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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터널 타고 남희석이 먹고갔다, 이 입소문에 빵 터진 음식 [e슐랭 토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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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에 바닷일까지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섬마을 어른들은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을 다 챙기지는 못했다. 막내는 한 달에 한 번 아버지 손을 잡고 장배에 오르는 특권을 누렸다. 장배는 섬을 돌며 주민을 태운 뒤 육지까지 데려다주는 상선이었다. 당시 섬에선 장배가 육지로 나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대처로 유학을 떠난 삼촌과 형, 누나도 장배를 타고 오갔다.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한 고기국수를 내고 있다. 원산도에서는 육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잔칫날 고기국수를 상에 올렸다. [사진 보령시]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한 고기국수를 내고 있다. 원산도에서는 육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잔칫날 고기국수를 상에 올렸다. [사진 보령시]

섬에선 고기가 늘 부족…소·돼지 애지중지 키워

돌아오는 장배에는 소와 돼지가 실렸다. 돼지는 섬에서 애지중지 키우는 가축이었다. 번식력도 좋고 잔반을 처리해주는 데다 특별한 날엔 고기를 제공해주는 존재였다. 그래서 섬에선 고기가 늘 부족했다. 육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잔칫날에나 먹을 수 있었다. 부엌에서 고기를 발견한 아이들은 “한입만 먹어보자”고 졸랐고, 할머니와 엄마는 “육지 손님 드릴 것”이라며 돌려보냈다. 40~50년 전 충남 보령 섬에서 자란 아이들의 얘기다.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들이 전통음식인 고기국수를 먹고 있다. [사진 보령시]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들이 전통음식인 고기국수를 먹고 있다. [사진 보령시]

원산도를 비롯한 보령 지역 섬에서는 특별한 날이면 상에 ‘고기국수’가 올라왔다. 삶은 돼지고기를 얇게 편을 썰어 고명으로 얹어 먹는 국수다. 육지와 달리 섬에선 논은 고사하고 밭도 넓지 않아 소를 키우는 집이 흔치 않았다. 고기가 워낙 귀해 소고기를 고명으로 얹을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나마 돼지고기도 양이 적어 얇게 썰었다. 얇게 썰어 식감이 좋고 이가 좋지 않은 어른들도 먹기 편했다고 한다.

잔칫날 돼지고기 얇게 썬 뒤 국수 고명으로 올려 

주민들에 따르면 40년 전만 해도 섬에서는 삼겹살이나 목살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기름기가 많은 데다 가끔 먹다 보니 배탈이 날 때가 잦아서였다. 당시 어른들은 “모든 돼지고기는 삶아서 수육으로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 고기국수에 얹어 먹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한 고기국수 상치림 모습. 원산도에서는 육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잔칫날이면 고기국수를 상에 올렸다. 신진호 기자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한 고기국수 상치림 모습. 원산도에서는 육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잔칫날이면 고기국수를 상에 올렸다. 신진호 기자

고기국수는 칠순·회갑이나 결혼식 피로연 때마다 상에 올랐다. 섬에선 갈비탕이나 국밥을 대접하는 육지와 달리 고기국수를 손님에게 대접했다. 원산도 맞은편 태안 안면도에서도 같은 풍습이 있었다. 육지와 단절된 섬 만의 독특한 음식문화였다. 그런 고기국수는 20년 전쯤 자취를 감췄다. 고기는 넉넉해졌지만, 집 대신 결혼식장이나 대형식당, 뷔페에서 피로연을 열기 시작하면서 식탁에서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원산도 주민, 40년 전 추억 되살려 메뉴로 등장

그런 섬마을 고기국수가 최근 다시 등장했다. 원산도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추문식(67)씨가 젊은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새로운 메뉴로 선보이면서다. 추씨는 원산도 토박이로 40년 전 장가갈 때 먹었던 고기국수가 생각 나 아내와 상의 끝에 메뉴판에 추가했다. 고기국수를 맛볼 수 있다는 소문에 원산도 주민은 물론 다리 건너 안면도 주민들까지 찾는다.

추문식씨는 “(내가) 장가갈 때 마을에서 사흘간 잔치를 했다. 육지에서 하객이 오고 바다로 조업을 나갔던 주민들이 모두 잔치 음식을 먹으려면 그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며 “어릴 적, 청년 시절을 회상하며 고기국수를 메뉴에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한 고기국수를 내고 있다. 원산도에서는 육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잔칫날 고기국수를 상에 올렸다. [사진 보령시]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한 고기국수를 내고 있다. 원산도에서는 육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잔칫날 고기국수를 상에 올렸다. [사진 보령시]

국수에 올리는 고기 고명은 돼지고기 앞다리나 뒷다릿살을 사용한다. 고기를 삶아낸 뒤 차갑게 식혀 회를 치듯이 얇게 썬다. 멸치로 국물을 내는 육지와 달리 바지락을 쓴다. 비린 맛이 없고 깔끔한 육수의 비결이다. 고기국수 반찬으로는 해풍(海風)을 맞고 자란 파김치를 곁들어 비로소 ‘삼합’을 이룬다. 주민들은 “잘 익은 파김치가 느끼할 수도 있는 고기의 맛을 감싸줘 담백한 맛이 난다”고 말했다.

보령 출신 개그맨 남희석, 고기국수 맛봐 

지난 3월에는 보령 출신의 개그맨 남희석씨가 다녀갔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고기국수를 찾는 관광객이 점차 늘고 있다. 원산도는 지난해 12월 1일 국내 최장(6.927㎞)인 보령해저터널이 개통하면서 접근성이 좋아졌다. 배가 육지와의 유일한 연결 통로였던 원산도는 2019년 12월 태안군 안면도와 다리가 놓이면서 육지와 연결됐다. 해저터널 개통 이후 원산도·안면도 일대는 주말이면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한 고기국수 상치림 모습. 원산도에서는 육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잔칫날이면 고기국수를 상에 올렸다. [사진 보령시]

충남 보령시 원산도의 한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한 고기국수 상치림 모습. 원산도에서는 육지에서 손님이 오거나 잔칫날이면 고기국수를 상에 올렸다. [사진 보령시]

사람들은 ‘고기국수’ 하면 제주도를 떠올린다. 삶은 건면에 돼지고기를 이용해 만든 육수를 넣고 고명으로 돼지고기를 수육으로 얹는다. 마을 잔칫날이나 큰 행사가 있던 날에 즐겨 먹던 음식이다. 양념을 거의 쓰지 않고 재료 자체의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제주도 고기국수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보령 섬마을 고기국수에는 어릴 적 추억과 애환, 엄마의 향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고기국수처럼 고명으로 고기를 듬뿍 넣는 면 종류 음식으로는 진주냉면을 꼽을 수 있다. 주로 잔칫날 등에 먹던 고기국수와 달리 진주 냉면은 진주 지역에 있던 소수의 요정에서 아주 엄격한 조리법에 의해 조리되던 고급 음식이었다. 평양냉면 등 다른 지역 냉면과 달리 진주냉면은 화려하고 다채롭다. 호사스러움의 정점은 육전 고명이다. 쇠고기를 도톰하게 잘라 달걀물을 입혀 부친 다음 길게 썰어 얹는다. 고명 육전 덕분에 진주 냉면은 푸짐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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