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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미혼부는 출생신고 못합니다"…우영우 아빠의 현실판 [가족의 자격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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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우광호(전배수 분)가 제일 좋아. 너는?”

“난 우영우(박은빈 분)”

김지환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품' 대표와 딸 사랑(가명)양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를 즐겨본다. 김현동 기자

김지환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품' 대표와 딸 사랑(가명)양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를 즐겨본다. 김현동 기자

사랑이(가명‧9)가 대답했다. 사랑이 가족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 가족과 많이 닮았다. 사랑이 아빠 김지환(45)씨는 영우 아빠 우광호씨처럼 결혼하지 않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부’다. 사랑이를 가졌을 때부터 갈등이 많았던 사랑이 엄마는 우울감이 심했다. 결국 아이만 낳은 채 혼인 의사가 없어 바로 떠났다.

사랑이가 세상에 나왔다는 존재 증명부터 엄마 없이 힘들었다. 사랑이 출생신고에만 무려 16개월이 걸렸다. 주민센터 가서 출생 신고서 한 장 내고 10분 안에 끝날 일이었다. 아이를 키우느라 경력 단절남이 된 아빠는 품안의 사랑이가 세상엔 없는 존재였던 그 시간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다.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아 병원비는 대체 얼마일지를 가늠하지도 못한 채 열로 이마가 펄펄 끓는 아기를 들쳐업고 병원 응급실 앞을 서성여야 했다.

법률상 미혼부는 아동 출생신고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母)가 하여야 한다(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46조 제2항)’고 우리 가족법이 못박고 있어서다.

우광호 역시 출산 사실을 숨기려는 태수미 도움 없이 우영우 출생신고를 하려면 법원 문턱을 닳도록 넘어야 했단 얘기다.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법무법인 한바다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와 우영우 김밥의 사장이자, 홀로 우영우를 키운 딸바보 아버지 우광호(전배수). 방송캡처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법무법인 한바다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와 우영우 김밥의 사장이자, 홀로 우영우를 키운 딸바보 아버지 우광호(전배수). 방송캡처

“우리나라는 아빠 혼자서 출생신고를 못하게 합니다”

지환씨도 사랑이 친아빠지만 당시 가족법을 우회하는 이상한 재판을 4번 이상 거쳐야 했다. 여론에도 도움을 호소했다. 그는 누런 상자에 매직으로 “우리나라는 아빠 혼자서 출생신고를 못 하게 합니다”라고 크게 썼다. 8개월된 사랑이를 태운 진분홍 유모차를 끌고 무작정 강남역 10번 출구 앞으로 갔다. 지환씨의 사연이 방송을 타자, 그제야 아이를 키우려 해도 엄마 없이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아빠들의 기막힌 사정에 사람들도, 정치인들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환씨는 우선 자신을 사랑이의 후견인(특별대리인)으로 선임하는 재판을 했다. 그다음 성(姓)과 본(本)을 창설하는 재판을 통해 아이는 ‘동작 김씨’의 시조로 ‘사랑’이라는 이름을 얻어 ‘김사랑’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새로 만든다.(성본창설‧가족관계부 창설). 그리고 지환씨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사랑이는 내 친자식’이라는 인지 청구를 하면 비로소 ‘가족 관계’로 연결이 된다.

“너무 어려운데요”라고 하자, 지환씨는 “기자님도 어려운데 아빠들은 어떻겠어요. 중학교 중퇴한 아빠도 있는데요”라고 멋쩍게 웃었다.

이른바 ‘사랑이법’이 2015년 생겨나면서 그나마 엄마의 신원정보를 정확히 몰라도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친아빠가 맞다는게 입증되면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고 출생신고가 가능해졌다.

“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부의 등록기준지 또는 주소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제1항에 따른 신고를 할 수 있다.”(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②항 신설)

달리 말하면 엄마의 신원정보를 몰라야 한다는 뜻이어서 이를 아는 미혼부들이 법정으로 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대부분 생모가 아이 출산 사실이 알려지는 걸 꺼려 협조하지 않는 경우다.

결국 대법원은 “‘모의 성명,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는 예시적인 것이므로, 모의 인적사항은 알지만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갖출 수 없는 경우 또는 모의 소재불명이나 모가 정당한 사유 없이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 발급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 등과 같이 그에 준하는 사정이 있는 때에도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해석의 범위를 넓혔다.

