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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통행료 4일 면제 700억 손실…정부 생색에 공기업만 '골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현장에서]

 올 추석에는 나흘간 전국 모든 고속도로의 통행료가 면제된다. 사진은 2019년 설 연휴 통행료 면제 모습. 연합뉴스

올 추석에는 나흘간 전국 모든 고속도로의 통행료가 면제된다. 사진은 2019년 설 연휴 통행료 면제 모습. 연합뉴스

 "올해는 3일이 아니라 하루 더 늘어서 나흘이 됐네요. 휴우…."

 모처럼 연락을 주고받은 한국도로공사(도공) 관계자는 추석 연휴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얘기가 나오자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앞서 정부는 올 추석 연휴 4일간(9일~12일) 전국 고속도로의 통행료를 면제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부터 명절마다 시행하던 통행료 면제는 코로나19의 확산 탓에 2020년 추석부터 올해 설까지 운영이 중단됐다. 이번에 이를 다시 하면서 기간도 기존 3일에서 4일로 늘렸다.

 코로나 여파와 물가 급등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는 취지라고 한다. 그런데 왜 도공 관계자는 한숨까지 쉬며 어려움을 토로했을까.

 사연은 이렇다. 그동안 명절에 통행료를 받지 못하면서 도공이 입은 손실은 연간 1000억원에 육박한다. 설과 추석기간 손실이 각각 평균 500억원씩 된다. 이번에는 하루가 더 늘어나 손실액은 700억원 가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얼핏 보면 한해 통행료 수입만 4조원을 넘는 도공이 통행료 무료 탓에 손해 좀 본다고 별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다르다.

 명절 통행료 면제, 연간 1000억 손실 

 도공의 부채는 지난해 기준으로 33조원을 넘는데 대부분 고속도로 건설 때 빌린 돈이다. 신규로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정부가 지원해주는 돈이 채 절반이 안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정부가 건설비의 20%만 대주는 경우까지 있다.

 그래서 막대한 부채가 쌓여 한해 이자만 1조원에 육박하는 데다 문재인 정부가 시행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인해 인건비와 복리후생비 부담도 130억원 가까이 늘었다.

 또 지난 정부가 추진한 민자고속도로 통행료 인하 정책 탓에 천안논산고속도로와 대구부산고속도로에 도공이 선투자해야 하는 돈만 각각 1조 5000억원과 2조 4000억원이다. 대부분 차입금으로 충당하는 데다 나중에 직접 운영해서 이 돈을 회수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나마 휴게소와 주유소 임대 등으로 벌어들인 수입(약 1800억원) 덕에 간신히 지난해 당기 순이익 330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 추석에 통행료 무료기간이 늘면서 200억원 안팎의 추가 손실이 전망된다.

 여기에 또 한가지 부담 거리가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꾸린 '고속도로 서비스 개선 TF'에서 도공에다 휴게소 음식값 인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값을 10~20%가량 낮추던가 아니면 고속도로 이용객이 휴게소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마일리지를 제공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통행료를 낼 때마다 일정 비율로 마일리지를 적립해주자는 건데 항공사 마일리지와 마찬가지로 도공의 부채로 잡히게 된다.

 소폭 흑자가 당장 적자로 돌아설 판  

 또 이용객이 마일리지를 사용하면 도공이 해당 업소에 그만큼 비용을 내줘야만 한다. 아직 명확하게 계산이 나온 건 아니지만 대략 300억원 이상 부담이 생길 거란 얘기도 나온다.

 이렇게만 따져보면 지난해 330억원의 당기 순이익이 한순간에 적자로 돌아설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게 도공 관계자가 한숨을 내쉰 첫 번째 사연이다.

 그런데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기획재정부가 매년 공기업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경영평가(경평)다. 이 평가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해당 공기업의 임직원이 받는 성과급 규모가 달라진다.

지난 6월 공기업 경영평가 결과 발표 장면. 연합뉴스

지난 6월 공기업 경영평가 결과 발표 장면. 연합뉴스

 사실 공기업의 성과급은 일반회사에서 정규 급여 외에 따로 주는 보너스(상여금)와는 성격이 다르다. 공기업의 성과급은 본래 받아야 할 급여에서 일부를 떼어내서 정부가 보관하고 있다가 경평 결과에 따라서 다시 공기업들에 차등해서 나눠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 자기가 받아야 할 급여인 건데 평가 결과가 나쁘면 이걸 다 돌려받지 못하게 돼 사실상 임금이 깎이는 셈이 된다. 공기업이 매년 경평에 목을 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상황이 이런 데다 기재부는 지난달 18일 발표한 공공기관 관리체계 개편 방안에서 경평의 재무성과 배점을 2배로 늘리겠다고 했다. 쉽게 말하면 이익을 얼마나 냈는지, 손해는 안 봤는지를 더 비중 있게 평가하겠다는 얘기다.

 지원 지시하고 경평 땐 나 몰라라  

 이를 도공에 적용하면 당장 내년 경영평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미 기재부는 올해 경평에서 적자를 낸 공기업에 대해 임원들의 성과급 자율반납을 권고한 바 있다.

 말이 자율이지 사실상 강제로 반납을 요구한 거나 마찬가지다. 공기업의 목줄을 쥐고 있는 기재부 요청을 거절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게다가 왜 적자가 났는지는 경평에서 따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높다.

 실제로 지난해 적자를 기록해 임원 성과급을 모두 반납한 인천공항의 경우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공항 면세점 등 입점업체의 임대료를 면제해주고, 항공사 주기료를 지원해준 탓에 적자가 났다. 모두 정부가 지시한 지원책들이다.

도공은 천안논산고속도로의 통행료 인하를 위해 1조 5000억원을 선투자해야만 한다. 연합뉴스

도공은 천안논산고속도로의 통행료 인하를 위해 1조 5000억원을 선투자해야만 한다. 연합뉴스

 인천공항 관계자는 "코로나 탓에 항공편은 다 발이 묶인 데다 정부 지시로 면세점 등의 임대료까지 대폭 깎아줬는데 이제 와선 적자 봤다고 불이익을 주는 게 말이 되냐"며 "지난해 적자가 7500억원이었는데 임대료 감면액이 1조원으로 감면정책만 없었다면 2500억원 흑자였던 셈"이라고 토로했다.

 도공으로선 가장 큰 수입원인 통행료가 오랜 기간 동결된 것도 부담이다. 또 다른 도공 간부는 "돈 들어올 곳은 막혔는데 돈 쓸 일만 자꾸 정부가 요구하면서 경평은 경평대로 따로 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국민부담 줄여주겠다는 정부의 뜻은 가상하다. 하지만 그 부담을 공기업에 떠넘기고, 또 경평에선 그런 사정은 모른 척한다면 그야말로 정부는 생색만 내고, 그 뒤에서 공기업은 골병이 드는 악순환을 면키 어렵다. 공기업이 병들면 피해는 결국 국민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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