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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스토킹 살인, 언제까지 방치할건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05호 30면

2년간 스토킹, 보복성 살인으로 이어져

고소 없어도 수사, 피해자 보호 강화하고

피해자 보호 사각지대 없게 법 개정해야

지난 14일 발생한 서울 지하철 신당역 스토킹범 살인 사건은 법적·제도적 장치 보완과 경찰의 실무적 대응이 적극적이었다면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스토킹방지법(스토킹처벌법)을 보완해 이러한 범죄가 발붙일 수 없게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사건 현장을 찾았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피해자 보호 등 경찰 대응 체계를 더욱 고도화하고, 관련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대응이란 비판이 나온다.스토킹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는 유사한 사건이 계속 되풀이되고 있어서다.

윤 대통령이 지시한 법 보완은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법무부는 즉시 살인·성폭력·강도·미성년자 유괴범죄에 대해서만 가능한 전자장치 부착명령을 스토킹범죄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스토킹 범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범죄자에게 재범 위험이 있다고 인정되면 전자발찌를 부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신당역 사건처럼 판결을 앞두고 범행을 저지른 경우는 대상이 아니다. 일종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현행법에서도 스토킹 범죄를 한 행위자가 지속·반복할 우려가 있으면 경찰관은 스토킹 행위자에게 피해자와 그 주거지로부터 100m 이내 접근금지 조치를 할 수 있지만 적극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때부터 올해 6월까지 접근금지 명령 위반율은 13%로 나타났다. 접근금지 조치와 더불어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접근을 파악할 수 있는 실효적 조치가 필요하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동선 파악 같은 제안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스토킹 범죄가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돼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법적 한계는 더 문제다. 과거 성폭력범죄 역시 반의사불벌죄였다. 2013년에서야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수사할 수 있게 됐다. 스토킹범죄 역시 이런 규정을 없애기 위해 국회와 정부가 협조해 법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번 사건을 놓고 정치적 ‘네 탓 공방’은 접어야 한다. 우선 국회에 계류 중인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 제정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

법 보완이 아니더라도 이번 사건을 막을 기회는 있었다. 피해자와 서울교통공사 입사동기였던 범인은 피해자를 불법촬영하며 2년여 동안 스토킹해 왔고 지난해 10월 고소당했다. 이후 한 달간 경찰은 피해자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를 했지만 피해자가 연장을 요구하지 않자 중단했다. 이후 범인의 스토킹은 더 집요해졌고 올 1월 피해자는 2차 고소를 했다. 1차 고소 당시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됐는데, 2차 고소 때 경찰은 같은 사안이라며 구속영장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범인은 1차 고소당한 뒤 수십 차례 합의를 종용하다, 결국 신변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기소돼 징역 9년을 구형받고 1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범행을 저질렀다. 명백한 보복범죄다. 경찰의 소극적인 대처와 법원의 피해자 보호 의지의 미흡이 비극적인 죽음을 몰고 왔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지난해 10월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면서 112신고 건수는 폭증했다. 2020년 4515건에서 지난해 1만4509건으로 늘더니 올해 1~7월에만 1만6571건에 달했다. 국민의 스토킹 범죄에 대한 피해 인식이 커졌다는 건 스토킹 범죄를 소홀히 여겨선 안 된다는 방증이다. 더는 스토킹 범죄로 인해 무고한 목숨을 잃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전면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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