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형석의 100년 산책

세계일주 그뒤 50년...나는 이렇게 부자가 되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8.05 00:34

업데이트 2022.08.05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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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가난은 팔자였던 것 같다. 30대 중반에 연세대학으로 직장을 옮길 때도 그랬다. 27세에 탈북하면서 무일푼의 신세가 되었다. 중앙학교에서 6~7년 있는 동안에 겨우 경제적 안정을 찾았다. 전셋집도 장만했고 하고 싶었던 일의 계획도 세우고 싶었는데 6·25전쟁이 터졌다. 전쟁 중에 북한에 3년 동안 남겨두고 왔던 큰 딸애와 모친, 고등학교와 대학에 갈 나이의 동생들이 합류했다. 대학으로 직장을 옮기면서는 중·고등학교 교감 때 모여 살던 사택도 떠나야 했다. 나 한 사람의 수입으로 10명이나 되는 가족을 부양하는 경제적 빚쟁이가 되었다.

대학에 가면서부터 3~4년 동안은 수입을 위해 무슨 일이든 삼가지 않았다. 교수의 부수입은 다른 대학에 시간강사로 가는 일이다. 여러 대학에 나갔다. 야간대학까지 갔으니까. 그렇다고 새내기 교수에게 주어진 강의를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힘들었다. 3년쯤 후에 한 대학에서 전임대우를 해주겠다는 요청을 받았다. 겨우 재정적 안정도 뒤따르게 되었다. 두 동생은 대학과 고등학교로 보내고 여섯이나 되는 어린 것들도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그렇게 3~4년이 지난 뒤였다. 어떤 주초에 대구에서 제자가 찾아왔다. 대구의 중·고등학교 교사들의 수련회가 있는데 토요일 오후에 강연을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같은 시간에 삼성그룹에 강연 약속이 있어 갈 수가 없고 좋은 강사를 소개해 주면 어떻겠는가 하고 제안했다. 제자는, 교장회의 결정이기 때문에 자기는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대구에 가면 하루 동안 고생하고 강사료는 서울의 절반도 못 된다. 그러나 5~600명이 되는 선생님들에게 강연하는 일은 너무 소중하다. 그래서 삼성의 양해를 겨우 얻어 대구를 다녀왔다.

수입보다 가치를 찾자 다짐하니
피곤과 일에 대한 혐오감 없어져

사회적 가치, 공동체서 목적 찾으니
경제관에도 또다른 변화가 찾아와

소유보다 베푸는 게 바른 길이고
많이 베푸는 사람이 부해지게 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앞으로는 수입보다는 일의 가치를 찾아 살아가자는 뜻을 다짐했다. 더 열심히 많은 일을 했다. 일을 사랑한다는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예상 못 했던 결과를 발견했다. 수입을 위해 일할 때는 피로하고 어떤 때는 일을 멀리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일의 보람을 찾아 할 때는 피곤이나 일에 대한 혐오감 같은 것이 없어졌다. 또 다른 변화도 뒤따랐다. 수입을 위해 하는 일은 수입과 더불어 끝나곤 했다. 그런데 일을 찾아 일을 선택했을 때는 일이 또 다른 일을 만들기 때문에 더 많은 일을 하고 수입도 자연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의 성취감에서 오는 행복이 무엇인지 터득할 수 있었다. 일에 대한 사랑이 행복과 성공의 열매를 남겨준 것이다.

그렇게 사는 동안에 70 중반을 넘기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일의 새로운 가치관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100사람이 100의 일을 하면 일의 목적이 100인줄 알았다. 그 생각이 잘못이었던 것이다. 100사람이 100의 일을 해도 일의 목적은 다 같은 하나인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그 일을 통해 좀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다운 삶과 행복을 찾아 누리는 데 있다는 사실을 체험한 것이다. 실업가는 기업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다운 삶과 행복을 찾아 누리는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정치인은 선한 정치를 통해 국민들의 행복과 자유로운 삶을 베푸는 책임을 갖는다. 교육자는 제자들과 더불어 학원과 사회에 이바지함으로써 정신적 가치와 문화의 수준을 높여주기 위해 일한다.

그런 일의 공동체와 사회적 가치에서 목적을 찾게 되니까 또 다른 경제관에 변화가 찾아왔다. 나를 위한 수입이 일의 가치와 목적이 아니라 내가 경제적 가치를 베풀 수 있어 더 많은 이웃과 사회에 도움이 된다면 베푸는 것이 경제의 바른 길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돈과 비용을 쓰더라도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도 갖게 되었다. 경제 가치는 소유보다 건전한 베풂 없이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때는 재정이 부족하더라도 뜻을 같이하는 친구의 도움을 합쳐서 문화적 봉사를 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래야 그 사람들이 행복해지며 사회가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가가 있다면 경제적 가치에서 오는 보람이며 고맙고 감사한 삶의 체험이다. 존경스러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많이 베푸는 사람이 경제 가치의 창조자임을 자인하게 된다. 그리고 무슨 일이 더 가치 있는 일이며 어떤 일이 반사회적이며 배척받아야 할 경제관인지 깨닫게 된다. 교통부 장관이 되어 국민 교통의 혜택을 주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버스 운전기사가 되어 수많은 손님에게 따뜻한 봉사를 하는 일이 소중함을 발견하게 된다.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고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보다는 농업기술을 개발해 농가수입을 올려주는 전문가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런 상식적이면서도 당연한 경제관을 갖게 되면 우리는 모두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사회적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어떻게 대하는가, 열심히 일해야 나도 즐겁고 상대방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과 노력을 함께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대한민국 전체가 삶의 가치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내가 부해지기 보다는 모든 국민이 행복해져야 나도 자연히 부하고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1962년에 세계일주 여행을 끝내고 귀국해서 쓴 여행기가 있다. 잘사는 선진 국가를 다녀보니까 우리 국민의 가난함이 눈물겹게 한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난하고 모두가 나보다 부하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지금은 베푸는 사람이 부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셈이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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