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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준호의 사이언스&

26일간 124만km 날았다, 한국 첫 달탐사선 ‘다누리’ 순항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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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대전 항공우주연구원 관제실 르포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

한국 최초의 달 궤도 탐사선 다누리(KP LO·Korea Pathfinder Lunar Orbiter)가 지구를 떠난 지 20여 일이 지났다. 다누리는 지난 5일 미국 플로리다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군기지에서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에 실려 우주로 올라갔고, 예정됐던 두 번째 궤도수정을 생략할 만큼 순항 중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다누리는 오는 12월 19일 달 궤도에 진입하기까지 4개월 반 동안 총 595만㎞에 달하는 BLT(Ballistic Lunar Transfer·탄도형 달 전이방식) 궤적을 따라 기나긴 항해를 해야 한다. 도중에 심우주통신 장비가 고장 날 수도, 궤도 수정을 담당할 추력기가 말썽을 일으킬 수도 있다. 모든 것이 한국으로선 첫 도전이다. 지난 26일 오후 다누리의 우주 항행 사령실인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달궤도선 임무 운영 관제실’을 찾았다.

내달 2일 가장 중요한 순간 맞아
태양·지구 중력 균형점서 궤적 수정
여주 지상국 등과 24시간 교신 유지

미 아르테미스호 4.5일만에 가지만
기술·예산 부족으로 137일간 항해

한국 최초의 달 궤도 탐사선(KPLO·Korea Pathfinder Lunar Orbiter) ‘다누리’의 우주 비행을 관제하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정현 선임연구원과 연구원들이 지난 23일 오후 대전 항우연 관제실에서 다누리의 현재 비행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한국 최초의 달 궤도 탐사선(KPLO·Korea Pathfinder Lunar Orbiter) ‘다누리’의 우주 비행을 관제하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정현 선임연구원과 연구원들이 지난 23일 오후 대전 항우연 관제실에서 다누리의 현재 비행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옥상에 지름 13m짜리 저궤도위성 관제 안테나가 설치된 위성운영동 1층. 165㎡(약 50평) 규모의 임무운영관제실 전면에 설치된 가로세로 12.2×1.4m의 대형 멀티플렉스 화면에 다누리의 모든 상황이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거리:124만㎞, 상대속도 초속 0.3㎞(시속 945㎞)’ 우주처럼 검은 화면 속에 붉은 글씨로 표시된 KPLO(다누리)가 지구를 떠나 태양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누리와 교신은 경기도 여주의 국내 최대 규모인 지름 35m짜리 심우주 지상국 위성안테나가 맡고 있다. 다누리는 이외에도 지상국과 24시간 교신을 위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 로스앤젤레스 골드스톤, 스페인 마드리드 위성안테나 등과 교대로 통신을 하고 있다.

오후 2시, 조영호 달탐사사업단 임무운영팀장의 지휘로 연구원 20여 명이 다누리의 6개 탑재체 중 하나인 고해상도카메라 루티의 실제 작동 테스트를 시작했다. 2031년 달 착륙선 착륙 후보지 탐색을 위해 달 표면 주요 지역의 지형을 정밀 관측하는 임무를 맡은 장비다. 예정된 명령에 따라 15초 동안 촬영한 지구와 달의 장면이 디지털 신호로 전송됐다. 조 팀장은“디지털 신호를 이미지로 바꿔 초점이 제대로 맞는지 등을 파악하고 실제 달 표면 촬영을 앞두고 정확하게 재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누리는 다음 달 2일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는다.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는 라그랑주 포인트 L1 지점 가까이(약 154만㎞) 간 다음 방향을 틀어 다시 지구와 달 쪽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조 팀장은 “다누리 발사 이후 최대 아홉 차례의 궤적수정 기동을 계획했는데, 이번 궤적수정은 세 번째에 해당한다”며 “2차 수정(8월 12일 계획)은 발사 2일차(8월 7일 오전 8시)에 실시한 1차 작업이 잘 되면서 생략했다”고 말했다. 기동에 필요한 모든 절차는 약 2시간 전에 지상에서 다누리에 보내 자동으로 수행하도록 한다. 성공 여부는 기동 후 48시간 동안 궤도 결정 후 분석과정을 통해 판별한다.

미국의 대형우주발사체(SLS)에 실린 달탐사선은 단 4.5일 만에 달까지 곧바로 달려간다. 하지만 다누리는 4개월 반 동안 총 595만㎞를 돌아 올해 말이나 달궤도에 도착하게 된다. 왜일까.

달 궤도선 경로

달 궤도선 경로

기술력과 예산 때문이다. 다누리는 애초 한국형발사체로 쏘아 올릴 수 있는 차세대 중형위성을 모태로 하면서 중량 550㎏으로 설계됐다. 당시엔 30일 만에 달에 도달하는 위상전이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설계 과정에서 임무 탑재체 6개를 싣다 보니 중량(678㎏·연료 260㎏ 포함)이 초과했다.

이 때문에 연료를 최대한 아끼며 달에 가는 BLT 궤적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에서 떠날 땐 발사체의 힘을 이용하고, 이후엔 태양의 중력에 끌려가다 궤적 수정을 통해 다시 지구와 달의 중력권으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위상전이 방식보다 연료 소모량을 약 25% 줄일 수 있다.

다누리는 기나긴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미국이 제시한 BLT 궤적을 따라가는 과정이지만, NASA가 전 과정을 지켜보고 있고 항우연과 정기적으로 회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뒤에 서서 다누리의 항행을 감독하는 셈이다.

NASA 홍보대사로 있는 폴 윤 미 캘리포니아 엘카미노대 교수는 “다누리는 미국 입장에서도 유인 달 착륙지 선정을 위한 중요한 미션을 가지고 있다”며 “미국에서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이번 탐사는 실패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공학부 교수는 “‘달 복귀 계획’이라는 미국의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NASA의 유인 달탐사용 대형우주발사체(SLS)가 발사되는 마당에 한국의 첫 달궤도 탐사선이 넉 달 반을 돌아가는 건 어찌 보면 가슴 짠한 일”이라며 “세계 최초 달~지구 인터넷 통신 등 의미가 있긴 하지만 왜 달에 가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자칫 갈라파고스형 탐사로 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