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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의 ‘숲’ 수묵화…여백 대신 생명의 기운 꽉 채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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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강경구의 ‘숲’, 2001, 한지에 먹, 63x93㎝. [사진 우손갤러리]

강경구의 ‘숲’, 2001, 한지에 먹, 63x93㎝. [사진 우손갤러리]

어둠과 빛이 공존하고, 땅과 초록이 호흡하는 곳, 새와 벌레 등 만물의 꿈틀거림이 있는 곳, 한국화가 강경구(69)씨가 대형 화폭에 담은 숲은 그런 곳이다. 풀과 꽃이 무성하고, 빽빽하게 얽힌 가지와 잎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 있는 또 다른 삶의 현장이다.

강경구 작가의 개인전 ‘덴시티(DENSITY) 숲’이 대구 우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숲을 소재로 한 2000년대 작품과 최근작 등 20여 점을 전시하는 자리다. 수묵화라면 흔히 화면 반쯤은 비워 놓고, 먹의 농담(濃淡)으로 잔잔히 채운 것을 떠올리겠지만, 그의 그림은 그런 잔잔한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제목 ‘DENSITY’(밀도·密度)가 의미하듯 살아있는 것들로 꽉 찬 역동적인 숲이다.

그는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눈에 보이는 숲이 아니라 내안에 살아 움직있는 숲”이라며 “내가 숲에서 느끼는 강력한 생명력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집중한 것은 숲의 에너지와 호흡을 화면에 오롯이 담아내는 일이다. “바닥에 큰 종이를 눕혀놓고 그 위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다”는 그는 “그림을 그리다가 세워 바라보면 때로 원근감도 없지만, 그런 틀에 얽매이지 않고 싶었다. 화면이 숨을 쉬는,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숲은 ‘식물성’보단 ‘동물성’에 가깝다. 그는 “나무·꽃과 풀들은 움직이진 않지만, 사람들처럼 꿈을 꾸고 삶을 위해 경쟁하며 분투하고 있지 않느냐”면서 “그 안에 살아있는 것들의 보이지 않는 기운을 힘의 강약 조절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강경구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전경. ‘야상곡’‘유목’ 연작도 함께 선보인다. [사진 우손갤러리]

강경구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전경. ‘야상곡’‘유목’ 연작도 함께 선보인다. [사진 우손갤러리]

그는 숲만 그리는 작가는 아니다. 한지와 먹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소재와 재료를 바꿔가며 작업해온 가운데, 숲은 그가 20년 동안 틈틈이 그려온 주요 소재 중 하나다. 이번 ‘숲’ 그림은 오로지 먹으로만 그린 것도 특이하다. 그는 “물을 섞어서는 강렬한 기운을 다 살릴 수 없었다. 표현하고 싶은 에너지를 먹으로만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은미 우손갤러리 큐레이터는 “강 작가의 숲엔 거침없이 자생하고 성장하는 강렬한 생명의 기운, 삶에 대한 열망이 있다”며 “자연의 불가사의한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난 강 작가는 서울대 회화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가천대 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 제12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로 지금까지 20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 OCI미술관 등에 소장돼있다.

그는 “한국화를 한다고 틀어박힌 방식으로만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캔버스에 아크릴로 작업을 하기도 하고, 사람도 그리고, 집도 그린다. 먹을 쓰더라도 틀에 박힌 동양화가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나의 삶을 담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선 그의 ‘야상곡’ 연작과 ‘유목’ 연작도 함께 볼 수 있다. 전시는 9월 8일까지, 일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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