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원태의 미래를 묻다

100년 만의 폭우, 더 세지고 잦아질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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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구

권원태 전 국립기상연구소장, 한국기후변화학회 고문

권원태 전 국립기상연구소장, 한국기후변화학회 고문

고백한다.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지난달 지구 평균기온이 역대 셋째로 높았다고 발표했을 때에도, 그저 남의 일인 듯 무심했다. ‘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 말로만 걱정했다. 유럽에서 폭염으로 섭씨 영상 46도까지 올라가고, 알프스 산맥 빙하가 녹는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8일 이후 나흘간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서 집중호우가 내려 국지적으로 강우량이 600㎜를 기록했다는 뉴스는 기후변화가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월요일 저녁부터 소셜미디어(SNS)에는 물에 잠긴 지하철역이나 도로, 자동차 앞유리창에 쏟아지는 비를 찍은 사진들이 무수히 올라왔다. 도로에 물이 차고, 파이면서 평소보다 10배나 늦게 귀가했다는 사연도 있었다. 나뿐 아니라 아마도 많은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과 함께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더불어 기후변화가 남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닥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구촌 기상이변은 ‘정해진 미래’
2040년 지구 평균기온 1.5도 상승

호우·가뭄·폭설 등 ‘뉴 노멀’ 되나
2100년 한반도 45도 폭염 예측도

유엔기후변화 보고서 최후 통첩
온실가스 줄이기 당장 시작해야

신림동 세 모녀의 비극적 참사

서울 등 중부지방에 115년 기상 관측 이래 최대 폭우가 내려 도심 곳곳이 물에 잠겨 차량이 침수되고 도로가 파손되는 등 여러 피해를 입었다. 사진은 지난 8일 폭우로 침수된 강남 지역의 모습. [중앙포토]

서울 등 중부지방에 115년 기상 관측 이래 최대 폭우가 내려 도심 곳곳이 물에 잠겨 차량이 침수되고 도로가 파손되는 등 여러 피해를 입었다. 사진은 지난 8일 폭우로 침수된 강남 지역의 모습. [중앙포토]

서울 신림동 반지하에서 미처 탈출 못 해 생명을 잃은 세 모녀의 가슴 아픈 소식과, 자동차 9000대가 침수 피해를 보았다는 소식은 극한기후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것을 잔인하게 증명했다. 그러나 또 다른 급박한 소식이 전해지면, 언제나 그랬듯 오늘의 일은 기억 속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지난 30여년간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기술·사회·경제 분야의 최신 정보를 모아 평가 보고서를 발간해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 왔다. 가장 최근엔 지난해 8월부터 세 권의 분야별 평가 보고서를 순차적으로 발간해 보다 확실한 메시지를 내보냈다. IPCC 보고서는 기후변화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보고서로 유엔기후변화협약의 국제협상에서 기본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정해진 미래’란 말이 있다. 인구 문제를 예측할 때 흔히 쓰이지만, 지구온난화에도 정해진 미래가 있다. IPCC 분야별 평가보고서 세 권 중 ‘과학적 근거 보고서’에 따르면 2040년 지구 평균기온은 과거 산업혁명 때보다 섭씨 1.5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로 인한 효과이니 되돌리거나 바꿀 수 없는 미래다. 그때가 되면 산업혁명 당시와 비교해 폭염은 8.6배, 호우는 1.6배, 가뭄은 2.0배 발생 가능성이 커지며, 강도도 세질 것이다. 참고로 최근 한국 수도권을 휩쓴 100년 만의 폭우,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기후이변은 지구 평균기온이 1.09도 상승해 일어난 결과다.

앞으로 ‘경험하지 못한’ 극한 현상으로 인류의 모든 부문뿐만 아니라 자연생태계에 최근 수년간 겪은 피해보다 더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특히 폭염·가뭄·홍수 등으로 식량 생산이 줄어 심각한 위기가 닥칠 수 있다. 해수면은 향후 80년 동안 적어도 지금까지 상승한 20㎝의 배인 40㎝가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수면 상승으로 연안 저지대 및 도시에서 홍수로 인한 기반시설 피해와 해양생태계에 악영향이 증가할 것이다. 정해진 미래, 2040년 1.5도 온난화에 대비하는 적응정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IPCC의 ‘과학적 근거 보고서’는 지구온난화가 발생하고 있으며, 인간 활동이 기후변화의 원인이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indisputable)고 평가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2100년에는 지구 평균기온이 4도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기후변화가 광범위하고, 가속화되고 강해지면서 폭염·호우·가뭄 등 극한기후 현상이 더 자주 더 강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세계 각지에서 겪고 있는 변화와 영향은 미래에 더 증가할 것이다.

