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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기 장악력 세졌다…대통령실이 노리는 지지율 승부수 [추석이후 정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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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추석 후 정국 운영을 묻는 기자의 말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한 말이다. 1일부로 정기 국회가 개원했고 내달 4일부터 국정감사가 시작되는 등의 정치 일정을 얘기한 것이자, 국정 운영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윤석열표 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기도 하다. 이 관계자는 “대선 때 약속했던 여러 정책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국회와의 원활한 협조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우선 여당과의 호흡부터 더 긴밀히 조율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 약식 문답에서 태풍 힌남노 피해자를 언급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 약식 문답에서 태풍 힌남노 피해자를 언급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 관계자의 말마따나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용산은 신발 끈을 동여매는 분위기다. 취임 초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던 윤석열 대통령도 최근엔 “국민의 뜻을 헤아려 부족한 부분을 채우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당장 윤 대통령부터 정제된 언어를 쓰기 시작했다. 취임 초 도어스테핑(doorsteppingㆍ약식문답) 때 거친 언사로 비판을 받았던 모습이 사라졌다. 민감한 현안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 “맥이 빠졌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그만큼 현안에만 집중하는 효과도 있다는 평가다. 태풍 ‘힌남노’를 전후로 철저한 대비와 신속한 후속 조치를 강조한 게 대표적이다.

내부 정비 차원에선 일차적으로 대통령실을 흔들었다. 홍보수석을 바꿨고, 정책기획수석을 신설했다. 정무 1ㆍ2 비서관을 비롯한 비서관 다수와 ‘윤핵관’ 라인 등 수십명의 실무진도 교체했다. “최고들만 모여 일해야 한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처럼 긴장감을 불어넣고 집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실이 집중하겠다는 ‘정치’는 뭘까. 기본적으로 정책을 매개로 한 여당과의 호흡 강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번 대통령실 내부 정비를 통해 정책 전문가인 김대기 비서실장의 장악력이 강해졌다는 게 안팎의 공통된 평가다. 대통령실 쇄신 작업 자체가 “실무진들 중심으로 조직 진단을 해 보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를 김 실장이 도맡아 진행하면서 이뤄졌다. 전체적으로는 김 실장을 중심으로 대통령실이 정부와 당의 중간자 역할을 맡아 정책 조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그림이다. 정책기획수석 신설과 이관섭 전 무역협회 상근부회장 기용에도 김 실장의 아이디어가 대폭 반영됐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당정 협의부터 내실을 다져갈 것”이라며 “일을 내각에 맡기는 기조에는 변함없지만, 전체 큰 틀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그립이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통적 의미의 정치, 즉 정무 기능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대통령실은 7일 신임 정무 1ㆍ2 비서관으로 전희경 전 의원과 장경상 국가경영연구원 사무국장을 임명했다. 두 사람은 각각 현장과 전략에 강점이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을 주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추석 이후 국정운영의 '키 맨'이 될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사진은 7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 발표 및 대통령실 조직 개편 등과 관련한 현안 브리핑을 하는 김 실장.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정치권 안팎에서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을 주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추석 이후 국정운영의 '키 맨'이 될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사진은 7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 발표 및 대통령실 조직 개편 등과 관련한 현안 브리핑을 하는 김 실장.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그럼에도, 윤 대통령 앞에 펼쳐진 길은 평탄하지 않다. 내년 하반기부터 총선 국면이 본격화하는 까닭에 시간도 마냥 윤 대통령 편이 아니다. 20~30%대에서 정체돼있는 국정 지지율을 끌어올릴 기간이 실질적으로 1년 남짓 남았다는 의미다. 당장 내년 10월에는 22대 총선 출마를 희망하는 공직자들의 줄사퇴가 예정돼있다. 그 전까지 지지율을 반등시키고 여권 정비를 마치지 않으면 등 떠밀리듯 쇄신을 강요당하는 모양새가 연출될 수 있다.

국민의힘은 혼란 그 자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당 대표가 물러나고 대안으로 계획했던 비대위가 좌초된 외형적 상황뿐 아니라 권성동ㆍ장제원 의원 등 원조 ‘윤핵관’의 퇴조와 일부 초ㆍ재선 중심 등 ‘신핵관’의 등장, 쌓여가는 ‘비(非)윤’의 소외감 등이 난마처럼 얽혀있다. 대통령실은 공식적으로는 “비대위 상황과 전당대회 개최 시기 등은 당이 자율적으로 중지를 모아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지만, 대통령실의 관여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인 이유다.

당장 여의도 초ㆍ재선 의원 중에선 최근 윤 대통령과 통화했다는 이들이 있고, 김대기 실장도 의원들과의 접점을 넓혀가는 중이라고 한다. 정치권에서 “윤 대통령이 친정 그룹 구축에 나선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정책 드라이브를 통한 여당과의 공조 강화와 내부 다지기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답보 상태가 이어질 경우, 연말을 기해 중폭 개각 등의 2차 쇄신을 피해가기 어려울 전망이다.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인사 난맥상이 꼽히기 때문이다. 일부 정치인 장관의 역할론도 거론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여론이 반전되지 않는다면, 승부사적 기질이 강한 윤 대통령으로서는 분명 또 다른 카드를 꺼내 들 것”이라며 “개각을 통해 정치인 장관들을 당으로 돌려보낸 뒤 역할을 맡기는 방안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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