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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의사조력자살’ 논쟁…의협 “생명 경시 만연할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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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한의사협회가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발의한 소위 ‘의사 조력 존엄사법’을 반대하는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달 15일 안 의원의 법률 발의 이후 안락사 논쟁에 불이 붙었다.

안 의원이 발의한 조력 존엄사는 말기이면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는 환자가 원할 때 이행한다. 의사가 돕는 방법은 하위법령(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돼 있다. 외국 예를 보면 의사가 극약을 처방하고, 환자가 복용하거나 주사약의 스위치를 누른다. 의사가 독극물을 주입하는 안락사와 차이가 있다.

안 의원은 “여론조사에서 80%가량이 안락사에 찬성하는 등 존엄한 죽음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고, 근원적인 회복 가능성이 없는 경우 본인 의사로 삶을 종결할 권리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고 설명한다. 다음 달 24일 공청회를 연다.

법안이 발의된 날 노년유니온은 기자회견을 열어 “회복 불가능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가족을 돌보다 가정이 파탄 나고 결국엔 간병 살인에 이르는 것을 지켜만 볼 것인가”라며 안락사 도입을 촉구했다.

반면 2018년 2월 존엄사 법제화(연명의료결정법)를 이끈 주역의 상당수(의협 포함)는 안 의원 법률에 반대한다. 이들은 “연명의료결정법을 시행한 지 4년밖에 안 된 데다 현행 법률을 보완할 게 수두룩한데 의사 조력 존엄사를 논의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당시 법제화에 20년 걸리면서 법률을 매우 엄격하게 만들었는데, 그걸 손보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의협은 18일 의견서에서 “연명의료중단은 무의미한 의료활동을 중단하는 것이지만 조력 존엄사는 생명을 앞당기는 행위라서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도 지난달 21일 성명서에서 “존엄한 돌봄이 선행돼야 하고 생명경시 풍조를 유발할 것”이라고 반대했다. 학회는 다음 달 중순 토론회를 연다.

의사 조력 존엄사는 엄밀히 말하면 의사 조력 자살(Doctor aided suicide)이다. 미국 오리건주가 1997년 처음 도입했다. 이 법률 제정 운동이 ‘존엄사(Death with dignity)’이다. 이후 25년 지났지만 도입한 주가 9곳에 불과하다. 서울대 의대 허대석 명예교수는 “의사 조력 자살도 안락사의 한 형태”라며 “설문조사를 할 때 용어를 정확하게 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리서치가 13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2%가 조력 존엄사에 찬성했다고 돼 있다. 하지만 설문 문항을 보면 “조력 존엄사법은 연명의료결정법보다 한 단계 나아가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자기결정권을 높인 것”이라며 품위 있는 죽음으로 설명한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김대균 교수는 “의사 조력 자살을 허용하면 경제적 약자나 고령자, 돌볼 가족이 없는 사람 등이 자살로 내몰릴 것”이라며 “호스피스 인프라 확대와 간병의 사회화가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호스피스 인프라 확충, 만성질환 말기환자의 호스피스 이용 확대, 임종실 의무화 등의 실질적 대책 마련이 더 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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