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강대희의 건강한 미래

서울과 이천, 두 간호사의 죽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미래발전위원장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미래발전위원장

지난달 서울시 소재 대형 병원 간호사가 뇌출혈로 사망한 사건의 배경과 원인에 대해서 의료계와 정부, 간호사 단체 간에 논란이 많다. 30대 중반의 간호사는 근무 중 두통이 심해 응급실을 방문했는데 뇌출혈이 악화하여 개두술(뇌를 여는 수술)이 가능한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국내에서 의사가 가장 많은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가 근무 중에 병원에서 사망한 것이 의료 사고가 아닌지 복지부가 현장조사도 했다. 진료는 적절하게 이뤄졌지만 개두술이 가능한 전문의사가 부족해서 발생한 일이었다.

개두술이 가능한 의사가 부족해서 발생한 일이 병원의 책임일까. 의료진의 과실일까. 의료시스템의 문제일까. 이미 보도된 대로 첫 번째 병원에는 개두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의사가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은 해외에, 다른 한 명은 지방에 있었다고 한다. 환자의 뇌출혈이 심해져서 응급처치하고 개두술이 가능한 의사가 있는 두 번째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다.

수술 못 받고, 환자 돌보다 사망
국내 의료시스템 문제점 드러나
중증·응급환자 의료수가 올리고
격무 심한 간호사 처우 개선해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전국에서 개두술이 가능한 숙련된 신경외과 의사는 약 130명 정도인데, 이 중에서도 응급환자가 비교적 덜한 뇌종양수술을 담당하는 의사를 제외하고 뇌출혈 환자만을 전문적으로 보는 의사는 그보다 훨씬 적다(중앙일보 8월 8일자).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개두술 전문 의사가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경북과 전남은 치료 가능 사망률이 전국에서 최하위다.

정부나 시민단체에서 주장하는 대로 의사 숫자를 늘리고 공공의대를 설립한다면 문제가 해결될까. 답은 아니다. 필자가 의대에 다닐 때는 성적이 좋고 체력도 좋은 의대 졸업생이 신경외과에 지원했다. 신경외과 의사는 뇌 수술을 해야 하므로 머리가 좋아야 하고 장시간 수술이 가능한 체력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근데 1년에 반은 당직을 서야 하고 당직 근무시 교통비로 5만원을 받는데 누가 이런 어려운 길을 선택할까. 당직도 없고 응급환자도 없는 전문과로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자녀들 교육과 수도권에 몰려있는 문화시설을 뒤로하고 누가 지방에서 근무할 것인가. 해답은 의사 숫자를 늘리는 양적인 확장이 아니라 중증환자 응급환자 치료에 대한 수가를 현실화하고 검사에 치중된 현행 수가 제도를 의사의 수술과 처치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이 가능하도록 수가를 재산정해야 한다.

최근 또 다른 간호사의 사망은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화재가 난 이천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화재 현장에서 환자들을 이송시키고 본인은 현장에서 순직한 것이다. 요양병원 간호사는 다른 분야에 비해서도 가장 힘든 직업이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에게 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고 코로나의 확산으로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환자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가족과 같은 역할까지 해야 하는데 순직한 간호사는 아마도 가족과 같은 환자를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화재 현장을 지키다 본인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했다.

간호사는 육체노동의 강도가 높고 교대근무를 해야 하는 반면에 상대적인 대우는 낮아 간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 간호업무에 종사하지 않는 인력이 많다. 스웨덴 심리학자 카라섹은 직무를 요구(demand)와 재량권(control)으로 분류하여 직무 요구는 많으면서 직무 재량권이 적은 직업군에서 직무 스트레스가 가장 높다고 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간호사는 다양한 환자의 케어에 대한 요구는 많은 반면 재량권은 적어 직무 스트레스가 가장 높은 직업군에 속했고, 이런 그룹에서 뇌심혈관 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았다.

이번 두 분 간호사의 사망을 접하면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본질적인 문제를 고치지 않고는 고질적인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새 정부는 필수의료 강화를 국정 과제에 포함하였다. 신경외과 흉부외과 응급수술 등 중증 응급환자를 다루는 전문 의사의 의료 행위에 대한 수가를 대폭 개선하고 산과, 소아청소년과와 같이 보호가 필요한 전문과는 공공의료 영역에서 지원해야 한다. 의사 숫자를 늘리거나 의료원을 확충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간호사의 처우도 현실적으로 조정해서 숙련된 간호사가 의료 현장을 떠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 신뢰하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해야 국민 건강이 지켜진다는 사실이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 미래발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