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윤희 한반도평화워치

정권용 NLL 지침에 희생된 6용사의 비극 되풀이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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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권 따라 달라진 국방태세

최윤희 전 합참의장·해군참모총장

최윤희 전 합참의장·해군참모총장

지난 6월 29일 해군 2함대에서 개최된 제2연평해전 승전 기념행사에 참가했다. 20년 전 북한 도발로 희생된 6명의 용사를 기리는 행사다. 최초에는 서해교전으로 불렸으나 교전 규모와 북한 피해 등을 고려해 올해 승전으로 재평가했다. 늦게나마 이런저런 일로 서운했던 유족들에게 위로가 될 일이다. 그럼에도 유족들은 아직 풀리지 않는 한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20년이 지났으니 자식과 남편을 잃은 슬픔을 조금은 삭일 수 있으련만, 그러하지 못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자식과 남편의 명예를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는 국가 기관에서 주관하는 공식 행사도 없을 것이다. 역사 속 한 사건으로 남을 뿐이다. 유족들끼리라도 한 번씩 만나 추모하며 서로 위로해야 하는데 그럴 계획도 없단다. 안타까운 마음에 승전 기념회라도 설립해 6용사의 희생을 기리자고 했다. 다행히 해양 안보 중요성을 공감하는 독지가가 있어 절차를 밟고 있다.

군인은 명예를 삶의 최고 가치로 여긴다. 명예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교육받는다. 그래서 임무가 주어지면 생사를 초월해 뛰어든다. 패권 국가들은 이러한 군인들이 있었기에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로마가 그랬고, 미국 군인들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왜 그들은 그렇게 행동할까?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그에 합당한 명예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중한 명예를 대한민국 군인들은 사회적 지위나 삶의 질 등에서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특히 정치권의 대북정책에 따라 위국헌신한 군인의 평가가 달라지는 일은 안타깝다.

월드컵 전 북한 도발 예상에도 정부는 ‘남북 긴장 조성 말라’ 지침
지침지키며 NLL 사수는 불가능…제2연평해전서 6용사 목숨 잃어
국가 위해 희생한 장병들 제대로 예우하지 않아 유족들 한 맺혀
북핵 위협엔 단호한 작전지침 필수, 국가는 군인 명예 지켜줘야

갈팡질팡 NLL 지침에 장병들 혼란

지난 6월 29일 경기도 평택시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승전 20주년 기념식’에서 해전 영웅들의 얼굴 부조상을 어루만지며 눈물 흘리는 유족들. [연합뉴스]

지난 6월 29일 경기도 평택시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승전 20주년 기념식’에서 해전 영웅들의 얼굴 부조상을 어루만지며 눈물 흘리는 유족들. [연합뉴스]

문민통치 원칙에 따라 군은 국가통수기구로부터 임무를 부여받는다. 때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오늘의 적은 내일의 우방이 되기도 한다. 군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설정된 적과 싸우며 국가 정책을 힘으로 뒷받침한다. 남북이 대치하며 휴전 상태인 우리나라도 대북정책에서 강온(强溫)이 되풀이된다. 하지만 국가 정책이 달라졌다 해서 군인의 희생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 군인의 명예는 시대 상황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대북정책은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하는 해군 장병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NLL은 정전협정 조인 직후인 1953년 8월 30일 유엔군 사령관이던 마크 클라크 장군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포됐다. 정전협정 당시 육상에는 남북 군사분계선이 명시됐으나 해상에는 이렇다 할 경계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의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지만 실은 대한민국 해군 함정들의 북한 수역 진입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당시 북한은 이렇다 할 해군력이 없었다. 북한은 73년 10월까지 NLL에 대해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우리 역시 북한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해상작전을 펼쳤다. 일례로 60년대 연평도 근해에 조기 어장이 형성되면 남과 북 어선은 물론 이를 통제하는 군함들이 한데 어우러져 조업했다. 남과 북 모두 NLL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어로 행위를 허용했다. 심지어 작전에 참여했던 승조원들은 북한 병사와 담배를 나눠 피웠다고 무용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NLL 관할권 잃으면 서해 5개 도서 포기

북방한계선과 북한 주장 해상 한계선

북방한계선과 북한 주장 해상 한계선

70년대 초 북한 해군이 스틱스 대함유도탄을 장착한 함정을 도입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여기에 장사정(長射程)의 실크웜 지대함 유도탄을 해안에 배치하며 우리가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 되었다. 73년 황해도와 경기도 경계선 이북 수역을 연해(沿海)로 주장하며 서해 5개 도서 출입을 통제하였고 NLL 인근에서 조업 중인 우리 어선을 납북하기 시작했다. 74년 2월 수원 32, 33호가 납북·격침됐다. 해군에는 납북 어선을 탈취하는 임무가 주어졌으며 때로는 NLL 이북에서 교전을 벌이며 작전을 펼쳐야 했다. 최근 문제가 됐던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양상의 작전을 펼쳤다. 99년에는 북한이 ‘서해 5개섬 통항질서’를 발표해 긴장이 더욱 고조됐다. 이는 북한의 지대함 유도탄, 해안포 사정거리 내에서 운항 선박을 보호해야 하는 해군에 심각한 위협이었다. 그러나 NLL 관할권을 잃는 것은 서해 5개 도서를 포기하는 것과 같아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했다. 해군의 사활적 임무가 됐다.

