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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대학에는 성범죄 발생 왜 안 알리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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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찬성 변호사·전 서울대 인권센터 전문위원

박찬성 변호사·전 서울대 인권센터 전문위원

공무원이 범죄를 저질러 수사를 받게 되면 수사 중이라는 사실이 소속 기관장에게 통지된다. 국가공무원이든 지방공무원이든 마찬가지다. 만 19세 미만인 청소년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어떻게 될까. 현행 소년법은 엄격한 보도 금지 조항을 두고 있다.

소년법에 따른 조사나 심리가 진행 중인 사건의 당사자임을 짐작하게 할 만한 정보를 함부로 노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그러면서도 죄를 범했거나 향후 형법에 위배되는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소년을 발견한 보호자나 학교장 등은 관할 법원 소년부에 그 사실을 통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9세 이상 성인 대학생 성범죄
부모·대학에 고지할 의무 없어
성폭력 예방 위해 법 개정해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거꾸로 법원 소년부가 형사 처분할 필요가 있다고 결정할 경우에는 보호자에게 반드시 그 사유를 알려야 한다고 규정한다. 즉, 품행 교정과 재발 방지가 주된 목적인 만큼 적어도 감호 교육에 필요한 최소 인적 범위에서는 관련 정보를 공유해야 함이 마땅하다는 의미다. 청소년성보호법에서도 사법경찰관이 성범죄 가해 아동과 청소년을 발견했다면 그 사실을 가해자의 법정대리인 등에게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만 19세를 넘어 성년에 이른 대학생이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다면 어떻게 될까. 수사기관은 성인인 대학생이 성폭력 범죄로 수사받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에게든, 학생이 소속된 대학 당국에든 고지할 의무가 없다.

그래서 성폭력 범죄로 수사와 재판을 거쳐서 처벌까지 받더라도 피해자가 가해자의 소속 대학에 따로 권리 구제를 요구하며 신고하지 않는다면 대학은 학생의 범죄 사실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넘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고, 현실 또한 그러하다. 같은 학교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에게 피해를 줬다면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 대학이 성범죄 사실을 인지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현행법에 따를 때 오로지 우연에 맡겨져 있는 셈이다.

이런 현실은 대한민국 법질서 전반의 입법 취지에 부합할까. 고등교육법은 대학이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전수하는 곳이 아니며 인격 도야를 통한 전인적 인간의 양성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청소년성보호법은 성폭력 범죄의 유죄 판결이 확정된 사람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신상 공개 및 고지 명령이 있으면 어린이집·유치원,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학교의 장에게 고지 대상 범죄자에 관한 정보가 고지된다.

마침 고등교육법은 각 대학에 구성원 보호와 성희롱·성폭력 예방 등을 위한 인권센터 설치·운영을 법률상 의무로 새로 명시했다. 그런데 누가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충분한 예방과 보호책 마련, 재발 방지를 위한 계도가 가능할까.

실무상 신상 공개의 예외를 법원이 상당히 폭넓게 인정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대학이 성폭력 범죄 발생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게다가 고지 명령에 따른 고지 대상에 대학의 장은 제외돼 있어 문제다.

대학생의 경우에도 성폭력 범죄로 수사가 진행 중이라면 그 사실을 대학의 법정 기구인 인권센터에 의무적으로 통지하도록 법제화하면 어떨까. 그리고 성폭력 관련 유죄가 확정된 사실에 관한 고지 명령의 대상에도 대학의 장을 포함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을까.

청소년성보호법은 신상 공개 제도와 함께 공개된 정보를 악용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처벌하도록 별도의 근거를 두고 있다. 이를 참조해 제도를 섬세하게 설계한다면 수사기관이 통지한 개인정보의 오용 가능성은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은 독특한 공간이다. 대학생은 나이로는 성인이지만 교육과 지도를 통한 성장과 성숙이 더 필요한 학생이기도 하다. 게다가 아직 미성년인 학생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성년에 갓 접어든 대학생의 성폭력 범죄는 자칫 대학 당국도, 부모도 모르는 새 은근슬쩍 넘어갈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인식과 태도의 개선을 통한 재발 방지의 관점에서 이것이 최선인지는 의문이다.

CCTV, 비상 전화, 비상벨 확충에다 청원 경찰 순찰 강화 등이 꼭 필요하겠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대학가에서 안타까운 성범죄 사망 사건이 발생한 이 시점이야말로 현행법에 개선할 부분이 없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할 때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찬성 변호사, 전 서울대 인권센터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