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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국민·공무원·사학·군인, 4대 연금 통합 운영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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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산 넘어 산’ 연금 개혁 성공하려면…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출생률 급락으로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며 연금 개혁에 시큰둥했던 사회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출생률이 세계 최저인 상황에서도 연금 개혁 시급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앞으로 공멸 외에 다른 길이 없을 것이다. 한 해 70만~100만 명 태어난 세대를 26만 명(지난해 출생률 0.81 기준) 출생 세대가 부양해야 하는 처지다.

연금 개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으나 제대로 추진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먼저 제도 현황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크다. 흔히 연금 개혁하면 국민연금부터 떠올린다. 공무원연금 등에 비해 가입자가 많아서 일 것이다. 연금 전문가 다수가 교수이고, 개혁을 추진해야 할 공무원이 이해 당사자이다 보니 불치병에 걸린 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의 강도 높은 개혁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개혁 총대를 메야 할 국회의원 상당수가 전직 판사·검사·관료·교수이다 보니 이들 역시 소극적이다.

정부가 중심 잡고 4대 연금 실태 보고서부터 만들어야
검사·관료 등 이해당사자 포진한 국회에선 추진 어려워
세대 간 형평성, 제도 지속성 등 개혁 원칙 정립해야
장기적으로 정부 재정부담 덜어내야 성공할 수 있어

용두사미로 끝난 공무원연금 대타협

퍼스펙티브

퍼스펙티브

지난해 하반기부터 언론이 연금 개혁 시급성을 강조해 왔고, 대선후보들도 연금 개혁에 합의하다 보니 연금개혁 논의가 주목받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눈치 싸움은 여전하다. 대통령 직속으로 거론되던 연금개혁위원회가 국회로 옮겨갔다. 연금 개혁 논의에 참여한 필자의 25년 경험으로 볼 때 처음 논의부터 국회에 맡기면 의미 있는 개혁 달성은 쉽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대타협기구)이다. 논의 주체가 공무원·사학연금 이해관계자 위주로 구성되다 보니 객관적인 논의 자체가 어려웠다. 당시 여당(새누리당) 안보다도 후퇴한 정부의 개혁 기준안이 대타협기구에 제시됐으나, 최종 제도 개편 내용은 이보다 훨씬 후퇴했다. 필자는 여당 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대표 김세연 전 의원) 초청으로 수차례 공무원연금개편안을 평가했다. 최초 여당이 제시한 공무원연금 개혁안도 강도가 약하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여당 안보다 약화한 정부 기준안이 제시됐고, 정부 기준안보다 훨씬 강도가 낮은 내용으로 제도 개편이 이뤄졌다.

그런데도 대타협기구 참여자들은 엄청난 업적을 달성한 것처럼 홍보했다.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에 근거해 보험료 인상보다 지급률을 대폭 삭감해야 재정 안정 달성이 가능하다는 인사혁신처 내부 자료와는 다른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고서도 말이다. 개혁 성패는 시간이 말해준다. 5년도 지나지 않아 정부의 적자 보전금이 빠르게 늘고 있다. 단기 모르핀 효과의 약발이 다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마저도 문재인 정부의 대규모 공무원 채용으로 인해 적자 보전금 증가 추이가 대폭 희석된 결과다. 신규 공무원 13만 명의 보험료와 이에 상응한 국가 부담금 투입이 적자 보전금의 빠른 증가를 감추고 있을 뿐이다. 공무원연금의 장기 지속 가능성은 더 현저하게 떨어졌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국민연금 소득 보장 강화라는 잘못된 참견까지 하다 보니 대타협기구는 역사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급여율을 10%포인트 올리는 논의를 위해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라는 합의까지 했으니 기가 막힌다.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지 박근혜 정부의 조윤선 정무수석이 합의 내용에 반발해 사퇴까지 했다.

국회 주도 연금 개편의 흑역사

그런데 다시 연금 개편 논의를 처음부터 국회가 주도하겠다고 한다. 입법 과정에서 국회 역할과 여소야대 국면을 고려할 때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문제는 정치인들의 셈법과 공중전 결과로 앞선 어이 상실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는 거다. 어찌하면 제대로 된 연금 개혁이 가능할까.

