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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비밀] ‘傘(우산 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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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호 31면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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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없이 갑작스러운 비를 만났을 때, 어느 가게의 천막 아래에서 언제쯤 비가 그칠까 하염없이 하늘만 올려다본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혹은 우산을 챙겨 나왔더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하루종일 거추장스러웠던 날도 있다. 오락가락한 비 소식이 잦은 요즈음, 우산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운 존재이지 않을까.

우산을 의미하는 한자 ‘傘(산)’은 우산을 편 모양을 본뜬 상형자이다. 과거에는 지금의 쓰임과는 달리, 왕과 왕족이 행차할 때 햇볕과 비를 가리기 위한 의장용 기구였다. 본래 의미부인 ‘糸(실 사)’와 소리부인 ‘散(흩을 산)’이 합쳐진 ‘繖(산)’과 같이 쓰였는데, 점차 ‘傘(산)’의 쓰임이 우세해졌다. 사용 목적에 따라서는 비를 막기 위한 우산(雨傘), 해를 가리기 위한 양산(陽傘)으로 구분된다. 한국과 중국과는 달리, 일본어의 경우 양산이라는 표현보다는 ‘日傘[히가사, ひがさ]’를 더 자주 사용한다.

의장용 기구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우산은 신분이 높은 특정 계층만 쓸 수 있었고 일반 백성들은 도롱이나 삿갓 등으로 비를 막았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서양식 우산과 양산은 19세기 말께 들어왔다. 편복산(蝙蝠傘)이라고 불렸는데, 우산을 펼쳤을 때의 모양이 편복(蝙蝠), 즉 박쥐의 날개 모양과 흡사하다고 하여 일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것이 한국어로 차용되면서 박쥐우산(양산)이 됐다. 박쥐양산은 햇볕을 가리는 용도뿐만 아니라, 쓰개치마나 장옷 등의 대용으로 얼굴을 가리는 패션 장신구이자 신여성의 상징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판촉이나 기념 선물로 우산이 자주 애용되지만, 중국에서 우산 선물은 피하는 것이 좋다. 우산의 ‘伞[산, sǎn]’과 ‘헤어진다·흩어진다’는 의미의 ‘散[산, san]’이 성조만 다를 뿐 발음이 같아서 우산을 선물하면 실제로도 관계가 멀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에서 우산은 사랑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相合傘[아이아이가사, あいあいがさ]’라고 하여 남녀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우산이라는 표현이 있다. 화장실 벽이나 교실 칠판의 한 귀퉁이에 우산 모양을 그리고 우산대 양쪽에 남녀의 이름을 써넣은 것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이래 봬도 일본 에도시대(1603~1867) 때부터 행해졌던 일종의 낙서 문화다. 우산은 긴 역사만큼이나 부르는 명칭도 여럿이고, 나라마다 다양한 문화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최승은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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