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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 서울’ 대성공…한국미술 기회냐 위기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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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서울 코엑스에서 2일 개막한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에는 행사 3일차인 4일에도 관람객이 줄을 이었다. [뉴스1]

서울 코엑스에서 2일 개막한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에는 행사 3일차인 4일에도 관람객이 줄을 이었다. [뉴스1]

박물관이나 미술관 전시가 아니다. 판매 목적의 큰 미술 장터다. 그런데 나온 상품이 범상치 않다. 고대 이집트 미라가 담겼을 나무관도 있고,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진품 드로잉과 회화도 있다. 미술관에서나 보던 마르크 샤갈, 조지오 모란디의 아담한 작품도 있다. 작품 가격은 수십억원이다.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의 첫 한국 행사인 ‘프리즈 서울’(이하 프리즈)과 한국화랑협회가 여는 한국국제아트페어 ‘키아프 서울’(이하 키아프)이 2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했다. 연일 성황이다. 개막일부터 VIP 관람객이 장사진을 이뤘고, 4일에도 전시장 입구는 관람객으로 북새통이었다. 코엑스 1층 A·B홀의 키아프에 164개, 3층 C·D홀의 프리즈에 110여개 등 300개 가까운 갤러리가 장터에 참여했다.

개막일부터 하루 1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한 하우저앤워스 갤러리. 전면에 보이는 38억원짜리 조지 콘도의 붉은 초상화는 개막 당일 한국 사립미술관에 판매됐다. [연합뉴스]

개막일부터 하루 1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한 하우저앤워스 갤러리. 전면에 보이는 38억원짜리 조지 콘도의 붉은 초상화는 개막 당일 한국 사립미술관에 판매됐다. [연합뉴스]

프리즈에는 세계 최정상 갤러리인 가고시안·하우저앤워스·리슨갤러리 등이 참여했고, 고지도와 서적, 심지어 고대유물을 취급하는 갤러리도 나왔다. “이런 작품을 서울에서 볼 수 있다니” 등 곳곳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글래드스톤 갤러리에서 선보인 스위스 작가 우고 론디노네의 조각품. 하나에 2억2000만원짜리 이 작품은 세 점이 모두 판매됐다. [연합뉴스]

글래드스톤 갤러리에서 선보인 스위스 작가 우고 론디노네의 조각품. 하나에 2억2000만원짜리 이 작품은 세 점이 모두 판매됐다. [연합뉴스]

개막일 저녁에 국내에선 상상하기 어려웠던 매출 기록이 나왔다. 세계 메가 갤러리 중 하나인 갤러하우저앤워스는 이날 조지 콘도(65)의 ‘붉은 초상화’(‘Red Portrait Composition’, 2022)를 38억원(280만 달러)에 판매했다. 국내 한 사립미술관이 샀다. 미국 작가 마크 브래드퍼드의 그림은 한 개인 컬렉터에게 24억5000만원(180만 달러)에 팔렸다.

프리즈에서 국제갤러리가 선보인 김환기의 1973년 회화 ‘고요’. 한국 미술의 자존심을 보여주듯 전면을 장식했다. 2017년 4월 케이옥션 경매에서 65억 5000만원에 낙찰된 작품이다. [연합뉴스]

프리즈에서 국제갤러리가 선보인 김환기의 1973년 회화 ‘고요’. 한국 미술의 자존심을 보여주듯 전면을 장식했다. 2017년 4월 케이옥션 경매에서 65억 5000만원에 낙찰된 작품이다. [연합뉴스]

수억~십수억원대 작품이 줄줄이 판매됐다. 리슨갤러리에선 거장 아니쉬 카푸어 작품이 10억원,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에선 안토니 곰리의 작품이 약 8억원(50만 파운드), 게오르그 바셀리츠 회화가 16억3000만원(120만 유로)에 팔렸다. 국내 12개 화랑이 프리즈에 참여했는데, 그중 하나인 국제갤러리가 박서보 회화 1점을 7억원, 하종현 작품을 5억원, 알렉산더 칼더 작품을 5억원에 판매했다.

프리즈에서 작품을 보는 관람객. [연합뉴스]

프리즈에서 작품을 보는 관람객. [연합뉴스]

사이먼 폭스 프리즈 대표는 4일 “프리즈 서울은 우리 기대를 뛰어넘었다”며 “서울의 에너지는 대단했고, 참여 갤러리와 세계 방문객으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우리는 벌써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리즈에서 남춘모, 김택상, 김근태, 이진우 작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한 리안갤러리 안혜령 대표는 “프리즈에서 작품이 완판될 정도로 실적이 좋았다. 미국과 홍콩 컬렉터들에게 판매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우리 목표는 판매 자체는 아니었다. 외국에서 온 갤러리와 미술관 관계자들과 만나 해외 전시를 논의한 게 진정한 성과”라고 말했다.

박서보와 이배 작가를 전면에 내세워 주목받은 조현갤러리 최재우 대표도 “프리즈는 우리에게 힘을 실어준 큰 기회였다”며 “서울에서 세계적 행사가 열리니 해외 거물급 인사를 연이어 만날 수 있었다. 당장 밝힐 순 없지만, 해외 유수 미술관과 전시 계획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애콰벨라 갤러리가 출품한 파블로 피카소의 1937년작 ‘ 울이 달린 빨간 베레모 여인’. 작품가가 한화 600억원에 달한다. [사진 프리즈]

애콰벨라 갤러리가 출품한 파블로 피카소의 1937년작 ‘ 울이 달린 빨간 베레모 여인’. 작품가가 한화 600억원에 달한다. [사진 프리즈]

프리즈에 맞춰 미국 구겐하임미술관, LA카운티미술관(LACMA), 뉴욕현대미술관(MoMA), 영국 테이트미술관 등의 관장이 방한했다. 이들은 일정을 쪼개 이건용, 김구림 등 중견작가를 직접 만났고, 리움미술관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일대 미술관·갤러리를 찾아 전시를 관람했다.

문제는 키아프다. 프리즈와 키아프는 공동 주최를 내걸었지만, 키아프는 부대 행사 같았다.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키아프전시작은 역부족이었다. 3일 키아프에서 만난 한 갤러리 대표는 “3층에서 우리 작품을 선보여야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나란히 열리니 확실히 주목을 덜 받는다. 키아프가 여러 면에서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실제로 “앞으로 키아프가 프리즈의 위성 장터가 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조현갤러리가 선보인 김종학 화백의 ‘랜드스케이프’. [사진 프리즈]

조현갤러리가 선보인 김종학 화백의 ‘랜드스케이프’. [사진 프리즈]

같은 기간 세텍에서 열리는 위성 페어 ‘키아프 플러스’도 관람객이 적어 화랑협회가 마음을 졸였다. 황달성 화랑협회장은 “안타깝지만 예상한 일이다. 키아프가 세계적인 페어와 갑자기 동급이 될 순 없다. 뼈아픈 현실이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면서도 “한국 미술이 세계 시장에서 이렇게 주목받은 것도 처음 아니냐”고 말했다.

프리즈와 키아프에 모두 부스를 연 학고재 갤러리 우찬규 대표는 “한국 미술시장이 한 단계 도약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미술이 성장하고 성숙하려면 우리 컬렉터가 외국 작가 작품을 사는 데 주력하는 것으론 안된다”며 “국내 컬렉터가 한국 작가에 애정과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세계에서 주목받는 스타 작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프리즈와 키아프를 모두 돌아본 한 미술계 관계자는 “무한경쟁의 문이 열렸다. 한국 화랑들은 잘 살아남거나, 사라지거나 하는 기로에 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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