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근자감을 가져라” 허준이의 조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한국계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가 27일 서울대 상산수리과학관에서 수학강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계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가 27일 서울대 상산수리과학관에서 수학강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이 길이 맞을까 하는 불안감에 어떻게 대처했느냐’는 학생의 질문에 허준이(39)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좌교수가 내놓은 답이었다. 허 교수는 27일 오후 서울대 관악캠퍼스 상산수리과학관에서 ‘수학계의 노벨상’ 필즈상 수상 기념 특별강연을 했다.

허 교수는 강연에서 “근거가 있는 자신감은 언제든지 부서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학교에서 시험을 잘 보다가 어느 순간 못 볼 수도 있고, 수학 올림피아드에 가 항상 금메달을 따다가 대학이나 대학원 갔는데 논문 쓰기가 너무 힘들 수 있다. 불운한 일이 겹쳐 자신감의 근거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반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스스로에게 유연성을 부여한다. 힘든 과정에 놓였을 때도, 근거 없는 자신감이 목표를 유연하게 변경하게 도와주기도 한다. 인생을 끝까지 잘 살아낼 수 있게 하는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강연이 끝난 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제 주변에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친구들을 봤을 때, 의외의 공통점이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인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라며 “자신감의 종류도 근거 있는 자신감과 없는 자신감으로 나눌 수 있는데, 결국 끝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친구들을 보면 후자인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스스로도 “이거(수학) 해봤는데 잘 될지 안 될지는 크게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하다 보니 더 하게 됐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허 교수는 대수기하학을 통해 조합론 문제를 푸는 방법에 대해 주로 강연했다. 조합 대수기하학은 허 교수의 주 연구분야다. 그는 조합 대수기하학 기반 연구를 통해 수학자들이 제시했던 여러 난제를 해결해 수학계에서 화제가 돼 왔다. 1시간이 넘게 진행된 강연에는 교수·학생 등 150여명이 참여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신청자가 더 몰렸지만, 코로나19 유행 등으로 참석자가 제한돼 사전 신청자에 한해서만 참석이 가능했다”고 했다. 허 교수는 “수학자라는 직업이 보통은 인기가 있는 직업이 아니다”라며 “새로운 경험”이라며 미소 지었다.

허 교수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를 졸업한 뒤 수리과학부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필즈상 수상 후 허 교수가 고등과학원에 이어 두 번째 강연 장소로 서울대를 택한 이유다. 허 교수는 “과거에 어렸던 저 자신을 다시 만난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든다”며 “항상 저쪽 어딘가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반대편에 서서 이야기를 하려니 낯설었다”고 했다. 서울대 학생 시절에 대해서는 “제 39살 인생 중에 가장 격렬하게 살았다고 생각되는 때”라며 “좋은 일도 많이 겪었고, 좋지 않은 시간도 있었지만 항상 꽉 차 있고, 뒤돌아봤을 때 삶에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서울대 학생들에게 “이 시간을 최대한 즐기면, 추후에 유용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