우선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팩트 보고서를 제대로 작성해 빨리 공개해야 한다. 이에 근거해 연금 개혁의 중요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주요 원칙에 ‘글로벌 연금 개혁 추세에 부합’ ‘세대 간 형평성 확보’ ‘획기적 제도 지속 가능성 확보’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이들 원칙에 근거해 제도 개편 내용을 평가해야만 개혁으로 포장한 뒤 개악이 이루어지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

이렇게 해도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연금 개혁 우선순위와 관련해 콩이야 팥이야 하면서 연금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시간만 보낼 것이다. ‘국민연금부터 개혁하라’ ‘공무원연금 먼저 개혁해야 국민연금 개혁에 동의할 수 있다’ 등 지엽적인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는 개혁 논의 주제를 최소화하고 그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퇴직연금을 포함한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 구축 논의가 자칫 백년하청이 될 수 있다.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을 보완하기 위한 디폴트 옵션제도 도입 논의만 해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1년 이상 걸렸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번에는 공적연금 위주로 논의하고, 퇴직연금 등은 장기 발전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으로 목표를 낮춰야 한다.

기득권이 왜곡한 공무원연금

대신 뜨거운 감자인 공적연금 통합 운영 방안에 집중해야 한다. 연금 관련 정보를 독점한 기득권 세력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자료를 왜곡해 제시하는 염치 상실 행태를 해소할 방안이 공적연금 통합 운영이다. 공적연금 재정 통합이 아닌, 공적연금 운영을 통일하는 것이라서 재정 통합에 따른 불만이 있을 수 없다. 공무원들은 퇴직금도 없고(실제로는 민간 대비 최대 39% 지급), 보험료를 2배 내는 것을 고려하면 공무원연금을 더 받는 게 특혜가 아니라고 알고 있다. 특히 신규 임용 공무원은 국민연금 가입자보다 못하다고 공무원 사회는 믿고 있다. 신규 임용 공무원조차 국민연금 가입자보다 훨씬 혜택이 많음에도 주무 부처와 공무원연금공단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다.

이런 불만을 잠재울 방안이 공적연금 통합 운영이다. 공무원은 자신들이 국민연금 가입자보다 보험료를 두 배 더 내는 것을 강조한다. 공무원이 두 배 더 내는 건 맞다. 그런데 민간 사용자보다 국가가 두 배 더 부담하는 건 모른 척한다. 그러면서 민간보다 퇴직금 적게 받는 것만 강조한다. 진정 이것이 문제라면 공무원에게 민간과 똑같은 퇴직금(월 8.33%)을 지급하면 불만이 사라질 것이다. 민간보다 국가가 더 부담하는 4.5%를 퇴직금으로 전환하고 이미 지급하는 퇴직수당(민간 대비 39%)을 더하면 민간과 똑같이 퇴직금을 지급해도 국가 추가 부담은 0.6%포인트가 채 되지 않는다.

문제는 국민연금 가입자(4.5%)보다 2배 더 부담(9%)하는 부분이다. 어려울 거 없다. 글로벌 연금 개혁 추세를 따르면 된다. 공무원에게 더 지급하되, 재정 불안정을 초래하지 않게 추가 지급 급여를 확정기여(DC) 방식으로 지급하면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70%가 이미 도입한 방식을 공무원이 추가 부담하는 부분에 적용하는 거다.

부담에 상응하게 급여 수준을 맞춘 뒤에 연금 산정 기준소득과 소득재분배 기능까지 동일하게 운영하면 통합 운영에 대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제도 개편 때마다 해왔던 꼼수를 부리지 않고 2015년 일본이 달성한 일원화된 공적연금 운영으로 가능하다.

일본·미국·스웨덴 등은 어떻게 했나

분리 운영 속에 감춰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통합 반대 목소리가 나올 게 뻔하다. 반대 논리의 하나로 통합 운영으로 중·단기 소요 재원이 더 들어가는 점을 문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이 역시 어렵지 않다. 연금 개혁 성공 여부는 단기 평가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정부의 총부담을 줄여줄 수 있느냐에 달렸다.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현재와 가까운 미래 세대의 부담 분담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제도 전환 과정에서는 정부 부담이 더 늘어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정부 총부담이 줄어드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통합 운영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통합 운영을 통해 장기적으로 정부 총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스웨덴처럼 명목확정기여(NDC) 또는 오스트리아처럼 명목확정급여(NDB) 제도로의 전환, 아니면 미국처럼 특별 국채를 발행해 장기간에 걸쳐 분할 상환하면 세대 간 형평성 확보가 가능하다. 제대로 알리면 어느 국민이 반대하겠는가? 제도의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방안이자 세대 간 형평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인데 말이다. 이 단계까지 가면 통합 운영 제도의 지속 가능 여부만 평가하면 된다. ‘네가 더 받니, 내가 불리하니’ 하는 불필요한 논쟁을 근절함으로써 연금 개혁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 어설픈 개별 연금 개혁 논의가 아닌, 공적연금 통합 운영에 윤석열 정부가 연금 개혁의 초점을 맞추어야만 하는 이유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