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은 ‘대중교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꾸 대중이라는 말 안에 장애인이 있는 것은 까먹는 모양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휠체어 시위가 열리는) 오늘 혜화역에 갈 일이 있었다면, 나는 혜화역에 내렸다가 영문도 모르고 다시 전 역으로 돌아가 한 정거장을 휠체어로 건너고, 지각을 사과하느라 연신 굽신거려야 했을 것이다.
뇌병변 장애인 김지우(22)는 휠체어 위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많다.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유튜버, 22세 여성, 아마추어 모델, 대학생, 연극배우, 라디오 DJ 등의 본캐(본캐릭터)와부캐(부캐릭터)를 넘나들며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그려 나가고 있다. '발랄한 장애'를 담은 유튜브 채널 '굴러라 구르님(Rolling Guru)'을 고등학교 시절부터 6년간 운영해 지난해에는 '유튜브와 함께 선정한 50인의 크리에이터'에 오르기도 했고 그 단편들을 모아 최근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휴머니스트)'를 펴냈다. 가끔 뾰족하긴 하지만 “우리 좀 같이 살아봅시다”라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고 싶은 말 하나, 장애인은 왕따 아니면 회장
아주 어릴 땐 크면 장애가 낫는 줄 알았다. 유아차를 타고 초등학교 입학하며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걸, 비장애인들과 비비며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새 학기 첫날 힘센 애가 와서 때리면 왕따가 되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학급의 회장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장애인에겐 중간이 없었다. 다행하게도(?) 공부가 쉬웠고 초등학교 6년간 임원을 놓치지 않았다. 수학여행은 물론 임원 수련회도 빠지지 않았다. 운도 좋았다. 다녔던 초·중·고교엔 모두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평범한 등굣길을 위해 엄마가 울며 무릎을 꿇을 일도 없었다.
하고 싶은 말 둘, 문턱을 넘다
지난 2020년에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다.“대학생활은 학교 밖에서도 많이 하게 되는데, 작은 문턱을 넘지 못해 식당가기도 불편했어요” 친구들과 '서울대학교 배리어프리(barrier free)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서배공)'을 만들어 문턱 없애기에 도전했다. 직접 줄자를 들고 상점들을 돌며 경사로 설치를 설득했다. “그런 사람들 여기 안 와”란 말을 들으며 거절당하기도 했다. 관계기관의 도움을 받아 6개월간 노력해 서울대입구역과 낙성대역 근처 32곳의 상점에 경사로를 설치했다. 서배공은 이 결과를 모아 휠체어 지도 '샤로잡을 지도'를 만들어 배포했다. “모든 사회적 행동의 기본은 집 밖으로 나오는 겁니다. 휠체어에 몇cm는 거대한 장벽과도 같아요” 그렇게 마주한 문턱을 넘어섰다.
하고 싶은 말 셋, 휠체어는 나의 아이덴티티(Identity)
'조선 시대에도 휠체어가 있었다면?', '휠체어로 산타 썰매 만들기', '휠체어에 앉은 오월의 신부'... '이달의 휠체어라는 타이틀로 유튜버 구루님으로 활동하며 만든 콘텐트 들이다. 휠체어를 놀이 수단으로 삼아 장애와 더해졌을 때 어울리지 않는 소재들을 골랐다. “휠체어는 저의 본질, 아이덴티티고, 이걸 통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김지우는 장애인의 당연한 '바램'을 '욕심'으로 보는 사회적인 시선에 항변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달의 휠체어를 통해 “몸도 불편한 데 가만히 있지”라는 시선을 뒤집어 엎는다. 휠체어에 앉아 조선 시대로의 시간여행, 그라피티 앞에서 스트리트 댄서가 되어보고 심지어 수영도 즐긴다. 서슴없이 존재를 드러낸다. 이를 통해 장애 인권은 어렵고 무거운 주제가 아니라 일상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하고 싶은 말 넷, 슈퍼 장애인
“왜 TV에는 죄다 슈퍼 장애인만 나올까요. 등장이 반가운 건 사실이지만, 장애를 가진 배역은 이유가 있어야만 하죠” 자폐 스펙트럼을 다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관해 질문하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미디어에서 장애와 서사는 떨어진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자극이 없는 '순한 맛' 우영우는 좋았지만, 그냥 주변에 있는 조연으로서의 우영우들을 바란다고 했다. “장애인이 사연 없는 캐릭터, 종종 이름마저 헷갈리는 '흔한 주변인 1' 정도의 인물로 등장해도 좋지 않을까요”
하고 싶은 말 다섯, 장애인은 '000' 해야 하나요?
그는 장애인의 삶이 극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단지 여기에 살고 있다고 했다. 평범한 모습으로 세상에 비집고 들어가기를 원한다고 했다. 김지우의 방식은 유쾌하다. 여기에서 유튜버, 연극배우 등의 부캐가 빛을 발한다. 그에게 휠체어는 타인의 신기함을 견디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눈길을 끄는 패션 아이템이다. 아기자기하게 폰꾸(폰꾸미기),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처럼 휠꾸(휠체어 꾸미기)를 보여준다. 단순하게 예쁨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당당함을 담았다. 자신에게 달린 악플을 읽으며 일명 '암살개그'를 하기도 한다. 평범한 연애도 하고, 이별도 했다. 이런 소재들을 통해 아직은 준비가 부족한 사회에 일침을 가한다. “장애 인권 개선은 멀리 있지 않아요” 장애를 좀 더 가볍게 봐달라고 했다. 실수할까 봐 접근조차 안 하는 것보다 장난도 쳐보고 실수도 해 가면서 같이 살아보자 했다. 김지우의 부캐들은 장애인이 목소리를 전달하는 통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