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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유홍준의 문화의 창

전국의 근·현대거리와 서울 성북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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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올해는 추석이 유난히 일찍 들어서서 가을을 맞이하는 차비가 사람을 바쁘게 한다. 그중 가장 분주하게 가을을 준비하는 곳은 각 지방자치단체들이다. 심각한 주민 감소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각 지방 도시들은 관광의 활성화를 위해 제 나름의 관광 브랜드를 개발하여 명산의 단풍과 문화유산을 자랑하기도 하고, 지방 특산물 축제를 내세우기도 하는데 근래에 들어와 크게 부각하고 있는 것은 전국의 ‘근현대거리’이다.

이 근현대거리들은 대개 일제강점기부터 조성된 구시가지로 경제적 수탈의  본거지였던 항구도시 인천, 군산, 목포, 진해 등과 내륙의 대도시 대구, 수원, 전주는 물론이고 남원, 담양, 경산, 강경, 안성, 부여 같은 중소도시의 면소재지까지 조성되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지자체 가을 축제의 새 풍속도
관광지로 떠오른 근·현대 거리
서울 성북동은 문화예술인 마을
한용운, 이태준, 김용준, 배정국

대개는 도심 번화가에서 밀려난 좁은 도로에 지붕 낮은 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사진관, 이발소, 책방, 방앗간, 떡집, 수퍼 등 오래된 가게 방들과 전통시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이한 것은 여기에는 나이든 세대들이 향수에 젖어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점이다. 이들은 궁핍하게 살던 그 시절의 묵은 동네에서 오히려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이루어진 현대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인간적 체취와 삶의 향기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근현대거리들은 그네들의 정서에 맞게 깔끔하게 리노베이션 되어 카페, 식당, 피자집, 떡볶이집, 제과점, 액세사리 가게 등이 들어섬으로써 모던한 분위기의 쾌적한 거리로 바뀌어 있다.

상허 이태준의 ‘수연산방’ 돌담과 일각대문.

상허 이태준의 ‘수연산방’ 돌담과 일각대문.

서울의 북촌과 서촌이 각광받고 있는 것도 이런 레트로(retro) 열풍 속에서 나온 것인데 그중 서울 성북동은 전국 어디에서도 달리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인문정신이 살아 있는’ 근현대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성북동에는 성격이 다른 세 부류의 동네가 있다. 하나는 한양도성 성곽 북쪽 응달진 산자락에 6·25동란 때 주로 함경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살면서 형성된 북정마을이다. 이곳은 서울에 남아 있는 마지막 달동네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1970년대에 삼청터널이 개통된 이후 양지바른 남쪽 산자락을 개발하여 형성된 각국 대사관저들과 ‘꿩의 바다’라는 길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저택의 부촌이다. 그리고 근현대거리로서 성북동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는 곳은 1930년대부터 형성된 성북천변의 주택들이다.

성북동의 역사를 보면 한양도성 축조 당시엔 성벽에서 10리 되는 곳은 성저십리(城底十里)라고 하여 ‘선잠단’ 이외에는 자연 그대로 보존한 당시의 그린벨트였다. 그러다 약 300년 전, 영조시대에 둔전(屯田)이 설치되면서 둔전 주민들이 베와 모시를 표백하는 마전과 궁중에 메주를 납품하며 살았다. 이 둔전 주민들은 유실수로 복숭아를 많이 심어 ‘마전골의 북둔도화(北屯桃花)’는 한양의 명승지로 되어 조선 말기엔 권세가들의 별장들이 곳곳에 들어서 ‘서울 성북동 별서’ ‘일관정’ ‘오로정’ 등 10여 채의 별장이 있었다.

그러다 1930년대에 경성(서울)의 인구가 폭증하여 한양도성 밖 변두리로 신흥주택들이 들어설 때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성북천변으로 들어와 살았다. 1933년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과 상허 이태준의 ‘수연산방’이 자리잡은 이후 근원 김용준의 ‘노시산방’, 수화 김환기의 ‘수향산방’, 백양당 출판사 사장 인곡 배정국의 ‘승설암’, 시인 조지훈의 ‘방우산장’이 들어섰고 ‘천변풍경’의 구보 박태원의 싸리울타리 초가집도 있었다. 성북동은 자연풍광이 살아 있는데다 당시 서울 인구의 4분의 1이나 되는 일본인들이 성북동으로 거의 들어오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고 했다.

6·25동란 이후에는 ‘성북동 비둘기’의 시인 김광섭,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한국화가 운보 김기창, 영원한 박물관장인 혜곡 최순우, 조각가 송영수, 한국화가 산정 서세옥 등이 살았으니 가히 인문정신이 살아 있는 우리나라 근현대 문화예술의 거리라고 할 만하다.

거기에다 ‘간송미술관’ ‘가구박물관’ ‘우리옛돌박물관’ ‘변종하 미술관’ 같은 유수한 사립미술관들이 들어서 있고, 백석 시인의 영원한 연인인 김자야의 ‘대원각’ 요정이 절집으로 다시 태어난 법정 스님의 ‘길상사’도 있다. 이리하여 2013년, 성북동은 서울시 최초로 ‘역사문화지구’로 지정되었다.

오늘날 성북천은 복개되어 삼선교에서 삼청터널로 이어지는 성북동길 대로변에는 기사식당 쌍다리 돼지불백을 비롯하여 게장백반의 국화정원, 마전터 칼국수, 국시집, 누룽지백숙 등 고만고만한 단품요리 맛집들이 들어섰고 근래에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양식당들이 생겨나면서 성북동은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대표적인 근현대 문화예술의 거리로 되었다.

이 가을에도 많은 분들이 ‘최순우 옛 집’ ‘수연산방’ ‘심우장’을 들려 보고 비좁은 골목길로 해서 북정마을에 올라 그곳 한쪽, 벽화와 함께 쓰여 있는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를 가만히 읊조려 보는 답사 길에 오르기를 강권해 본다.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