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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동거남 사망 1달전 보험, 돈은 전처에게?…반전 드라마 [요지경 보험사기]

중앙일보

입력

[요지경 보험사기]

충남태안경찰서

충남태안경찰서

인천에 살던 70대 남성 이모씨는 2008년 아내와 이혼하고 내연 관계였던 여성 A씨와 충남 태안으로 이사해 살림을 차렸다. A씨와 혼인 신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씨는 2014년 8월 뇌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고, 급히 뇌 수술을 해 목숨은 건졌지만 하반신에 장애가 생겨 목발이나 지팡이를 짚어야만 간신히 걸을 수 있게 됐다.

퇴원 후 이씨는 생활하면서 자주 넘어져 팔이 골절되거나 뇌진탕이 생겨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하반신 장애는 갈수록 악화했고 2020년 2월 한 대학병원 뇌신경센터에서 보행이 불가능한 상태란 판정을 받았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A씨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보험설계사 B씨를 통해 이씨를 피보험자로 하는 보험을 계약했다. 이씨가 상해로 사망하면 보장받는 상품으로 보험료는 A씨가 2회 냈다. A씨는 보험 계약을 하면서 수익자를 지정하지는 않았다. 이씨가 전처와 이혼한 만큼 동거 중인 A씨가 사실혼 배우자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B씨에 따르면 A씨는 B씨에게 만일 보험사에서 이씨와의 관계를 물어보면 사실혼 관계임을 증명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A씨가 보험 계약을 한 날로부터 약 한 달 뒤인 2020년 3월 17일 이씨는 집 근처에서 넘어져 상해로 사망했다. A씨는 7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날 이씨와 함께 외출했고 돌아오는 길에 이씨는 건너 편에서 혼자서 걷다가 경사로에서 넘어졌다”며 “머리가 부딪혀서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가 혼자 넘어진 장면을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CCTV로 경찰이 확인했다”며 “이씨는 지팡이를 짚으면 어렵지만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상태였고 부축을 하면 성질을 심하게 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씨의 장례는 이씨의 아들이 챙겼다. A씨는 장례식에 조문을 가 이씨의 유족과 인사를 나눴다. 이후 A씨는 B씨를 통해 보험사에 사망 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보험사에선 A씨가 수익자가 될 수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A씨가 자신이 이씨의 사실혼 배우자라고 주장하자, 보험사는 “이씨에게는 법률혼 배우자가 있다”고 답했다.

반전의 비밀은 이씨의 아들이 쥐고 있었다. 2014년 이씨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수술했을 때 아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에게 병문안을 갔다. 이씨의 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고 아버지가 사과하자 어머니도 용서했다”며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동안 A씨가 아버지를 돌봐주지 않자 어머니가 매일 찾아가 병간호를 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다시 가까워진 두 사람을 본 이씨의 아들은 아버지에게 어머니와 다시 혼인신고를 하라고 권했다. 아들의 말에 이들은 2015년 5월 다시 법적으로 부부가 됐다. 이씨와 그의 아들은 이 사실을 A씨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를 모른 채 A씨는 2020년 2월 이씨의 사망 보장 보험 계약을 체결하면서 수익자 지정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 보험 계약의 존재를 모르고 있던 이씨 유족은 보험사에서 연락을 받고서야 이를 알게 됐다. 이들이 받은 사망 보험금은 3000만원이다. 그런데 보험 계약서를 살펴본 이씨의 아들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계약서에 적힌 자필 서명은 자신이 알고 있는 아버지의 필체가 아니었다.

이씨의 아들은 보험설계사 B씨에게 여러 차례 경위를 물어 이 보험 계약의 과정을 듣게 됐다. 이씨의 아들과의 통화에서 B씨는 “자필 서명을 포함한 보험 계약서는 이씨가 없는 자리에서 A씨와 함께 작성했다. 계약서에 피보험자 연락처는 이씨의 전화번호가 아닌 다른 남성의 전화번호를 적었다"라고 말했다. 또 "보험사에서 피보험자에게 전화해 보험계약 체결에 대해 동의하는지 묻고 대답을 녹취하는 것도 이 남성이 대신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아들은 B씨와의 통화 녹음을 보관하고 있다. B씨는 7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미 경찰에서 조사를 다 받은 내용이라 이와 관련된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씨는 “보험 계약은 B씨가 가입해 달라고 해서 하게 됐다”며 “계약서 작성은 B씨가 자신이 전부 알아서 하겠다면서 직접 다 했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 계약 동의 녹취는 B씨가 다른 남자를 시켜서 ‘네’라고 대답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씨와의 관계에 대해선 “그의 아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이씨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5년 넘게 돌봤다”며 “물리치료를 받으러 이씨를 데리고 병원에 다녔던 걸 동네 사람들이 다 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 속 이씨의 아들은 2020년 8월 검찰에 A씨를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이후 이 사건은 2년 넘게 수사 중이다. 그동안 경찰은 두 차례 불송치 결정(혐의 없음)을 했고, 이에 검찰은 두 번 모두 보완수사를 할 것을 요구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충남 태안경찰서는 “보험사에 보관된 계약 동의 녹취의 목소리가 이미 세상을 떠난 이씨의 휴대전화에 남아있는 다른 통화 녹음의 목소리와 같은지 여러 연구소에 의뢰해 확인해보라는 게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한 취지”라며 “이 부분을 확인하는 대로 사건을 마무리 짓겠다”고 말했다.

해당 보험사 관계자는 “경찰에 이 사건과 관련된 계약서, 녹취 파일 등을 제출했다”며 “보험사 자체적으로도 보험 계약 과정의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아들은 지난 5월엔 금융감독원에 이 보험 계약이 무효인지 조사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그는 “금감원 민원담당자가 ‘보험 계약이 무효가 되면 보험사에서 받은 사망 보험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조사를 원하냐’고 물었다”며 “유족들은 아버지와 관련된 보험 계약의 실체가 밝혀진다면 받은 보험금 3000만원은 반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보험 계약서가 위조됐단 사실이 확인되면 A씨가 보행이 불가능한 아버지를 데리고 나가 혼자 걷게 한 사망 사건의 경위에 대해서도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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