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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뒤통수 맞은 한국산 전기차…정부 대표단, 미국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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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5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미국의 반도체·전기차 지원법 대응 업계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산업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5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미국의 반도체·전기차 지원법 대응 업계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산업부]

한국산 전기차에 대당 최대 1000만원의 보조금을 끊어버린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항의하기 위한 정부 합동대표단이 29일 미국으로 떠났다. 뒤늦게 미 행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로비에 총력전을 벌이자는 건데 전망은 밝지 않다.

이번 정부 대표단은 안성일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 손웅기 기획재정부 통상현안대책반장, 이미연 외교부 양자경제외교국장 등으로 구성됐다. 2박 3일 동안 무역대표부(USTR)·재무부·상무부·의회 등을 방문해 “인플레이션감축법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맞지 않고, 최근 한·미 동맹 기조에 역행한다”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북미 지역(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준다’고 규정한 법을 “한국에서 생산된 현대·기아차에는 유연하게 적용해달라”는 요구인데, 미국이 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정부 당국자는 “11월 중간선거까지 바이든 행정부가 유연성을 발휘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업계는 중간선거 이후라도 미국이 시행령을 통해 인플레이션감축법을 완화할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 지급 조항의 핵심이자 현대·기아차에 직격탄을 날린 ‘북미 지역 최종 조립’ 요건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시행령을 추가로 제정해 한국산 전기차도 보조금 혜택 대상에 다시 포함하자는 구상이다. 현행법대로 라면 미국에서 현대·기아의 전기차는 미국산 모델에 비해 대당 최대 1000만원 비싸게 팔리게 된다. 올해 상반기 기준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기아차 점유율은 9%로, 테슬라(70%)에 이어 2위다.

정부와 업계는 ‘최종 조립’ 조건 외에 ‘광물·부품’ 관련 조건은 미 재무부가 올해 연말까지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현재 인플레이션감축법에는 광물·부품의 북미 지역 및 미국과 FTA를 맺은 국가로부터의 최소 조달 비율이 연도별로 명시돼 있다. 정부 당국자는 “조달 비율은 이미 고정돼 있지만 여기에 해당되는 광물과 부품의 구체적인 품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WTO 규정 외에 FTA 규정 위반을 지적할 수 있다는 점도 공략 포인트다. 정부 당국자는 “현재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타격을 받은 주요국 중 미국과 양자 FTA를 맺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FTA의 내국민 대우 규정 위반을 근거로 따질 수 있는 게 우리만의 무기라면 무기”라고 말했다. 다만 중간선거 이후 바이든 행정부의 입지를 예단할 수 없고 유럽연합(EU)·일본 등 인플레이션감축법으로 타격을 받는 다른 국가와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기차는 미국에서 전략적으로 밀고 있는 주력 산업인 데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 기업에만 대놓고 면제를 주는 시행령을 추가로 만들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정부와 업계는 미국 설득에 총력을 다하되 기대 수준을 현실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감축법이 한국과 충분한 상의 없이 초고속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향후 미국과 경제 안보 및 기술 동맹까지 약속한 윤석열 정부에 경종을 울렸다고 분석한다. 정부가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반도체 협력체 ‘칩4’에 창립 멤버로 참여하며 개국공신 역할을 했지만, 미국 중심주의 경제 정책에 언제든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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