출생신고에 기록이 남는 것을 꺼림칙한 형편의 여성들은 많다. 청소년 미혼모나 남편이 있는 데 다른 남성과 아이를 낳은 경우, 극중 태수미처럼 대학생 시절 영우를 낳긴 했지만 우광호와 혼인 의사가 전혀 없던 경우까지 포함된다. 각자의 사정에서 비롯된 문제지만 책임을 떠안는 건 갓 태어난 아이다.

김지환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품' 대표와 딸 사랑양이 28일 상암 스튜디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김현동 기자

김지환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품' 대표와 딸 사랑양이 28일 상암 스튜디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김현동 기자

“태어났는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미혼부 헌법소원

지환씨는 “아기가 뭘했냐”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태어난 죄 밖에 없는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게 위헌”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가족관계등록법에 대한 헌법소원에 따르면 ‘남편의 심한 폭력으로 도피 중인 시기에 다른 남성을 만나 아이를 낳았으나 법적 남편이 이혼해주지 않아 아이들의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이들이 참여했다.

심지어 아이를 낳고 생모가 가출했는데 유전자 검사 결과 친아빠가 아닌걸로 드러났지만 아이를 키우려는 미혼부 사례, 필리핀에서 아이가 태어난 뒤 생모와 헤어진 바람에 아이 출생신고를 하지못해 한국에 아이와 입국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헌법소원문에서 “미혼부 출생신고는 모를 특정할 수 없거나 모의 소재불명 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 제출에 협조하지 않는 등 여전히 제한적 경우에만 보충적으로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은 교육‧보건의료‧사회보장 등 모든 공적 서비스에서 배제된다. 아동의 존재 자체가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아 불법입양, 아동매매, 유기와 학대 등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진다.

“재판 없이 아이는 출생신고를 할 수 있어야 해요. 부모가 잘못된거면 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죠. 왜 그 책임을 아이에게 전가를 하나요. 차라리 누가 아빠냐, 엄마냐 따지는 건 아이의 존재를 인정한 뒤, 그 다음 일이 돼야죠.”

이 때문에 법원행정처에서도 “유전자검사를 해서 가정법원에서 ‘아빠가 맞다, 생부가 맞다’고 하면 아빠가 단독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절차를 하나 두자”(2021년 2월 23일 법사위법안심사제1소위 회의록)는 발언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오하이오주는 양육비이행관리기관에서의 유전자 검사 결과나 법원 결과를 통해 부성 창설이 확정된다.

김지환 '세상에서제일좋은아빠의품' 대표와 딸 사랑양이 저녁 메뉴를 상의하다 '아빠 미소'를 지었다. 김현동 기자

김지환 '세상에서제일좋은아빠의품' 대표와 딸 사랑양이 저녁 메뉴를 상의하다 '아빠 미소'를 지었다. 김현동 기자

‘아빠의 품’ 김지환씨 “한부모, 정서가 단단해야”

지환씨는 “부모가 되려면 정서가 단단해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두 부모든 한 부모든 아이를 키우려면 자기가 단단해야 해요. 아이들 어렸을 때는 100만원, 200만원 갖고도 살아져요. 그런데 7살 때쯤부터 영어학원도 다녀야돼고 피아노도 배워야하고 태권도도 다니잖아요. 이제 놀이터가 아니라 학원이 친구 사귀는 장이니까 빠질 수도 없어요. 그러면서 경제적으로도 곤란해져요. 무엇보다 아이들도 아주 자연스럽게 선입견을 갖더라고요. 그럴 때 (미혼부들 정서가) 또 확 나빠지거든요.”

다행히 ‘마의 7살’을 넘긴 9살 사랑이는 여전히 아빠를 미끄럼틀 타듯 친숙하게 대한다. ‘잔망루피’가 ‘최애캐’라는 사랑이는 아빠의 장점을 묻자 “‘병맛’(‘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신조어)이 잘 통해요”라며 낄낄낄 웃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사랑이 가족은 사랑이가 좋아하는 파스타집으로 향했다. 가족관계등록법 46조 2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은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에 회부돼 심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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