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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악의 공항’ 겪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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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필규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김필규 워싱턴특파원

김필규 워싱턴특파원

첫째 날.

몬트리올 거쳐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캐나다 비행기 편이었다. 탑승장 앞에 있는데 시간이 돼도 입장하란 말이 없다. 휴대전화 문자로 한 시간, 또 한 시간 늦어졌단 소식이 전해지더니 결국 취소됐다. 체크인 카운터에는 이미 취소된 다른 비행기에서 쏟아져 나온 수백 명이 서 있었지만, 이들을 처리하는 직원은 단 두 명이었다. 6시간을 기다린 끝에 다음날 토론토 경유 워싱턴행 표를 받았다. 자정 넘어 간신히 잡은 근처 모텔 숙박비는 591캐나다달러. 60만원이 넘었다.

항공편 지연과 취소가 잇따르며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 주인을 찾지 못한 수하물이 빼곡히 놓여 있다. 김필규 특파원

항공편 지연과 취소가 잇따르며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 주인을 찾지 못한 수하물이 빼곡히 놓여 있다. 김필규 특파원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나니 토론토행 비행기가 취소됐단 문자가 왔다. 그렇다면 토론토까지 기차를 타고서라도 가기로 했다. 5시간에 걸쳐 피어슨 공항에 도착해, 짐을 부치고 수속을 마쳤다. 하지만 출국 직전 워싱턴행 비행기마저 취소됐다. 짐이라도 찾으려 했지만, 며칠째 주인 못 찾은 트렁크들이 쌓여 공항은 대혼란 상태였다. 무전기를 들고 다니던 직원은 사실상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영국서 왔다는 한 관광객은 짐을 못 찾아 사흘째 이곳에 있다고 했다. 영화 ‘터미널’이 따로 없었다.

셋째 날.

결국 이 항공사는 다른 미국 항공사 비행기를 잡아줬다. 그나마도 제때 e메일을 안 봤으면 놓칠 뻔했다. 수속을 마치고 출국 심사대까지 갔는데, 이번엔 공항 직원이 오더니 모두 다시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분실한 짐 때문에 세관 신고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여행객들이 분통을 터뜨렸지만,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항공사에선 “내일은 잘 될 것”이라며 다음 날 첫 비행기를 잡아줬다.

넷째 날.

새벽 5시 출국장은 이미 북새통이었다. 아침 7시쯤에 항공편이 몰렸는데, 공항 출입국 업무는 6시나 돼야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둘러 겨우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지만, 언제라도 다시 내리라 할까 봐 불안했다. 캐나다 상공을 지난 비행기가 워싱턴 레이건 공항에 착륙했고,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지난달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서 겪은 일이다. CNN은 지난 21일 세계 주요 공항을 조사한 결과, 약 한 달간 지연 항공편이 52.5%나 된 이곳을 최악의 공항으로 꼽았다. 코로나19 동안 인력은 대거 줄였는데, 여행 수요는 폭증한 탓이다. 사람 손이 직접 필요한 수하물 업무는 타격이 더 컸다. 지금 런던·파리 등 다른 공항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많은 이들이 불필요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 업계에선 이런 난리가 연말까진 이어질 거라고 한다. 팬데믹이 남긴 후유증이 너무 깊고 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