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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근 서한에 1198개 경찰 댓글, 99%가 '작성자가 삭제'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국경찰직장협의회 회장단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행안부 경찰국 신설 반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전국경찰직장협의회 회장단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행안부 경찰국 신설 반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작성자 본인이 직접 삭제하였습니다.”

경찰 내부망인 폴넷에는 최근 이 같은 댓글이 줄 잇고 있다고 한다.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설치 등에 반대하는 일선 경찰에게 “과한 집단적인 행동은 국민 공감을 받기 어렵다”며 지난 11일 올린 서한문에도 같은 댓글들이 무더기로 달렸다.

14일 오후 2시 20분 기준 서한문에 달린 댓글 1198개 가운데 99%인 1186개의 댓글엔 “작성자 본인이 직접 삭제했다”는 자동 완성된 메시지만 남아있다. 경찰 관계자는 “지휘부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이런 ‘댓글 삭제 릴레이’가 내부 문화로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달 폴넷에 올라온 김창룡 전 경찰청장의 사의 표명 입장문에 경찰청 측이 “작성자 본인이 삭제했다고 뜨는 댓글은 관리자가 삭제하는 게 아니다”라고 밝히면서 시작된 현상이다. 이 관계자는 “실명으로 지휘부 비판을 하기에는 부담되니 이렇게라도 반발 의사를 나타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술렁이는 경찰…블라인드 분위기는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 뉴스1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 뉴스1

최근 행안부의 경찰국 신설 논란 등과 맞물려 술렁이는 경찰 내부 분위기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내 경찰청 라운지에서도 엿볼 수 있다. 블라인드는 직장에서 쓰는 e메일로 인증해 가입하고 활동할 수 있는 커뮤니티다.

최근 블라인드에는 지휘부를 비판하는 글 등이 자주 올라오는 추세다. 복수의 경찰관에 따르면, 윤 후보자 지명 뒤 블라인드에는 “경찰청장은 경찰관들이 투표로 뽑아야 한다” “임기 시작도 안 했지만 우리들의 암울한 미래가 그려진다. 정권 앞잡이가 돼 경찰 조직을 이끌어가겠나” “청장도 아니고 후보자가 (어떤 자격으로) 글을 올리나” 등과 같은 윤 후보자에 대한 비판성 글이 쏟아지고 있다. “청장님 행안부 장관 면접 합격하신 거 축하드린다”처럼 윤 후보자를 비꼬는 글도 적지 않다.

공문 공개나 청장 사진 합성도 

6월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 경찰청 직장협의회가 제작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나운채 기자

6월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 경찰청 직장협의회가 제작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나운채 기자

익명성을 보장하는 특성 때문에 블라인드에서는 내부 시책 등에 대한 비판도 가감 없이 이뤄지는 편이다. 지난 7일에는 한 지방경찰청이 추진하고 있다는 공문이 일부 올라오기도 했다. “단순 쓰레기 및 보행자의 안전이 위협받는 경우는 즉시 조치하라”는 내용이 담긴 문서다.

해당 지방청 소속 경찰관으로 추정되는 글쓴이는 “현장 경찰관들은 이런 지휘부 지시사항 감시하라고 경찰국 신설에 찬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내용을 다룬 다른 글에서는 “경찰인지 환경미화원인지 시청공무원인지 구별 안 된다”는 댓글이 달렸다. 이밖에 한 치안정감급 지방청장 프로필 사진에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합성하는 등 지휘부를 향한 불만을 대놓고 드러내는 이도 있다.

이처럼 내부 비판이 사그라지지 않으면서 한편에서는 자포자기하는 태도도 뒤섞이고 있다. “대표(고위직)에게 기대할 게 없다” “안팎에서 푸대접받으니 별로다”라면서다. 이들은 ‘오소월꺽(오늘도 소극행정 월급 꺼억)’이라는 단어를 공통으로 사용했다.

혼란스러운 내부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현장에서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30대인 일선서 경찰관은 “상명하복식 조직 문화나 업무 스트레스 등 쌓인 것도 많고 익명을 통해 이렇게라도 푸는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경찰관(40대)은 “다수 의견도 아니고 특정 소수의 불만인데 모두를 대변하는 것처럼 글이 자꾸 올라온다면 내부 갈등만 심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경사급의 또 다른 경찰관도 “가끔은 ‘내부 총질’이라고 느껴지는 글들이 있어 ‘우리가 이렇게 모래알 조직이었나’라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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