지구 평균보다 심각한 한반도

설상가상 한반도의 온난화는 지구 평균을 넘어서고 있다. 국립기상과학원은 우리나라 미래 기후는 최악의 경우 현재(1995~2014년 기준)보다 7도 상승할 것으로 발표했다. 45도가 넘는 폭염도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기후변화 영향 및 적응 보고서’도 있다. 보고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물 안보, 빈곤, 건강 등 지구적 영향이 더욱 심해진 것으로 분석했다. 더불어 기후변화 위험에 대한 감시와 평가를 통한 과학적이고 통합적인 적응 계획 실행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인류의 절반 이상이 현재 물 부족을 겪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많은 지역에서 폭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강수량이 대체로 증가하고 있는 한편, 지역 간 편차가 커지고 있다.

그 결과 앞으로 더 많은 강우와 함께 빈번하고 강한 가뭄 발생이 예측된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2050년까지 10%, 2100년에 30% 이상의 작물 생산, 축산 지역이 기후적으로 부적합 환경에 처할 것이 전망된다. 현재의 적응 노력에도 식량 감소의 영향은 막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그뿐만 아니라 온난화가 5도가 되면 최대 60% 생물종이 멸종하는 것을 돌이킬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21세기 인류의 희망은 잔인하고 절박하다. 지금부터 매년 7% 이상씩 온실가스 감축한다면 온난화를 억제할 수 있다. 강하고, 빠르고, 지속적인 이산화탄소, 메탄 및 다른 온실가스 감축이 필수적이다. 기후변화 완화 보고서는 1.5도 지구온난화 억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2030년까지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19년 대비 43%, 2050년까지 84%를 감축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26차 유엔기후변화협상 당사국 총회(COP26) 이전까지 제출된 회원국들의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100년까지 1.5도 이하로 억제하기 어렵다.

사회 전 부문의 협업체제 절실

현재까지 시행된 정책이 지속한다면 2100년 지구 평균기온은 3.2도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경제활동이 강제로 위축되면서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었지만, 이후로 다시 증가 추세에 있는 실정이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늦어도 2025년에는 정점을 찍어야만 1.5도 온난화 억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최후통첩과도 같은 경고가 내려졌다.

‘기후변화 완화 보고서’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반으로 줄일 수 있는 과학기술과 정책 방안이 있다고 말한다. 온실가스 배출은 수요 및 공급 부문 모두에서 감축해야 한다. 이 때문에 화석연료 사용 감소와 저탄소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화,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제거, 최종 수요자들의 선택지 구조를 통한 수요 관리 등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성공적인 기후변화 대책은 즉각적인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정책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다. 10년, 20년 후 닥쳐올 1.5도 온난화를 대비하는 적응 정책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줄이고, 식량안보를 걱정하며, 지속가능한 자연환경을 확보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1.09도 온난화로 지금과 같은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면, 1.5도 온난화가 되면 얼마나 더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인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싹해진다. 극한현상 예·경보시스템이나 사회기반시설 확충, 식량 안보는 단시간에 이룰 수는 없다. 미리 준비하는 사회만이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2040년 이후 온난화를 1.5도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서 지금 당장 온실가스 감축을 시작해야 한다. 관련 제도를 확립하고, 정책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정부·기업·시민사회 모두가 함께 노력하지 않는다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감축기술은 앞으로 민·관이 함께 노력해서 개발해야 한다. 온실가스를 줄이고 지구 온난화를 완화하려면 모든 국가가 참여해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지속적으로 온난화 수준을 예측해 적응정책을 보완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경험하지 못한’ 미래의 충격

지난달 탈라스 WMO 사무총장은 올여름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경험하지 못한’ 폭염이 앞으로 ‘새로운 평균’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 7년 지구 평균기온은 역대 1~7위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내년이 되면 지난 8년이 1~8위를 기록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온난화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폭염뿐만 아니라 가뭄·산불·홍수·산사태·태풍·토네이도 등 세계 각지에서 극한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는 집중호우지만, 최근 수년간 폭염과 열대야·가뭄·태풍·한파·폭설 등 ‘경험하지 못한’ 극한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기후변화에 탄력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권원태

서울대 지구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기상학 석사를, 텍사스 A&M에서 기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상청 기후연구과장과 국립기상연구소장, 기후과학국장을 지냈다. IPCC 4차, 5차 및 6차 평가보고서 참여해 2007년 노벨평화상 기여인증서를 수상했다. 한국기후변화학회 4대 회장 및 APEC기후센터 원장 역임.

권원태 전 국립기상연구소장, 한국기후변화학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