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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혜리의 시선

"윤핵관은 윤석열"…이준석이 작년 말 내비친 뜻밖의 속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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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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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핵관(윤석열측 핵심 관계자)이 누군지 아세요?"

이준석 "윤핵관은 윤석열" 우려 #권성동 문자 노출 계기 재조명 #잦은 구설은 대통령 향한 경고

지난해 말, 그러니까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당 대표와의 갈등이 최고조일 때 만났던 이 대표가 대뜸 물었다. "다들 알지 않나요? 장제원? 권성동?" 이렇게 답했는데, 뜻밖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바로 윤석열 후보 본인이에요. "

윤 후보 뜻을 내세워 '호가호위'하며 언론플레이를 하는 몇몇 윤 후보 측근을 겨냥해 이 대표가 직접 '윤핵관'이라는 별명을 붙였던 터라 무슨 얘기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은 장제원·권성동 의원이 윤핵관이지만 후보 본인이 바뀌지 않으면 제2, 제3의 장제원·권성동이 계속 나올 겁니다. 후보가 달라지지 않고선 당장 대선 승리도 어렵거니와 어찌어찌 이긴다 해도 결국 큰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어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이어 윤석열 정부마저 실패하면 보수 정당은 정말 궤멸할지도 모릅니다. 후보 체질을 바꿔야 해요. 아직 시간 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윤핵관이 주도하는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선대위를 해체해 당 중심으로 제대로 선거를 치러보자고 판을 흔드는 겁니다. "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7일 전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문자내용이 공개된 것과 관련해 사과했다. 김상선 기자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7일 전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문자내용이 공개된 것과 관련해 사과했다. 김상선 기자

뜻밖이었다. 당시 언론이 이 대표를 규정하는 프레임은 딱 하나였다. 정권교체라는 절체절명의 사명 앞에서조차 내 맘에 안 든다고 두 번이나 판을 깨고 나가는 철부지 리더십. 권성동 당시 사무총장을 비롯해 친윤 의원들은 연일 "해당 행위"라며 일제히 이 대표를 공격해댔다. '사면초가 이준석'이라는 식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단 이 대표 비판기사가 쏟아진 배경이었다.

사실, 과거는 물론 최종 징계가 내려진 지난 8일 윤리위 당일까지도 이 대표는 이런 비판적 프레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속내가 무엇이었든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사람들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가 적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이날 발언만 놓고 평가하자면 "대선엔 관심 없고 자기 정치만 한다"는 세간의 비난과 거리가 있다. 공식적으로는 지난해 12월 21일 선대위의 모든 직책을 내려놨지만 물밑에선 윤 후보의 이런저런 약점을 보완할 선거 기획을 실행 중이었으니 하는 말이다. 이날만 해도 후보가 지각할 우려 없이 전국을 순회하며 정책과 공약을 홍보하는 '윤석열차'(이후 '열정열차'로 명명) 계약을 위해 KTX 쪽 실무자를 만난다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이후 일은 모두 목격한 그대로다. 지지율이 곤두박질친 윤 후보는 이 대표가 이미 전달해둔 투두(to do·해야 할 일) 리스트에 적힌 대로 새해 첫날 "나부터 변하겠다"며 신발 벗고 국민에 큰절했고, 선대위가 공중분해 된 직후 출근길 인사에도 나섰다. 친윤 의원들은 1월 6일 의원총회 날 이 대표 사퇴 촉구 결의안을 마련했지만 윤 후보는 통 크게 갈등을 봉합해 대선 승리와 지방선거까지 거머쥐었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윤 후보, 아니 윤석열 대통령이 호가호위하는 윤핵관을 물리치고 자신이 한때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던 이 대표를 품을 만큼 달라졌다 싶었다.

지난 26일 대정부 질문 도중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문자를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대통령의 적나라한 워딩이 그대로 노출됐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26일 대정부 질문 도중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문자를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대통령의 적나라한 워딩이 그대로 노출됐다. 국회사진기자단

그런데 지난 26일 권성동 원내대표(당 대표 권한대행)가 우연인지 의도인지 국회 본회의장에서 노출한 윤석열 대통령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면, 그게 아니었다. 두 번의 큰 선거 승리 직후 당 대표를 중징계해 안 그래도 '윤심'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와중에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 운운하며 여당 대표와 업무 중 뒷담화를 나누는 대통령의 언사를 맞닥뜨리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대통령실은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문자로 정치적 쟁점을 만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했다. 문자 내용만큼이나 해명도 부적절하다. 업무시간 중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나눈 문자를 사적 대화로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아울러 '내부 총질'이란 용어에 대해서도 적절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설령 이 대표의 행위가 윤 대통령으로선 내부 총질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 하더라도 자칫 '대통령이 모든 비판적 의견을 내부 총질로 규정한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어서다. 그렇게 되면 쓴소리는커녕 원활한 소통도 어렵지 않겠나.

윤 대통령이 가장 좋아한다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을 지낸 강원국 작가의  『어른답게 말합니다』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구설은 그 사람과 가깝다는 걸 과시하려는 사람이 만들어내니 가까운 이에게 말조심해야 한다. 또 구설은 나에 대한 세상의 경고다. 나를 돌아보고 바꿔야 구설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 윤 대통령에게 하는 말 같다. 체질까지 바꾸라고는 못 하겠지만 최소한 언행이라도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