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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수용해 공원 짓겠다” 실제 삼청동 이야기…法의 판단은 [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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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씨는 지난 2020년 1월 서울특별시 종로구청으로부터 공문을 받았습니다. 공문의 이름은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 보상사업 추진 계획’.

공문이 날아든 사정은 이러합니다. 김씨는 종로구 일대에 99평(326㎡) 정도 되는 땅과 건물 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건물은 갤러리나 카페 등으로 사용되고 있었죠.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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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63] 종로구 “오래된 미등기 건물, 공원 계획 수용”에 취소 소송  

문제는 김씨 땅과 건물이 사실 ‘자연녹지지역’으로 지정된 곳에 들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해당 지역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조선총독부 고시에 따라 도시계획시설상 ‘공원’으로 지정됐던 곳이지만, 김씨 땅에는 1950년대부터 등기가 안 난 채로 지어진 건물이 있었던 겁니다.

명목은 ‘공원’지역이지만 이미 건물이 지어진 상태인 탓에 종로구청은 김씨 땅에 이제 공원을 짓겠다’고 알리는 공문을 보낸 것이죠.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인 1996년부터 서울시 차원에서 공원조성계획 변경 결정을 하는 등 해당 땅을 공원으로 바꿔보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계속됐습니다.

이에 같은 해 6월 종로구청은 총 535평(1936.2㎡)에 달하는 ‘삼청근린공원 실시계획 인가’를 고시하면서 김씨의 부동산을 근린공원 계획용지로 수용하기로 결정한 사실을 알렸습니다.

자신의 땅과 건물을 수용당할 위기에 처한 김씨. “종로구청의 처분에 절차적‧실체적 하자가 있어 재량권이 일탈‧남용됐다”며 도시계획시설(공원) 사업 실시계획 인가처분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합니다.

여기서 질문  

김씨의 땅을 수용해 공원을 지었을 때의 공익이, 김씨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보다 더 클까요? 과연 종로구청의 결정은 법을 잘 준수해서 내려진 것일까요?

관련 법률은  

국토계획법 제88조 5항에는 사업시행에 필요한 설계도서, 자금계획, 시행기간,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 등을 자세히 밝히거나 첨부하여야 합니다. 당사자로 하여금 국토계획에 따라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미리 잘 알려주는데 그 입법 취지가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법원 판단은  

언뜻 생각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최근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에서도 도로 건설을 이유로 토지를 수용당할 위기에 처한 주민들이 ‘도로 구역 결정 취소 청구 소송’을 낸 바 있죠. 드라마에서도 우영우 변호사가 ‘비례의 원칙’과 ‘절차적 하자’를 주장하는데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 ENA채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 ENA채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화면 캡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화면 캡처.

이번 판결문에서도 그 단어들이 등장한답니다. 서울행정법원 제1부(재판장 강동혁)는 김씨의 손을 들었는데, 그 근거가 바로 ‘비례의 원칙’과 ‘절차적 하자’ 입니다.

우선 비례의 원칙입니다. 법원은 “인가 처분이 나면 김씨가 입게 될 재산권에 대한 불이익이 명확하다”며 “적법한 건축 허가를 받지 않은 미등기 건물이기는 하나, 재산세를 납부하고 있어 보호가치가 없는 재산권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반면 종로구청은 건물을 허물고 그 부지에 잔디밭을 조성하는 것이 전부이기에 활용도가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고 서울특별시의 지침을 받아 인가 처분을 했을 뿐, 공원 조성을 위한 구체적인 자금 계획을 수립하거나 공사 설계도서를 준비한 적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이를 요약하자면 김씨가 얻을 재산상의 손해보다 종로구청의 결정에 따른 공익적 가치가 크지 않다는 것이죠.

또 절차상 사업 시행에 필요한 자금 계획을 자세히 밝히거나 필요한 서류를 첨부하거나 관계 서류의 사본을 14일 간 일반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어 국토계획법 위반이라고 봤습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국토계획법 제88조 제5항에 위반되고, 비례의 원칙도 준수하지 못하여 재량권을 일탈·남용함으로써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며 인가 처분을 취소하라고 25일 판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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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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