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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던 충정공 민영환 동상, 충정로에 자리 잡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충정공 민영환 선생의 동상이 충정로 사거리 교통섬에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30일 오후 열린 준공식에는 민영환 선생의 증손 민명기 여사와 민홍기 씨를 비롯해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이홍구 전 국무총리 등이 참석했다. 우상조 기자

충정공 민영환 선생의 동상이 충정로 사거리 교통섬에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30일 오후 열린 준공식에는 민영환 선생의 증손 민명기 여사와 민홍기 씨를 비롯해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이홍구 전 국무총리 등이 참석했다. 우상조 기자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욕됨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우리 민족은 장차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리라.”

서울 충정로에 충정공 동상이 우뚝 섰다. 충정로는 1946년 민영환(1861~1905) 선생의 시호 ‘충정(忠正)’을 딴 길 이름으로, 비로소 이름의 주인이 돌아온 셈이다.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종근당 건물 앞에서 충정공 민영환 동상 이전 기념식이 열렸다. 선생의 증손녀 민명기 여사와 민홍기씨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민영환 선생은 17세에 과거에 급제한 뒤 대한제국 말기 고위관리를 지냈다. 고종 황제를 도와 조선은행 창립, ‘대한제국’ 국가 제정, 장충단 건립 등에 관여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을 처단하고 늑약을 폐기해달라’는 상소를 올렸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고종 황제가 ‘충정’ 시호를 내렸고, 해방 직후인 46년, 김형민 당시 서울시장이 충정공의 별장이 있던 지역 도로(충정로 사거리~서대문역 교차로)를 ‘충정로’로 명명했다.

충정공 동상은 1957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거리에 처음 세워졌다. 70년에 종로구 돈화문 옆으로, 2003년 다시 종로구 조계사 인근 옛 우정총국 터 근처로 옮겨졌다. 마침내 충정로에 안착했다. 동상 발치에는 그가 남긴 유서도 새겼다.

동상의 발치에는 그의 유언이 쓰였다. 김정연 기자

동상의 발치에는 그의 유언이 쓰였다. 김정연 기자

민영환 선생의 증손자 민홍기씨는 기념식에서 “2003년 돈화문 옆에 있던 동상을 조계사 인근으로 이전할 때, 옮겨가는 장소가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줄 수 없는 자리여서 마음이 무거웠다”며 “새 위치에 자리한 동상을 보니 마음의 짐이 날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념식에는 이성헌 서대문구청장과 이동화 서대문구의회 의장, 서울시의회 정지웅·문성호 의원, 주한 프랑스대사관 세자르 카스트랭 정무참사관 등도 참석했다. 이성헌 구청장은 “을사늑약으로 자주권을 상실하는 걸 막지 못한 책임을 스스로 지고 유명을 달리하신 민영환 지사의 동상을 서대문구 충정로에 모시게 돼 매우 자랑스럽고 감사하다”며 “충정공이 나라를, 국민을 위했던 마음은 영원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나라가 어려웠던 상황에서 민영환 공은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며 본인이 직접 나서서 지식인의 모습을 보였다”며 “제국주의 시대였던 19세기 말, 난세에서 조선이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답답한 마음으로 혼자 고민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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