다. 러시아도 루나 25호를 올해 발사할 예정으로 있으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의 제재가 강화되고 있어 발사가 불투명한 상태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이 보여주는 우주개발의 지향점이다. 마오쩌둥(毛澤東) 시절부터 국가 생존의 중요한 수단으로 우주개발과 원자·수소탄 개발을 선택했고, 시진핑(習近平) 시대에는 우주 굴기와 국력 과시의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정치적 목표에 의존하는 우주개발은 우주기술과 국가발전 사이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힘든 고비용 구조이므로, 저효율이 고착화돼 우주개발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31년까지 탐사선을 달에 착륙시키는 계획을 만들고 있다. 누리호보다 성능이 향상된 우주로켓을 새로 만들고, 1.5t의 착륙선에 로버를 탑재해 몇 가지 과학 임무를 수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2031년 무렵은 유인 달 착륙이 이미 성공했으며, 달 궤도에 건설된 우주정거장에 우주인이 거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CLPS 프로그램으로 배달된 다양한 과학 탑재체가 달 표면에 설치되고, 달 기지 건설에 투입된 여러 나라의 로버가 작업을 주도하는 등, 달은 이미 아르테미스 계획으로 뒤덮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달 착륙선은 단순히 달 표면에 착륙하는 것 말고 무엇을 의도하는지, 달 착륙을 함으로써 어떤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려 하는지 궁금하다. 자칫하면 천문학적 예산에도 불구하고, 우주탐사 추세에 어울리지도 않고 창의적 기술도 없는, 그저 달 착륙이 될 수도 있다.

우주개발이 우주산업 육성을 통한 경제적 이익의 창출에 초점을 둔다면 우주탐사는 실패의 위험과 막대한 예산에도 우주 지식을 넓혀주는 미래기술 개발로 젊은 세대에 꿈을 심어주는 국가적 투자이다. 추격자로 노력한 결과, 우리나라는 반도체·컴퓨터·IT·통신·가전제품·자동차·원자력 등에서 세계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기술 강국이 되었다. 다만 기술발전의 영감을 자극하는 창의력 발휘는 아직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우주는 창의력을 요구하는 도전적인 영역이고 우주탐사는 창의력에 의지하는 기술적 작업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달 착륙 계획의 비전과 목표는 무엇이며 어떤 창의적 기술을 사용하는지, 아르테미스 사업에 참여하는 우리의 강점 기술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방향을 잃고 우주탐사만 외친다면 자칫 세계와 동떨어진 ‘우주 갈라파고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학·석사를 마치고, 미국 일리노이대 어바나 샴페인에서 항공우주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우주단 단장, 한국형 달 탐사계획 기획 책임자를 지냈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