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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베이징 대한제국 공사관 연구 용역…中과 소통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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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시의 중심 동교민항 34호의 프랑스 인도차이나 은행 건물 외관이다. 1917년 세워졌다. 청말 미국의 공사관 터였던 이곳의 호텔을 고종이 15만원에 구입해 대한제국의 베이징 공사관으로 사용했다. 신경진 기자

중국 베이징시의 중심 동교민항 34호의 프랑스 인도차이나 은행 건물 외관이다. 1917년 세워졌다. 청말 미국의 공사관 터였던 이곳의 호텔을 고종이 15만원에 구입해 대한제국의 베이징 공사관으로 사용했다. 신경진 기자

외교부가 1일 20세기 초 중국 베이징에 있었던 대한제국 주청(駐淸) 공사관의 역사에 대한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으며 사적지 보존을 위해 중국 측과 소통하겠다고 발표했다.

전문가 “현안 산적…조심스럽게 접근해야”

베이징 대한제국 공사관은 1901년 고종이 내탕금(內帑金·황제 통치자금) 15만원으로 미국 주청공사 건물을 구입해 개조를 거친 것으로 1903년 4월 박제순 주청공사가 입주했다.(중앙일보 2021년 7월 26일자 23면 “대등한 외교 상징이던 주중공관…당당한 외교 기억해야”)

베이징 대한제국 공사관과 톈진 공관을 보도한 중앙일보 2021년 7월 26일자 23면 “대등한 외교 상징이던 주중공관...당당한 외교 기억해야” 지면.

베이징 대한제국 공사관과 톈진 공관을 보도한 중앙일보 2021년 7월 26일자 23면 “대등한 외교 상징이던 주중공관...당당한 외교 기억해야” 지면.

외교부는 이날 “주청 대한제국 공사관 위치 고증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며 “향후 연구용역 결과 등을 바탕으로 관계부처·기관과 긴밀히 협조해 관련 사적지 보존·관리 방안에 대해 중국 측과 소통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대한제국 주청 공사관의 매입과정, 위치 등을 고증하는 연구용역을 진행하기로 했으며, 이는 공사관 표지석 설립 등 역사복원을 위한 사전 조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는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다.

대한제국 공사관은 천안문 광장에서 멀지 않은 동교민항(東交民巷) 34호에 자리했다. 현재는 서울경찰청 격인 베이징 공안국의 부속 건물로 베이징 경찰박물관(36호) 옆에 위치한다. 현재 건물은 대한제국 공사관이 헐리고 1917년 프랑스 인도차이나 은행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된 ‘주청대한공사관지도(駐淸大韓公使館地圖)’다. 네 개 건물이 자리했다. 전체 부지 면적은 4106.98㎡, 1242.4평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1번 ‘아파트/호텔 뒤 미니스테’ 건물이 고종이 내탕금으로 구입한 베이징 공관이다. 규장각 청구기호 奎26649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된 ‘주청대한공사관지도(駐淸大韓公使館地圖)’다. 네 개 건물이 자리했다. 전체 부지 면적은 4106.98㎡, 1242.4평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1번 ‘아파트/호텔 뒤 미니스테’ 건물이 고종이 내탕금으로 구입한 베이징 공관이다. 규장각 청구기호 奎26649

베이징 공사관은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과 1897년 세워진 대한제국이 1899년 대등한 외교 조약으로 맺은 ‘한청통상조약’ 2항 상호 외교 관원 파견 규정에 따라 구입·건립됐다. 과거 청의 조공국 가운데 베이징 공사관은 대한제국이 유일했다. 당시 대한제국 공사관 지도(사진)는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전하고 있다. 네 개의 건물이 자리했으며 1번 ‘아파트/호텔 뒤 미니스테’이 공사관으로 쓰였다.

베이징공사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베이징공사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베이징 공사관과 1891년 워싱턴 공사관에 앞선 한국 최초의 근대적 해외 공관은 톈진(天津)시에 존재했다. 1882년 임오군란 뒤 조선이 청과 톈진에서 맺은 불평등 통상조약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의 산물인 ‘톈진 자죽림 공관’이다. 당시 사료에 의하면 국고에서 은 4000냥으로 방 22칸과 복도 4칸으로 된 기와 건물을 구입해 11년간 운영됐지만 현재는 정확한 위치 고증조차 어렵다.

반면 청은 상호주의에 따라 당시 지금의 명동 땅 약 6500평(1만6500㎡)을 2000냥에 샀다. 이 터는 신생국인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3일 중화민국과 수교하면서 대사관 부지가 됐다. 1992년 한·중 수교 과정에서 당시 10억 달러에 달하는 이 부지는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이양되어 지금에 이른다.

이번 외교부의 베이징 대한제국 공사관 연구 용역에 대해 일각에서는 기대보다 우려의 분위기다. 현안이 산적한 한·중 관계에서 중국에 또 하나의 레버리지(지렛대)를 줄 수 있어서다. 구범진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는 “동교민항 일대는 청말 영국·미국·프랑스·독일 등 열강의 외교 공관 밀집지역으로 한국에게만 이번에 별도의 조치를 해주면 특별한 혜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지금처럼 중대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선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역사적 사실을 바르게 아는 것과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일은 별개의 사안이라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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