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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게 ‘답’보다는 ‘질문’ 줘야 좋은 그림책

중앙일보

입력

K의 시대다. K-영화, K-연속극, K-노래, K-음식 ···.
K-그림책이나 K-어린이책은 어떨까. 우리 아이가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가 되는 것은 어떨까.

글로벌 베스트셀러 동화작가 모 윌렘스 #『어린왕자』·생텍쥐페리 연상시키는 작가 #30여개 언어로 수 백만 부 판매 #유치원생·초등학생이 읽을 그림책에도 #‘나는 왜 있는가’ 같은 ‘철학 질문’ 담겨야

영감을 줄만한 세계적인 작가를 만났다. 모 윌렘스. 그는 그림책 60여권을 내놓았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작가다.

미국의 인기 그림책 작가 모 윌렘스가 5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사진=김현동 기자

미국의 인기 그림책 작가 모 윌렘스가 5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사진=김현동 기자

그 중 반은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다.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는 물론이고 마오리어, 아제르바이잔어, 한국어를 포함해 30여개 이상 언어로 번역됐다. 수백만 권이 팔렸다. 얼마나 팔렸는지 대신 세는 직원이 있지만, 윌렘스는 판매 부수가 너무 많아 세는 일조차 그만 뒀다. 그가 최근 세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를 교보문고 배움실에서 만나 궁금함을 인터뷰로 풀었다.

갑자기 독자가 나타나 ‘당신 책이 내 삶을 바꿨다’고 한 적은 없는지.  
 "오늘도 많은 어린이 독자들이 자신이 작가·삽화가가 되는 길을 진지하게 생각한다고 내게 말한다. 나는 오늘 독자들이 준 메모지를 열심히 읽을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의 삶을 바꾼다면, ‘더 나쁘게’가 아니라 ‘더 좋게’ 바꾸고 싶다."  
삽화를 어린이들이 최대한 베끼기 쉽도록 그린다는데.  
"나는 등장 인물들을 4세, 5세 어린이도 쉽게 따라 그릴 수 있게 그린다. 그래야 그들이 그들만의 ‘모험 이야기’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시작은 ‘모험 이야기’인데, 어린이가 주인공을 새로 창안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베끼기 쉬운 주인공을 어린이들에게 제공한다. 내 경우에는 『피터츠』에 나오는 ‘스누피’가 출발점이요, 도약대이었다."  
당신은 당신 책들이 ‘읽을 책’이 아니라 ‘플레이(play)할 책’이라고 주장한다. 무슨 뜻인가. ‘플레이’는 한국말로 ‘놀기’, ‘연극하기’, ‘장난치기’ 등을 의미한다. 당신은 이런 모든 의미에서 ‘플레이’를 말하는가.  
"그렇다. 거대한 경험은, 읽을 때가 아니라 읽은 다음에 생긴다. 상상하기, ‘나만의 스토리 만들기’ 같은 독자 체험이 내게 매우 중요하다. 내가 그리는 삽화는 영어로는 ‘스케치(sketch)’다. 스케치는 일종의 ‘공연(performance)’이다. 스케치는 일종의 ‘코미디’이기도 하다."  
작품 가운데 명저라고 할 수 있는 『비둘기에게 버스 운전은 맡기지 마세요』을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둘기는 운전하고 싶다. 그런데 그 비둘기는 꼭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 그냥 운전대를 탈취·점거하고 달리면 안 되나?  
"그럴 수 없다. 운전하려면 운전보험, 운전면허 등 수많은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웃음)  얄궂은 사실이 하나 있다. 모든 어린이는 매일 ‘하지마(no)’라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어린이는 자신이 뭔가를 허락할 권한이 쥐어진 기회가 왔을 때 ‘해도돼(yes)’’라고 하지 않고 ‘하지마’라고 한다.공감능력(empathy)를 발휘할 순간이 됐을 때 어린이는 ‘하지마’라고 한다.  
작품에 메시지를 담지 않는다고 한다. 메시지는 ‘독자 스스로 메우는 것’이기 때문이라는데···. 무슨 뜻인가.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다’고 내가 말한다면, 나는 교만한 사람일 것이다. 내가 답을 안다면, 나는 ‘전화기 사용법’같은 ‘뻔한’ 매뉴얼을 쓰게 될 것이다. 다행히 나는 답을 모른다. 그래서 더 재미 있는 책을 쓸 수 있다. 나는 콘텐트의 49%만 쓴다. 나머지는 독자들이 채운다. 51%를 남겨야 독자들이 더 깊숙이 개입한다. 그래야 그들이 내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비둘기에게 버스 운전은 맡기지 마세요』에 대한 두 긍정적인 서평이 대조적이었다. 하나는, ‘어린이들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이 책은 어린이가 ‘노’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만둬야 함을 가르쳐서 좋다고 했다. 이 서평가 두 명은 자신의 방식으로 51%를 채운 것이다."  
윌렘스의  『비둘기에게   버스   운전은   맡기지   마세요』

윌렘스의 『비둘기에게 버스 운전은 맡기지 마세요』

좋은 질문이란 무엇인가.  
"‘철학적 질문’이 담겨야 한다. 본질적인 질문들이다. 예를 들면 ‘나는 어떻게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왜 더 좋은 친구가 돼야 할까’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오해란 무엇인가’ ‘나는 버스를 운전해도 될까’ 등이다."
‘네가 진짜 바라는 것은 뭐니’도 좋은 질문인가. 
"그렇다. 내 아내, 세어(Cher)가 이 질문을 기록할 것이다. 내가 쓸 새 책 제목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인터뷰하다 좋은 질문에 영감을 받아 책을 쓰기도 했다. 또 그 후속작으로 ‘네가 지금 진짜 바라는 것은 뭐니’로 책이 나올 만하다."  

