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생존의 기로에 선 노동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민주노총이 엊그제 네 시간짜리 파업을 벌이더니 22일에는 총파업을 하겠다고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노사 관계 선진화 방안 반대 등 정치성 짙은 요구 조건을 내걸고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민주노총의 정치성 파업은 올해만도 여섯 번째다. 양치기 소년처럼 툭하면 "총파업이야"라고 외쳐대니 소속 조합원들도 번번이 외면한다. 이번 파업만 해도 당초 3일까지 조합원 찬반투표를 마치기로 했으나 투표율이 50%가 안 돼 열흘 이상 연기한 끝에 겨우 50%를 넘길 수 있었다.

근로자들의 노조 기피 풍조는 조직률에 그대로 나타난다. 지난해 공무원을 제외한 임금근로자 중에서 노조에 가입한 사람(조직률)은 150만6000명으로 전체의 10.3%에 불과하다. 매년 떨어지더니 사상 최저치까지 간 것이다. 근로자 10명 중 한 명밖에 노조에 가입하지 않아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을 노동자의 대표 조직이라고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노동계 최대의 위기다. 한국노총은 이를 간파하고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민주노총은 강경투쟁.정치투쟁으로 치달으며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한때 강성 노조의 대명사였던 현대중공업 노조 간부들이 최근 미국을 다녀와서 "미국의 경우 회사가 다 쓰러지고 나서야 노조가 정신을 차렸다. 우리도 더 이상 정치파업이나 집회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 "한국 노조가 (변화의)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미국 전문가의 충고를 전했다.

노동운동의 목적은 무엇인가. 근로조건 개선과 복지 증진이다. 노조가 정치집단인가. 아니다. 노조가 붉은 띠를 두르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정치구호를 외치다가는 설 땅이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한국 노동계는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