북한은 6·25전쟁 이후 3000여 회에 걸쳐 군사적 도발을 자행했다. 초기에는 국가 지도부 시해 시도 등 전방위에 걸쳐 도발을 일으켰으나 90년 이후 80% 이상이 해상에서 발생했다. NLL은 지상의 군사분계선처럼 명확한 표식이 없어 침범을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 설정된 가상의 선을 기준으로 항해·정보 수집 수단을 이용해 월선(越線)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90년대 이전까지 북한은 그럴 능력이 없었다. NLL을 부정하면서도 우리가 확인해 침범을 경고하면 물러났다. NLL을 사수하겠다는 우리의 의지가 단호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NLL은 우리 국민에게도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냥 해군에 맡겨진 하나의 임무였다.

실추된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의 명예

그러나 어느 순간 북한은 해상 도발을 그들의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도발 목적에 따라 수위 조절과 은폐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도발 빈도가 급증했고 전쟁 수준의 고강도 도발도 서슴지 않았다. 급기야 제2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을 벌였다. 북으로 치고 올라가 복수하자는 전우들의 원성이 서해를 들끓게 했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권의 대북정책에 따라 희생된 전우들의 평가가 달라지며 장병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유사한 대응을 해놓고 누군가는 포상을, 누군가는 처벌을 받아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정권 교체 때마다 NLL 사수와 긴장 조성 방지의 양극을 오고 가야 했다. NLL을 사수하는 것보다 그때그때 정황에 맞는 작전을 펼치는 게 더 어려워졌다. 이는 현장의 하급 지휘관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혹자는 이를 일컬어 ‘통일의 그 날까지 해군이 안고 가야 할 업보’라고 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 6명의 전우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건이 제2연평해전이다. 당시 정부는 성공적 월드컵 개최를 위해 남북 긴장을 조성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월드컵 행사를 방해하기 위한 북한의 도발이 자명한 상황에서 이는 NLL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았다. 상부 지침을 이행하며 NLL을 사수할 대안은 없었다. 갈팡질팡 혼란 속에 6 용사는 목숨을 잃었다. 사건 이후 전사자 처리 또한 많은 국민과 장병을 분노케 했다. 영결식·안장식 등 모든 행사를 해군만의 행사로 제한했다. 전사자들에 대한 추서 진급, 포상, 보상 역시 긴 세월 유족들의 투쟁 끝에 겨우 이루어졌다. 위국헌신한 군인의 명예를 무참히 짓밟아버린 것이다. 전사자들의 희생을 기리고 유족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영화를 제작했으나 가슴속 깊이 응어리진 한을 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권용 작전지침은 항전 의지 꺾어

국가통수기구로부터 내려지는 군의 임무와 작전지침은 간단명료하고 일관돼야 한다. 군의 대비태세를 약화해서는 안 되며 현장 지휘관의 재량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향후 북한의 치명적 핵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호하고 명쾌한 작전지침이 필수적이다. 그동안 NLL 사수와 관련된 국가통수기구의 작전지침은 그렇지 못했다. 단호한 대응은커녕 의지를 꺾어버리고 혼란만 야기했다. 더는 잘못된 작전지침으로 안타까운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국가에 헌신한 군인에게는 정권과 관계없이 최고의 명예가 주어지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군인은 정권과 관계없이 국가 방위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며 국민의 결집된 항전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어떤 첨단 무기보다 값진 자산임을 입증했다. 이는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과 국민의 상무정신으로 이루어진다. 항전 의지는 적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으로 공고해진다. 첨단무기보다 장병들의 정신교육이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9·19 남북 군사합의로 이처럼 중요한 정신교육체계가 무너졌다. 실전 대응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현장 훈련은 금지되었다. 남북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면 확고한 군사 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흔들림 없는 국방태세는 정치적 협상력의 근간이다. 미국의 효율적 외교·국방정책은 이를 여실히 입증한다. 북한과의 맹목적 평화체제를 추구하며 국방 빗장을 풀어버린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해군참모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