미래 베스트셀러 작가 될 우리 어린이들의 글쓰기 체험은 우선 주인공 결정하고 써 내려가는 ‘모험 이야기’로 시작한다.

스스로 어떤 작가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내 책을 독자가 딱 한번만 읽는다면 나는 실패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작가다. 나는 독자들이 내 책을 매일 밤 읽기 바란다. 수 십억 번 읽기 바란다. 2살 때 내 책을 처음 읽고 50살이 넘어서도 내 책을 읽기 바란다. 나는 20대 때 부터 ‘나는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두고 고민해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계속 바뀌었다. 10년 후에도 이 질문에 다른 느낌으로 접할 수 있다면 나는 행운아다."  
어떤 체험을 독자에게 선사하는 가.  
 "‘안전한 무정부 상태(safe anarchy)’같은 체험이다. 내 책은 독자들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또 낄낄거리며, 전혀 위험에 빠질 걱정 없이 새로운 것을 체험하고 느끼는 장소다."  
어쩌면 미국 중산층 아이들을 위해 쓰는 작가라는 공격을 받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귀하는 혹시 빈부 격차에 둔감한 작가는 아닌가.  
"아니다. 그렇게 나를 정의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항의할 것이다. 많은 내 작품에서 주인공은 ‘동물’이다. 또 나는 ‘배경’을 그리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내 작품 속에서 [어떤 계급적, 인종적 상황과 연관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작품이 최대한 보편적이기를 바란다. 나는 내 작품이 우리 독자들을 위한 창문이 되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할 뿐이다."  
수많은 화제작을 출시했다. 창의란 무엇인가. 귀하의 비결은 무엇인가.  
"내게는 아이디어라는 ‘씨를 뿌린 정원’이 있다. 씨앗은 어떤 때에는 자라고 어떤 때에는 자라지 않고 멈춘다. 나이를 먹어가며 배운 게 있다. 아이디어에게 숙성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스스로 자라게 해야 한다."  
작가가 될 어린이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빨리 뛰려고 한다면 ‘어떻게 하면 빨리 뛸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말라. 뛰다 보면 어느 날 빨리 뛰고 있는 여러분을 발견할 것이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책을 쓸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라. 책을 써라.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엄청난 책이 나올 것이다."  
부모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나는 아이들 편이지 부모님들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님들은 내가 책에 예컨대 ‘착한 일을 해야 한다’와 같은 메시지를 담기 바란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 독자들이나 작품 속 인물들을 배신하는 행위다."  

어린이가 주인공을 새로 만들기는 힘들기에 윌렘스는 5살배기도 베낄 수 있는 그림으로 주인공 제안한다.

어른과 어린이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렇다. 어른과 어린이는 DNA가 99.99 퍼센트 같다. (웃음) 어린이가 어른보다 상대적으로 ‘덜 똑똑하다’고 할 수도 없다. 어린이는 어른에 비해 다른 것이 있다면, 어린이가 이 세상에서 ‘신참’이라는 사실뿐이다. 어린이는 세상이라는 파티에 지금 막 도착한 사람과 같다. 파티장은 처음에는 낯선 곳이다. 어리둥절하다. 처음에는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와인은 어디 있는지 안주거리는 어디 있는지 모르기에 약간 당황스럽다. 하나하나 알아가는 가운데 자신감 같은 것이 생긴다."  
세상의 어려움은 많은 부분 인간관계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인간관계를 다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경우는 ‘타인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내가 특별 초청 손님’인 경우다. 두번째 경우는 ‘내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타인이 특별 초청 손님’인 경우다. 나는 첫 번째 경우가 더 건강한 관계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K-동화책의 시대가 올 것인가.  
"한국 문화라는 특수한 문화에서 추출한 보편적인 아이디어를 담은 동화책이 나온다면, 온 세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읽을 것이다. 간단한 문제다. 또 행운과 인내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모 윌렘스는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칼데콧 아너 상도 세 번 받았다. ‘세서미 스트리트’(1993~2002년, 9개 시즌)로 에미상(집필진 20여명 공동수상)을 여섯 번 받았다. 뉴욕타임스 기사(2020년 11월 23일자)는 윌렘스가 닥터 수스(Dr. Seuss, 1904~1991)와 찰스 슐즈(1922~1947)와 같은 문화적 위상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윌렘스가 수스나 슐즈 보다는 안트완 드 생텍쥐페리(1900~1944)와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를 비롯해 『어린왕자』로 철학을 가르치는 교육 현장이 많다. (부수로만 따지면 생텍쥐페리가 1억 4000만부를 팔았다고 하기에 ‘고작’ 수 백만 부를 판 윌렘스는 좀 갈 길이 멀다고 볼 수도 있다.)

윌렘스가 생텍쥐페리의 전통을 잇는다. 그림책 세계에서 윌렘스만큼 철학을 중시하는 작가도 많지 않다. 또 윌렘스는 생텍쥐페리처럼 글과 그림을 함께 창안한다. 글을 싫어하던 아이들이 윌렘스의 그림책을 읽더니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입소문도 있다. 윌렘스는 우리나라 어머님들을 포함해 세계 많은 어머님들이 사랑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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