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주정완의 시선

수술대 오른 다주택자 종부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종합부동산세가 마침내 수술대에 올랐다. 기획재정부가 21일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다. 종부세 세율은 내리고 공제금액은 올리기로 했다. 윤석열 정부가 본격적인 부동산 감세에 나선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 셈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징벌적 과세’를 ‘공평 과세’로 바꾸겠다는 뜻을 담았다.

이번 개편안에서 눈에 띄는 건 다주택자에 대한 인식 변화다. 핵심은 주택 수에 따른 차등과세 폐지다. 쉬운 말로 풀면 다주택자라는 이유만으로 무턱대고 무거운 세금을 물리진 않겠다는 의미다. 예컨대 20억원짜리 집 한 채를 가진 사람과 10억원짜리 집 두 채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현재는 종부세를 계산할 때 20억원짜리 1주택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이른바 ‘똘똘한 한 채’를 찾는 수요가 몰렸던 이유다. 앞으로는 두 사람에게 똑같은 세율을 적용하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1주택자·다주택자에 같은 세율”
‘징벌적 과세’ 문 정부와 차별화
여소야대 국회서 통과될지 주목

그렇다고 1주택자를 전혀 우대하지 않는 건 아니다. 종부세 계산에는 공제금액이란 항목이 있다. 세금을 매길 때 과세대상에서 빼주는 금액이다. 당연히 공제금액이 많아질수록 납세자에게 유리하다. 이번 세제 개편안에서 1주택자는 12억원, 다주택자는 9억원의 공제금액을 적용하기로 했다. 올해는 한시적으로 1주택자의 공제금액을 14억원으로 올리는 법안도 국회에 제출돼 있다. 지난 5일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이 정부와 협의를 거쳐 법안을 발의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에선 ‘다주택자=투기꾼’이라고 봤다. 이런 투기꾼에겐 징벌적 세금을 물리는 게 마땅하다는 논리였다. 무거운 세금을 내기 싫으면 어서 집을 팔라고 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먹히지 않았다. 결국 집값도 못 잡고 민심만 잃었다.

사실 다주택자라고 무조건 투기꾼으로 몰아가는 건 무리다. 현실적으로 다주택자가 된 데는 여러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이사를 위해, 주말 부부라서, 상속을 받아서 등이다. 각자의 사정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싸잡아 투기 목적이라고 낙인을 찍을 수는 없다.

임대주택 공급자로서 다주택자의 긍정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다주택자는 자기가 사는 집을 제외하고 다른 집을 전세나 월세로 내놓는다. 민간 임대주택 시장이 활성화하려면 다주택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 임대주택은 한계가 뚜렷하다. 대개 도심까지 출퇴근 거리도 멀고 여러 명이 살기엔 집도 비좁다.

문재인 정부도 초기에는 이런 부분을 인정했다.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세금 혜택을 줬다. 대신 세입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 잘만 하면 집주인과 세입자에게 모두 좋은 제도가 될 수 있었다. 집주인은 세금 혜택을 받아서 좋고 세입자는 이사 걱정 없이 저렴한 임대료로 살 수 있어서다.

그런데 한순간 정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민간 임대사업자 제도를 사실상 폐지했다. 세금 혜택을 줬더니 다주택자가 집을 팔지 않고 버티는 ‘매물 잠김’이 나타났다는 이유에서다. 기존 정부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만 바보가 됐다. 윤석열 정부로선 전임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세제 개편안에는 정부가 시행령만 손보면 되는 것도 있지만 법률 개정 사항이 많다. 국회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 내후년 총선 전까지는 여소야대 국회가 불가피하다. 법안 통과의 열쇠를 쥔 거대 야당은 호락호락 법안을 통과시켜 줄 수 없다고 벼르는 분위기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부동산 세금 관련 입장을 밝혔다. 그는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세금 부담이 줄어들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열 일 젖혀두고 부동산 감세에만 몰두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틀린 말이다. 부동산 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선 건 맞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8주 연속으로 내렸다. 하지만 올해 재산세나 종부세에는 최근 집값 하락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전국의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17.2% 올렸다. 특히 인천(29.3%)과 경기도(23.2%)의 상승 폭이 컸다.

박 원내대표는 “불합리한 것은 개선해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무조건 반대는 아니라는 점에선 다행스럽다. 여론의 움직임을 보며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협조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정부와 여당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국민과 야당을 설득하느냐가 중요해졌다. 여야 모두 정쟁이 아닌 민생을 우선해서 부동산 세법 개정안을 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